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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러 Sep 17. 2022

검정치마 3집 Part.3 [TEEN TROUBLES]

지나고 보면 아름다운 지난 여름날의 기억


검정치마 3집 Part.3 [TEEN TROUBLES]

2022


01. Flying Bobs

02. Baptized In Fire (불세례)

03. 어린양

04. Sunday Girl

05. Friends In Bed

06. Cicadas (매미들)

07. Garden State Dreamers

08. Follow You (따라갈래)

09. Jersey Girl

10. Love You The Same

11. Powder Blue

12. Electra

13. Min (미는 남자)

14. Jeff And Alana

15. Ling Ling

16. John Fly

17. 99%

18. Our Own Summer


★★★★☆



분주한 밤하늘 위로는 별이 아닌 것들만 떠 다녀 잡을수 없는걸 따라서 방황했던 어린날의 기억 
앙상하게 꿈을 꿨지 담담하게 녹슬었네 떠나야 할 시간이 지난 너는 그냥 흐린 메아리야

검정치마 - Cicadas
그 때는 알 수 없었지요. 왜 나에게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지. ‘어쩌면 저주가 아닐까?’라고도 생각해 봤지만, 난 그저 열일곱을 살던 중이었어요. 귀가 찢어질 듯 매미가 울던 1999년의 여름 밤, 혹독하고 푸르던 계절이 깊게 긁고 간 자리. 만약에 그때로 돌아가서 처음으로 다시 할 수 있다면, 난 당장 무엇이든지 하겠어요. 하지만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아마 같은 실수들을 또 다시 반복하겠지요. 그래도 괜찮아요. 전부 다 내가 원했던 거에요. 이 모든 게 다 내가 원했던 거라구요.

검정치마 - Flying Bob

Part.1 [TEAM BABY]와 Part.2 [THIRSTY]로 세상 모든 사랑의 형태를 노래하던 검정치마의 Part.3 [TEEN TROUBLES]는 앞선 두 앨범과는 결이 다르다. 이번 작품에서 그는 사랑의 감정에 아직 미숙한 1999년, 따스한 햇살 아래 방황하고 있는 17살 조휴일 본인의 삶을 솔직하게 그려낸다.


‘Flying Bobs’는 매미 소리와 함께 깔리는 나레이션, 그리고 몽롱한 드림 팝 사운드를 통해 17세 조휴일의 여름밤으로 리스너들을 초대한다. 어쩌면 저주일 것이라고 원망하던 사건들,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하는 마음, 같은 실수를 반복할 것임에도 그것 또한 내가 원해서 일어난 일 등을 언급하며 그의 10대 시절이 어땠는지 대강 짐작게 한다. ‘I’m living on the Nyquil and dreaming MTV’. 나이퀼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감기약이자 수면제다. 나이퀼에 빠진 현실에서 MTV를 꿈꾸는 삶은 고된 현실 속에서 꿈을 이루기 위해 발버둥치는 여타 10대들과 다르지 않다.


앨범은 아이러니하게도 화자의 한 사랑이 끝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펑크 록 기반의 신 나는 사운드에 완전히 식어버려 끝난 사랑을 이야기하는 ‘Baptized In Fire’는 전작 [THIRSTY]의 ‘Lester Burnham’과 비슷한 골조를 지니고 있다. 육체적인 쾌락과 함께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던 지난날들의 무의미함과 허무를 노래한다.


‘어린양’은 성경과 관련된 은유를 통해 자신의 음악을 좋아하는 팬들에게 바치는 곡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길 원하면서도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들로부터 상처받지 않으려는 여린 마음이 느껴지기도 한다. ‘Sunday Girl’은 성경에서 공룡을 언급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신앙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지만, 그럼에도 새롭게 마주한 사람에게 끌려 불타오르는 감정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며 그를 ‘My Jesus Girl’이라 칭한다. ‘Friends In Bed’는 종교적인 삶보단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며 일탈을 즐기는 것으로 하루를 보내지만 외로움이 가시지 않는 혼란스런 감정이 드러난다. 화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종교적 존재를 믿기보단, 당장 자신의 옆에 존재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더 믿으며 살아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앨범 내에서 가장 강렬한 펑크 사운드를 들려주는 ‘Cicadas’는 여름날 쉴 새 없이 울어대는 매미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감정이 느껴진다. 매미는 영원함을 꿈꾸며 울지만 결국은 껍데기만 남아 공허해지는 생물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짧고 굵은 삶을 살다가는 그 모습은 아름답기도 하다. 결국은 후회와 상실, 공허함으로 가득한 지난 어린 날들이 그 당시에는 알 수 없었지만, 지나고 보면 제일 아름다웠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밟고 짧게 타올라라’라고 절규하듯 외친다.


‘Garden State Dreamer’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난 화자는 미숙한 자신을 능숙하게 리드하는 상대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매일 같은 TV를 보고,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잠에 빠진 상대방을 멍하니 바라보아도 그저 행복한 모습이다. ‘Follow You’는 구체적인 상황을 묘사하며 그저 상대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는 자신을 들개에 비유하며, 그럼에도 여전히 행복한 감정을 드러낸다. ‘Jersey Girl’은 사랑하는 상대를 위해 무엇이든지 해 줄 수 있다는 마음을 노래한다.


