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유배 비즈니스에 우리는 왜 몰입하는가.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계유정난 이후 유배를 가게 된 단종 “이홍위”와 그의 수발을 들던 광천골 촌장 “엄흥도”와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다. 그간 단종과 세조의 이야기는 많은 콘텐츠에서 다뤄왔다. 하지만 그 이후에 유배지에서의 이야기를 다루는 콘텐츠는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에 더 관심이 가기도 했다.
단종이라는 인물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찾기 힘든 비운의 왕이다. 보통 왕위를 뺏기는 경우는 왕이 정치를 너무나도 잘못해서 개인에 대한 응징과 백성에 대한 구원의 의미를 가진다. 혹은 태종처럼 자신의 공과를 찾고 더 강력한 국가를 만들기 위한 목적인 경우이다. 물론 개인의 욕심으로 왕위를 빼앗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건 중앙집권형 국가의 형태가 나오면서부터는 거의 없던 일이다. 더군다나 단종은 우리나라의 어떤 역사에서도 찾기 힘든 혈통에서 완벽에 가까운 왕위 계승자였다. 그걸 후견인의 역할을 해줘도 모자랄 삼촌이 찬탈한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단종을 생각하며 마음 한 곳에 애잔한 감정을 느낀다.
이 영화는 이 감정을 고스란히 가져간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이 영화는 애잔함이라는 감정을 영화 시작 전부터 깔고 시작한다. 그 결과 우리나라 역대 관객 순위 2위와 매출 순위 1위를 기록할 수 있었다. 이러한 기록은 현재 진행형이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관람하고 있다.
2025년을 지나오면서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제 우리나라에는 천만 관객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작품성이 대중성을 대변하지 않았고 사람들은 영화보다 더 다양하고 짧고 활동적인 콘텐츠를 즐기고 싶어 했다. 그래서 천만 관객은 이제는 없는 개념이고 과거에 비교적 단순했던 콘텐츠 세계에서나 통하던 단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왕과 사는 남자는 이러한 내 생각을 아주 시원하게 깨 주었다. 그런데 이것은 비단 내 생각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천만 관객이 다시 나올 수는 있어도 처음부터 이 영화로 나올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대중의 선택을 받았고, 영화계에는 또 하나의 기회가 되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이 영화에 관심을 가지고 보게 되었을까? 왜 1600만이 넘는 사람들이 영화관을 찾았을까? 그 이유에 대해 나름대로 생각을 해보자면 이렇다.
첫째, 왕과 사는 남자는 처음부터 대중에게 친숙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 영화는 대중에게 익숙한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가져왔다. 그 결과 많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단종이 유배를 갔고, 그곳에서 단종을 모시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는 말로 이 영화를 설명할 수 있다. 이만큼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는 없다. 그래서 처음에 영화에 관심을 가지게 하는데 굉장히 도움이 됐을 것이다. 여기에는 감독도 한몫한다. “장항준” 감독은 다작을 하는 감독은 전혀 아니고, 항상 좋은 결과를 내던 감독도 아니다. 가장 최근작 “리바운드”도 흥행에 있어서 뼈아픈 경험을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장항준 감독만큼 대중에게 친숙한 감독도 없다. 여러 예능에 나오면서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를 구축했다. 이것도 영화를 설명하는 데에는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요새는 대중이 어려운 영화보다는 친근하고 편안한 영화를 선택하기 때문에 이는 정말 큰 힘이었다.
둘째, 내용이 다양하거나 어렵지 않고 단조로우며 쉬웠다. 이 영화는 장항준 감독과 제작진, 투자자, 배급업체가 그간 공부해 온 한국 영화 산업의 데이터의 산물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이 영화에는 개인이나 특정 단체의 고집이 들어가 있지 않다. 영화의 모든 것은 전부 대중을 향하고 있다. 개봉 일자부터 배역 캐스팅, 연출, 전개 모든 것에 대중과 관객을 고려한 것이 눈에 보였다. 특히나 연출과 전개는 놀라운 수준이었다. 그 어디에도 장항준 감독의 생각이나 메시지는 보이지 않았다, 고민한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랬기 때문에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보러 온 것이다. 영화는 생각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거기에 메타포나 심오한 주제는 없다. 그렇지만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몰입할 수 있었다.
셋째, 실제 지역이 있다. 이건 최근에 개봉한 영화 “살목지”에도 나오는 현상인데, 왕과 사는 남자를 봤건 보지 않았건 많은 사람들이 광천골을 찾았다. 거기서 단종을 애도하기도 하고 영화와 비교하기도 했다. 이게 재미있는 포인트인데, 이 영화는 영화라는 콘텐츠로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영화를 통해서 내가 직접 움직이고 찾아갈 수 있는 또 다른 콘텐츠가 생겼고, 여기에 많은 사람들이 반응한 것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2시간 가까운 시간 동안 어두운 곳에서 좁은 공간에 가만히 있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기엔 즐길 것이 너무 많다. 그래서 영화관의 불황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고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없어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영화관 바깥의 콘텐츠와 결합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냈다. 그리고 그 효과에 힘입어 영화계 역사에 남을 여러 기록을 작성할 수 있었다.
이 세 가지 외에도 여러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경쟁작의 부재와 워너원의 재결합, 반응을 보자마자 상영 횟수를 대폭 늘린 영화관, 천만이라는 숫자가 대중에게 주는 기대감 등등.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저 세 가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흥행을 두고 여러 말들이 오가고 있다. 그럼에도 여기서 우리가 파악해야 할 것은 “왜 봤느냐”이다. 그 이유를 찾아야 또 다른 천만 영화를 기대할 수 있다. 단순히 “재미”에 기대거나 작품성에 의존하기에는 취향이 너무나도 많아졌고, 콘텐츠도 너무나도 다양해졌다. 그래서 이전과는 다른 접근 방법을 고민해봐야 하는데 마침 좋은 케이스가 하나 나왔다. 이를 토대로 여러 업계에 도움이 되는 길을 모색해봐야 한다. 그랬을 때 사람들은 다시 영화관을 많이 찾을 것이다.
P.S. “저도 그 안에 있습니까?”, “그대는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