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스러운 로맨스는 멈추지 않는다

일상이라는 현실 위에 로맨스 한 줌

by 오로라

가족들이 잠들고 나면 집 안의 소리는 한 톤 낮아진다.

그렇다고 모든 게 끝난 것도 아니고, 아무 일도 남지 않은 것도 아니다.

다만 나를 부르던 이름들이 잠깐 쉬어가는 시간이다.


요새 나는 이 시간에 특별한 결심을 하지 않는다.

'오늘은 꼭 써야지.' 라거나 '이번엔 제대로 해볼까?' 같은 비장한 말들도 굳이 꺼내지 않는다.

그냥 노트북을 켠다.

무언가를 쓰지 않아도 괜찮은 상태로 그저 켜두는 쪽에 가깝다.


어떤 날은 문장을 하나만 남기고 창을 닫거나, 아무것도 적지 못한 채 돌아서기도 한다.

그래도 이상하지 않다. 이건 내게 성과가 아니라, 숨을 쉬는 것과 같은 습관이니까.


솔직히 말하면, 아주 가끔은 욕심이 나기도 한다.

나의 이 비밀스러운 로맨스가 누군가의 마음에 닿아 반짝이기를,

내가 보낸 밤의 기록들이 누군가에겐 꼭 필요한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글을 쓰는 손 끝과 내 마음에 조용히 머물다 가기도 한다.


오늘도 문장 하나를 겨우 적었다. 다음 줄을 망설이는 찰나, 남주가 나타났다.

"작기님, 망설이지 마세요. 다음 문장은 내가 정해둔 게 있거든요. 자. 받아 적어요."

그의 다정한 목소리에 나를 이끌려는 은밀함이 묻어있다.

나는 노트북을 덮어버렸다. 내가 만든 세계의 주도권을 그에게 넘기지 않기 위한

나만의 작은 저항이었다.


비겁한 합리화처럼 보이지만, 실은 고마웠다.

내가 만든 세계가 거꾸로 나의 망설임을 알아보고 도와주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의 치밀한 방해 덕분에 나는 현실로 돌아올 명분을 얻는다.


내일의 일들은 차례를 지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주부로서, 엄마로서의 하루가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다시 반복될 평범한 일상들에

이름을 붙여주고 의미를 찾아내는 일도 나를 찾아올 것이다.


가족들에게 들키지 않게, 특별한 얼굴 없이, 앞으로도 나는 조용히 나만의 로맨스를 쓸 것이다.



30화 연재를 마칩니다.

이 작은 세계를 함께 지나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전 29화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