하지만 행복은 얼마 가지 못하고 다시 혼란스러워진다. ‘Love You The Same’은 여전히 상대를 사랑하지만, 친구인지 연인인지 확신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 마을과 상대의 친구들 전부 좆까라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상대의 주변인들에 의해 문제가 생겼음을 짐작할 수 있다. ‘Powder Blue’에서 결국 화자는 방향성은 없고 급하기만 한 이 관계 때문에 미쳐버릴 지경이다. 상대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Electra’는 둘의 사이가 점점 멀어지며 이번 사랑도 결국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음을 보인다.


색소폰 사운드가 들어간 블루지한 트랙 ‘Min’에서 화자는 자신이 의지하는 또 다른 사람을 찾아간다. 이전의 관계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상대가 남성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단순한 우정인지, 아니면 그 이상의 감정인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결국 화자는 또다른 관계를 찾아 방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전체적으로는 레게 풍으로 흘러가다 갑자기 메탈을 섞어버리는 트랙 ‘Jeff & Alana’는 사랑하는 상대가 떠나 방황하는 친구 Jeff의 건강상태를 걱정하며, 내년에도 그를 볼 수 있길 바란다. 그의 편두통이 꾀병인 줄로 알았지만, 이제 자신도 그러하다는 말을 통해 그의 피폐한 모습이 어쩌면 자신의 미래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의 OST로도 쓰인 ‘Ling Ling’은 앨범에 수록되며, 드라마와는 다른 새로운 의미가 생겼다. 화자는 중국계로 추정되는, 자신을 열렬히 사랑해주는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 하지만 이 관계에 쉽게 집중하지 못하고 금방 식어버린다. 이는 결국 마지막 가사에서 말하듯 흘리는 순간 떠내려가는 한 줌 모래와 같은 관계다. ‘John Fry’는 이러한 방황의 과정에서 한 남자와도 짧게 사랑을 나눴음을 고백한다. ‘99%’에서는 성공을 꿈꾸지만 진전이 없는 현실을 살아가는 상대에게 질려버리고 작별을 고한다.


마지막 트랙 ‘Our Own Summer’에 이르러 화자는 자신의 마음속에 품은 상대를 다시 만나러 가보지만, 관계를 다시 이어나갈 순 없음을 깨닫는다. 결국, 열일곱 사랑은 그렇게 허무하게, 공허하게 울어대는 매미소리와 함께 끝이 난다.


[TEEN TROUBLES]는 조휴일 본인의 자전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그려낸, 사랑을 찾아 이리저리 방황하는 한 10대 소년의 솔직한 자기고백이자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던 지난 1999년의 어느 여름을 회고하는 앨범이다. 무려 18개나 되는 트랙 안에 담긴 서사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리스너는 화자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의 10대는 어땠나’를 회상토록 한다. 이러한 노스탤지어적 정서 가득한 특징 덕분에, 어찌 보면 그동안의 검정치마 디스코그래피 중에서 가장 보편적이라고 볼 수도 있는 작품이다.


또한 [TEEN TROUBLES]는 조휴일이라는 아티스트가 그동안 만든 작품들에서 드러난 정서와 가치관의 시작점을 낱낱이 드러낸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록 스타를 꿈꿨던 그의 어린 시절에 걸맞게, 장르적으로도 데뷔앨범 [201]이 연상되는 펑크 록을 기본 골조로 삼았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전작들에서 이미 시도한 바 있는 드림 팝, 포크와 같은 스타일이 절묘하게 섞여 있다. 기존 검정치마의 음악이 [201]을 좋아하는 사람과 [TEAM BABY]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많이 갈렸던 것을 생각해보면, 이번 작품은 그 모든 리스너들을 만족하게 할 수 있는 다양한 음악적 색깔을 가졌다는 점에서 그의 음악 세계를 집대성한 작품이기도 하다.


10대는 미숙하다. 스스로 바꿀 수 없는 주변환경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발버둥치고 친구들과 일탈을 저지르기도 한다. 사랑의 감정에 익숙하지 않아 쉽게 타오르고, 꺼지고, 상처받는다.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상황이 원망스럽다. 수많은 실수와 후회로 점철된 과거는 지워지지 않고, 삶이 끝나는 날까지 자신을 따라다닌다. 하지만 결국은 그 때의 경험들이 모이고 모여서 지금의 자신을 만든 것이다. 시간이 지나 과거는 미화되기 마련이라 할지라도, 순수한 감정으로 살아가는 당시의 모습만큼은 참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기에 [TEEN TROUBLES]는 자신의 과거가 지나치게 어둡거나 후회로 가득해서 떠올리기 싫을 정도라는 사람들에게, 그래도 아름다운 점이 있지 않았냐며 조심스레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식의 위로로 다가오기도 한다. 현재에 지쳐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소중한 가치를 다시금 상기시켜주는 것. 어쩌면 음악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이 아닐까. [TEEN TROUBLES]는 이를 멋지게 해냈다. 검정치마 커리어 사상 최고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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