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일

안 붓는 날이 더 이상해졌다.

by 오로라

요즘 내가 하는 일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대부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다.

아침에 치운 집은 저녁이면 다시 어질러지고, 세탁기는 비운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금세 다시 가득 찬다.

이쯤 되면 독이 문제인지, 물이 문제인지, 아니면 내가 문제인지 잠깐 헷갈린다.


글도 그렇다. 한 줄을 쓰고 나면 지운 줄이 더 많다. 쓴 시간보다 지운 시간이 더 길 때도 있다.

이걸 계속하고 있자니 가끔은 내가 독에다 물을 붓고 있는 건지, 그냥 물을 흘리고 있는 건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밑 빠진 독이라는 말이 꼭 보람 없다는 뜻은 아닐지도 모른다.

집안일도 그렇고, 글도 그렇다.

채워두기 위해 하는 일이라기보다는 다시 쓰기 위해 비워지는 쪽에 더 가깝다.

남지 않아서 헛수고인 게 아니라 남기지 않기 때문에 계속 가능한 일들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또 붓는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안 하면 큰일 나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손이 먼저 나간다. 그만두는 쪽이 오히려 더 어색하다.


엄마로서의 하루도 비슷하다. 해도 해도 끝이 안 나고 잘한 것도 티가 안 나고,

못한 것만 기억에 남고 눈에 띈다. 그래도 다음 날이 되면 나는 또 같은 일을 한다.


이쯤 되니 이건 희망이나 의지라기보다는 생활이다.


계속 사용하는 그릇은 늘 비어 있는 게 정상이다.

채워두기 위해 두는 게 아니라 쓰고, 비우고, 다시 쓰기 위해 존재하니까.


오늘도 독은 비어 있고, 내 두 손은 젖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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