이 소설의 세계에는 더 이상 자연사가 없다. 사람은 늙지도 않고, 사고로 죽어도 되살아난다. 전쟁도 굶주림도 질병도 없는, 완벽에 가까운 세상이다. 인공 지능 ‘선더헤드’가 세상을 관리하고, 인류는 그 안에서 안전하게 살아간다.
하지만 이 세계는 단 하나는 포기하지 않는게 있다.
죽음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
그래서 탄생한 존재가 ‘수확자’다. 인구 균형을 위해 무작위로 사람을 선택해 생을 끝내는, 법적으로 허용된 유일한 죽음이다. 죽음을 통제하는 순간, 죽음은 자연이 아니라 권력이 된다.
어느 날, 열여섯 살의 시트라와 로언은 수확자 수련생이 되라는 제안을 받으며 죽음을 다루는 세계의 중심으로 들어가게 된다.
여기서 잠깐,
<수확자>는 총 세 권의 시리즈로 구성되어 있다.
읽는 순서는 <수확자> <선더헤드> <종소리>이다.
<수확자>
이야기의 시작은 ‘죽음’이다. 이 세계에는 더 이상 자연사가 없다. 그 대신 ‘수확자’가 무작위로 사람의 생을 끝낸다. 이 책은 수확자가 어떤 존재인지, 어떤 기준으로 죽음을 집행하는지, 그리고 사람이 죽음 앞에서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선더헤드>
두 번째 이야기의 중심은 지구를 관리하는 인공지능 ‘선더헤드’다. 선더헤드는 인간의 삶을 관리하고, 사람들은 점점 스스로 결정하지 않아도 되는 존재가 된다. 선더헤드는 죽음의 영역에는 개입하지 않기로 정하며, 그 결과 수확자는 유일한 절대 권력이 된다. 그리고 이를 반대하는 집단들이 나타난다.
<종소리>
마지막 이야기는 이 세계의 끝을 향한다. 부패한 수확자, 그들을 막으려는 사람들, 그리고 이 세계의 진실이 하나씩 드러난다. 죽음이 권력이 된 세계의 마지막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요즘처럼 AI가 빠르게 발전하는 시대에 이 소설의 설정은 더 이상 먼 미래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다치면 나노 치유기로 바로 회복되고, 우울함과 슬픔, 외로움 같은 감정마저 기술로 조절되는 세계에서 선더헤드는 사람들의 삶을 관리하고 선택의 순간마다 조언을 건네며 인류가 스스로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이 세계에서는 수확자가 직접 죽음을 거두지 않는 한 사망은 ‘일시 사망’으로 처리된다. 드론이 시신을 회수해 재생 시설로 옮기고, 사람은 다시 살아난다. 죽음조차 시스템이 관리하는 하나의 절차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완벽한 기술 속에서도 사람들은 결코 편안하지 않다. 수확자의 죽음이 언제, 누구에게 다가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죽음을 통제하는 순간, 수확자는 법과 제도 위에 선 존재가 되고 사람들이 일궈온 삶의 터전을 한순간에 거둘 수 있는 권력이 된다. 그리고 그 권력은 일부 수확자들을 서서히 망가뜨린다. 죽음은 사명이 아니라 쾌락이 되고, 수확은 의식처럼 과시되며, 사람의 생은 숫자처럼 다뤄진다.
그 부패를 막기 위해 이 세계에는 또 다른 사람들이 나타난다. 죽음을 되돌리기보다, 죽음을 권력으로 만든 구조 자체에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다.
(11p) 우리에게 감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야만 하기 때문이다. 회한도 있고, 후회도 있다. 견딜 수 없을 만큼 큰 슬픔도 있다. 그야, 그런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가 어떤 괴물이 되겠는가?
>> 죽음을 다루는 자리에서조차 감정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이 문장은,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다시 묻게 했다.
