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기록> 녹나무의 파수꾼 / 히가시노 게이고

by 크랜베리

‘녹나무의 파수꾼’이라는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것이었다. 녹나무로 무슨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까. 히가시노 게이고는 왜 굳이 ‘파수꾼’이라는 단어를 붙였을까.


그리고 이 책에는 이렇게 묘사된 녹나무가 등장한다.


“덤불숲을 빠져나가면 문득 시야가 툭 트이고 그 앞쪽에 거대한 괴물이 나타난다. 정체는 녹나무다. 지름이 5미터는 되겠다 싶은 거목으로, 높이도 20미터는 넘을 것이다. 굵직굵직한 나뭇가지 여러 줄기가 구불구불 물결치며 위쪽으로 뻗어나간 모습은 큰 뱀이 뒤엉켜 있는 것 같다. 처음 봤을 때는 완전히 압도되어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p.12)

주인공 나오이 레이토는 세상에 환영받지 못한 채 살아온 청년이다. 어머니를 잃고, 회사에서는 억울한 누명을 쓴 채 해고된다. 그리고 세상은 그를 이렇게 규정해 버린다.


“결함 있는 기계는 아무리 수리해도 또 고장이 난다, 그 녀석도 마찬가지여서 어차피 결함품, 언젠가 훨씬 더 나쁜 짓을 저질러서 교도소에 들어갈 것이다, 라고.” (p.28)


하지만 누군가는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그 예언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도록 해.” (p.28)


레이토는 범죄자가 되기 직전, 존재조차 몰랐던 이모 야나기사와 치후네의 도움으로 그녀가 지켜 온 자리, ‘녹나무의 파수꾼’을 잇게 된다.




녹나무에서는 매달 두 번, 특별한 의식이 치러진다.

그믐날의 예념(預念), 보름날의 수념(受念).


“그믐날과 보름날, 두 번이에요. … 그런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p.97)


그믐날 밤에 녹나무 안에 들어가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것을 염원합니다. 그것을 저희는 예념(預念)이라고 합니다. 염원을 맡긴다는 뜻이지요. 예념을 하는 사람은 예념자라고 합니다. 녹나무는 예념자의 그 모든 생각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보름날이 다가오면 그것을 뿜어냅니다. 그때 녹나무 안에 들어가면 그 염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373p)


말로 다 전할 수 없는 마음을 녹나무가 대신 기억하고 전해 준다는 설정이 새로웠다.




“어지간히도 염세적이군요.” (p.475)

“이 세상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인간이라는 건 없습니다. 어디에도 없어요. 어떤 사람이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만은 똑똑히 기억해두도록 하세요.” (p.476)


이 문장은 레이토에게도, 그리고 이 책을 읽는 우리에게도 가장 오래 남는 위로가 된다.




녹나무는 소원을 들어주는 나무라기보다, 말로 다 하지 못한 마음을 잠시 맡아 주는 장소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 곁을 지키는 파수꾼은 사람이 사람을 다시 믿어도 된다고 말해 주는 존재 같다.


우리는 모두 완전하지 않고, 살다 보면 스스로를 결함처럼 느끼는 순간도 많다. 하지만 이 소설은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말한다. 이 세상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은 없다고.


누군가의 기적이 되기보다는, 각자의 삶이 이미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되돌려주는 소설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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