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기록> 녹나무의 여신 / 히가시노 게이고

by 크랜베리


사람은 왜 자꾸 미래를 알고 싶어질까.


앞으로 잘 살 수 있을지, 지금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는지, 혹시 지금의 불안이 더 커지지는 않을지. 우리는 늘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먼저 걱정하며 오늘을 산다.


<녹나무의 파수꾼>에 이어지는 이야기인 <녹나무의 여신>은 그 질문에 아주 조용하지만 단단한 대답을 건네는 작품이다.

다시 등장한 레이토와, 조금 더 작아진 치후네


월향신사의 파수꾼 레이토와,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던 치후네는 이번 이야기에서도 그대로 등장한다. 하지만 치후네는 강인하지만 뒤로 갈수록 더 이상 당당한 어른의 얼굴이 아니다. 점점 기억을 잃어가며 자신감마저 사라져 가는 모습으로, 자신의 삶이 희미해지는 공포 앞에 서 있다.


그리고 월향신사에 어느 날, “시집을 팔아 달라”는 부탁을 하는 여고생이 찾아오고, 자고 일어나면 기억을 잃어버리는 소년까지 등장하며 연달아 작은 사건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여고생과 소년은 레이토의 소개로 서로를 만나게 된다. 여고생은 소년의 사연을 듣고 글을 쓰게 되고, 소년은 여고생이 쓴 글의 삽화를 그리게 된다.


그렇게 두 사람은 “미래를 알고 싶어서 녹나무의 여신을 찾아가는 소년”의 이야기를 만들며 한 권의 그림책을 완성한다.


“결국 미래를 모르니까 이래저래 고민하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바로 보여 주면 되죠.”

“녹나무 여신은 미래를 예견하는 능력이 있어. … 그런 스토리로 시작하면 되겠다.” (195p)


그림책 속 소년은 여신에게 자신의 미래를 보여 달라고 부탁한다. 꿈도 없고, 확신도 없는 아이.


“이 여신과 마주한 아이는 꿈을 찾지 못한 소년인 거 같아.” (194p)


하지만 여신은, 미래를 보여주는 대신 전혀 다른 답을 건넨다.


“믿지 않으면 기적은 일어나지 않아.” (222p)


그리고 마침내 소년은 깨닫는다.


“미래 같은 건 필요 없다… 중요한 건 지금이다.” (310p)


여신은 이렇게 말한다.


“미래를 아는 것보다 더 소중한 건 바로 지금이니라.” (354p)


우리는 늘 ‘그때 그렇게 했더라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말로 오늘을 밀어내며 산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말한다. 지금 이 순간을 살지 못하면, 어떤 미래도 우리 것이 될 수 없다고.


그렇게 완성된 그림책은 자신감을 잃어가던 치후네에게 낭독된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기억을 잃어가는 한 사람에게, 그리고 지금을 불안해하는 우리 모두에게 작지만 깊은 용기를 건넨다.




현실에도 존재하는 ‘그 나무’


책 속의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일본 규슈 사가현 다케오시에 실제로 ‘그 녹나무’와 닮은 거대한 나무가 존재한다.


추정 수령 3천 년, 높이 27미터, 뿌리 둘레 26미터.

동굴 안에서 혈육의 진심을 전하는 의식이 이루어지고,

그 의식을 주재하는 자가 바로 ‘녹나무 파수꾼’이다. (394p)


그래서 이 이야기는 더 오래 남는다. 그저 소설 속 환상이 아니라, 어딘가 실제로 있을 것 같은 믿음이 되어 마음에 뿌리를 내리기 때문이다.




<녹나무의 여신>은 미래를 보여주는 이야기처럼 시작하지만, 끝까지 읽고 나면 오히려 미래를 내려놓게 만드는 이야기다.


우리는 모두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열심히 살고, 고민하고, 불안해한다. 그리고 그 불안이 클수록 자꾸만 앞날을 먼저 확인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여신은 말한다. 미래를 아는 것보다 더 소중한 건 어제도, 내일도 아닌 바로 지금이라고.


그래서 <녹나무의 여신>은 미래를 알려 주는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을 살아도 괜찮다고 말해 주는 이야기로

오래 마음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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