(13p) 어둠은 빛의 부재였고, 수확자는 빛 자체였다. 그들은 깨우치고 빛나는 존재로서, 인류 중 가장 뛰어난 이들로 인정받았다. 그래서 수확자로 선택된 것이다.
>> 수확자가 처음에는 ‘이상적인 존재’로 만들어졌다는 점이, 이후의 몰락을 더 선명하게 대비시킨다.
(15p) 사람들이 수확자를 즐겁게 해주려고 온갖 애를 쓰는 것도 당연했다. 두려움 속의 희망이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동기 요인이니까.
>> 공포와 희망이 동시에 작동할 때, 인간이 얼마나 쉽게 순응하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문장처럼 느껴졌다.
(19p) 문명의 성장은 완료되었다. 모두가 그 사실을 알았다. 인류의 경우 배울 것은 더 남아 있지 않았다. 우리 존재에 대해 더 해독할 것이 없었다. 그것은 누구도 다른 사람보다 더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었다. 사실 크게 보면 모두가 똑같이 쓸모가 없었다.
>> 완벽해진 문명이 오히려 인간의 의미를 희미하게 만든다는 점이 조용히 씁쓸했다.
(24p) 예전에는 인생의 끝이 자연의 손에 달려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결말을 훔쳐 냈다. 이제 우리는 죽음을 독점했다. 이제는 우리가 죽음의 유일한 배급자다.
>> 이 문장은 죽음이 자연에서 권력으로 넘어간 순간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34p) 〈죽음은 전 세계를 동족으로 만든다.〉 그렇다면 죽음이 없는 세계에서는 모두가 이방인이 되는 걸까
>> 죽음이야말로 인간을 같은 존재로 묶어 주는 마지막 공통분모로 존재하고 있다.
(55p) 패러데이가 말했다. 「이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절대 해선 안 돼요……. 그리고 살해하기를 가장 싫어하는 사람들만이 이 일을 해야 합니다.」
>> 가장 잔인한 일을 가장 조심스러운 사람이 해야 한다는 말이 이 세계의 마지막 양심처럼 느껴졌다.
(104p) 오늘 내가 거둔 여자는 정말 이상한 질문을 던졌다.
「이제 전 어디로 가나요?」
>> 죽음이 관리되는 세상에서도, 사람은 여전히 끝 앞에서 길을 묻는 존재라는 사실이 조용히 와닿았다.
(147p) 인구 성장률은 여전히 높지만, 계속 늘어나는 인구를 부양하는 선더헤드의 능력이 이를 상쇄하고 있다. 재생 가능 자원, 지하 거주지, 인공 섬 등등이 녹지 부족이나 과밀 거주 없이 이루어진다. 우리는 이 세계를 정복했으며, 조상들은 꿈도 꾸지 못했을 방식으로 보호해 왔다.
>> 인류의 ‘완벽한 승리’처럼 보이는 이 문장이, 동시에 가장 큰 정체의 시작처럼 느껴졌다.
(280p) 〈절대 인간성을 잃지 마라. 〉 수확자 패러데이는 예전에 그렇게 말했다. 〈그걸 잃으면 넌 살해 기계에 지나지 않게 된다.〉 패러데이는 〈수확〉이라고 하지 않고 〈살해〉라고 했다.
>> 이 문장은 이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경고처럼, 지금의 우리에게도 그대로 건네지는 말처럼 들렸다.
점점 더 발전되는 기술은 이미 우리의 몸을 보완하고, 감정과 선택의 영역까지 조금씩 침범하고 있다. 편리함은 늘어나고 있지만, 그만큼 우리가 스스로 고민하고 책임질 일은 줄어들고 있다.
그렇다면 영원히 산다는 것은 정말 축복일까. 끝이 없는 삶은 우리를 더 현명하게 만들까, 아니면 조금 더 안전하고, 조금 더 편안한 존재로만 남게 할까. 죽음을 통제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여전히 삶을 귀하게 여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