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깨운 사건

소파에서 벌어진 가장 현실적인 일

by 오로라


소파에 앉아 있었을 뿐이다. 아주 잠깐.

정말로 찰나의 시간이었는데, 눈을 떴을 때 나는 '어떤 소리'에 경악하며 깨어났다.

코를 골다 그 소리에 내가 놀라버린 것이다.


상황을 파악하는 데는 몇 초가 더 걸렸다.

내가 왜 놀랐는지, 이 짐승 같은 소리는 어디서 났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이게 정말 내 비강을 통과해 나온 소리가 맞는지!


TV는 여전히 켜져 있었고 리모컨은 손에 쥔 채였다. 분명 잠들 계획은 없었다. 그저 앉아 있었을 뿐이다.

인생에 '기절' 같은 건 계획해 본 적도 없는데.


코를 골았다는 사실보다 그 소리에 내가 놀랐다는 게 더 충격이었다. 이제 나는 내 몸이 내는 소리조차 예측하지 못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나는 얼른 자세를 고쳐 앉으며 괜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 아무도 못 들었겠지?‘

텅 빈 거실이었지만 이상하게 민망했다.


소설 속이라면 누군가 옆에서 웃었을지도 모른다.

“방금 코 골았어요?” 같은 쓸데없이 다정한 대사를 건네면서.

“마치 동굴 속에 사는 사나운 짐승이 포효하는 느낌이었어요.”라고 하겠지. 거기다 꿀 떨어지는 눈빛은 디폴트.


나는 그 대사를 머릿속에서 한 번 굴려보다가 조용히 지웠다. 이 척박한 현실의 장면을 로맨스 소설에 붙이는 것 자체가 일종의 장르적 절망이니까.


여긴 집이고, 나는 소파 위에 있으며, 코를 곤 생명체는 나 하나뿐이다.


언제부터 이렇게 됐을까.

예전에는 잠들기 전에 양치도 하고, 이불도 펴고, 정중하게 마음의 준비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소파에 엉덩이를 붙이는 순간 의식이 흐릿해진다.


아마도 체력이라는 건 서서히 빠져나가다가, 어느 한계점에서 예고 없이 전원이 꺼지는 방식인가 보다.

졸리지도 않았다. 그저 눈을 떴더니 내가 코를 골고 있었을 뿐.


TV에서는 줄거리도 모를 프로그램이 무심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최대한 몰입한 척 화면을 응시하며, 방금 전의 소동을 아무 일도 아닌 것으로 만들려 애썼다. 코골이의 증거를 시간 속으로 조용히 묻어두고 싶었다.


이 나이에 코골이가 대수냐며 머리로는 이해한다.

문제는 내 마음이 아직 이 현상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몸은 이미 다음 단계로 진화했는데, 마음만은 여전히 뽀송뽀송했던 '예전 버전'에 머물러 있다.


생각해 보면 요즘 나의 하루는 이런 식이다.

앉아 있다가 잠들고, 잠결에 놀라 깨고, 놀랐지만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앉아 있는 루틴.


타인의 눈에는 평온하기 그지없는 하루겠지만, 내 안에서는 소소한 사건들이 끊임없이 터지고 있다. 그리고 그날의 가장 큰 사건은 단연 내 코였다.


잠깐 눈을 붙였을 뿐인데 이렇게까지 자아가 분리될 줄은 몰랐다. 평범한 하루 중 굳이 기억에 남을 장면을 꼽으라면 아마도 이 당혹스러운 만남일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소파에 앉을 때 조금 더 경건해진다. 조심한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라는 걸 알지만, 최소한의 마음가짐은 갖추기로 했다. 예고 없이 터져 나올 내 몸의 포효를 위해서.


오늘도 나는 내 소리에 한 번 더 놀랄 준비를 하며, 조심스레 소파에 몸을 맡긴다.


(겨울이라.. 그런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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