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과 지옥을 잇는 얇고 날카로운 실 "시라트"

우리는 매일 매 순간 각기 다른 시라트 위에서 살아간다.

by CRANKWITHME


인간은 살아간다. 그 말은 인간은 죽어간다는 말과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는 매 순간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끝이 어딘지 모를 일직선의 길 위를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게 전쟁 속이든 태평성대든 상관없이 우리는 그 길 위에 항상 놓여 있다. 그 길은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니요, 두 발로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언제든 흐르는 시간으로만 갈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시라트를 벗어날 수 없다.

영화 “시라트”는 3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딸을 찾아 헤매는 가족과 파티를 찾아 헤매는 히피족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바로 이 영화의 배경이다. 그냥 전쟁도 아니고 세계대전이다. 그리고 과거에 있던 1, 2차가 아니라 3차 세계대전이다. 핵 또는 그 이상으로 어마어마한 무기가 판치는 상상을 하게 만드는, 그래서 삶의 의지나 개선의 여지를 모두 날려버리는 단어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무기력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큰 공터만 있으면 스피커를 제단처럼 쌓고 숭배하듯 레이브 파티라는 의식을 밤새 치른다. 극복할 수 없는 절망을 맛본 이들은 결국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무형의 어떤 것에 심취한다. 그저 단순한 음악에 몸을 맡긴 채 자신만의 춤을 추는 그들은 그 절망을 잊고자 하며 무언가에 기대어 구원을 바라고 있다. 그렇게 또 다른 의식을 찾기 위해 이들은 과감히 대열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창조한다. 거기에 다른 이유로 파티에 가려는 가족과 동행하며 현실에서 벗어나 고통이 없는 세계에 다다르고자 한다. 그들은 아마 이런 생각을 가지지 않았을까? ‘난 이렇게 죽을 순 없어.’ ‘이 세상에서 도망쳐서 나만의 천국으로 갈 거야.’ ‘이렇게 죽을 바엔 난 자유를 찾아 떠나겠어.’ 이미 실패한 인간의 통제에서 벗어나서 순종할 수밖에 없는 존재의 세상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지 않았을까? 이러한 소망은 사막을 건너면서 또다시 절망으로 변한다.

전쟁은 극소수의 선택으로 인해 발생된다. 하지만 그 책임은 전체 혹은 대다수가 진다. 여기 사막을 횡단하는 사람들은 그 책임을 나눠 지며 절망을 맛보았다. 나의 의지와 노력으로는 어찌 할 수 없는 절망. 그러한 절망은 세상을 의심하게 만들고, 결국은 포기하게 만든다.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이 세상을 증오하며 다른 무언가에 기대게 된다. 음악, 문학, 종교 등등 다양한 것에 기대어 죽어가는 것이다. 그렇게 이들은 사막을 횡단하고 있었다. 그러다 그들 중 가장 어린아이가 별 거 아닌 이유로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이를 잊기 위해 만든 신전은 이들이 그렇게 피해왔던 시라트 그 자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들은 그때부터 살아남기 위해 갖가지 노력을 한다. 영화 속에서는 죽어가는 시간을 받아들인 것 같았지만 죽음의 위협과 자신들의 무기력을 저버리는 또 다른 절망을 앞에 두자 누구보다 열심히 도망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그 신전 속에서 절반만 도망칠 수 있었다. 자신이 떠나보낸 이들의 허망한 마지막을 기억하며 서로를 위로하던 그들 또한 그 허망함을 피하지 못했다.

우리는 시라트 위에서 전진을 선택하거나 두 발로 걷는 것이 아니다. 단지 시간이 흐르면 알아서 가고 있을 뿐이다. 여기에는 그 어떤 도덕적 책임도, 악행도 영향을 주지 않는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시라트 위에서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단지 그저 가고 있을 뿐이다. 어느 순간부터 큰 의미에서의 정의나 선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 의심을 가지게 되었다. 결국 우리 모두는 시라트 위에 있는데 저게 무슨 소용일까? 거기서 벗어나려고 노력한다고 해도 결국 기차를 타고 한 철로를 달리는 그들처럼 죽어가는 것뿐인데.

P.S. “종말은 이미 예전에 시작되었어.” “아무 생각 없이 걸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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