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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러 Mar 09. 2019

아소토 유니온 1집 리뷰

정통성에 대한 고집이 만들어낸 전설


아소토 유니온 1집 [Sound Renovates A Structure]

2003



 '흑인음악'이라는 단어가 한국 대중음악계에 소개된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이미 흑인음악에 영향을 받은 음악들을 '대중음악'이라고 불렀다. 애초에 흑인음악 자체가 대중음악사에 남긴 영향력 자체가 넓기에, 서구 록 음악에 큰 영향을 받은 70년대부터 그 뿌리를 찾아가 볼 수도 있겠지만, 우리나라가 슬슬 흑인음악을 인지하기 시작한 때는 아마 서태지와 아이들, 그리고 듀스가 탄생하던 1990년대 중후반부터일 것이다. 표절 논란이라는 씁쓸한 면이 있긴 해도, '난 알아요'가 처음으로 힙합 장르를 대중음악계에 끌어 올리며 혁명을 몰고 오며 물꼬를 텄다. 이후 이현도의 흑인음악에 대한 애정과 사랑이 넘쳐나는 [Force Deux]가 발매되었고, 이 앨범은 한국 힙합계의 뿌리가 되었다.


 이후 흑인음악에 대한 음악계의 관심이 커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힙합 외에도 R&B, 소울 같은 장르의 본격적인 발굴 작업이 시작되었고, 이는 우리나라 특유의 감성 발라드 유행의 기초가 되었다. 그렇게 한국 대중음악은 '흑인음악에 영향을 받은 장르들의 총집합'이 되었다. 이렇다 보니 뭔가 이상해졌다. 정통 흑인음악은 완전한 비주류였고, 여기에 무언가가 결합하고 혼합된 것들이 주류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물론 당연한 현상이고, 나쁜 일도 아니지만, 메이저씬에서 펑키하고 재지한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를 찾을 수 없는 것은 다소 아이러니했다.


 이러한 시기에 등장한 앨범이 [Sound Renovates A Structure]다.


 앨범 제목에서 그대로 드러나듯, 아소토 유니온은 패기 넘치게 '사운드의 재건'을 선언하며 대중음악계에 등장했다. 일단 그들의 무대에서 가장 시선을 끄는 점은, 드러머가 노래를 한다는 것이었다. 밴드의 전설인 The Beatles만 봐도, 드러머인 Ringo Starr가 제일 주목을 못 받을 정도로 드러머의 취급이 그리 좋지 못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드러머가 호기롭게 맨 앞에 나와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것은 그 모습 자체만으로도 꽤 신선하고 충격적이었다. 그렇다고 노래에 신경 쓰느라 박자가 단조로운 것도 아니었다. 지금은 윈디시티로 더 유명한 아소토 유니온의 드러머이자 보컬이자 프론트맨, 김반장의 모습은 자유로움 그 자체였다. 자신이 만들어가는 그루비한 박자에 스스로 몸을 맡기고, 때에 따라 리듬에 변주를 주기도 하며 능구렁이처럼 그 위에 자연스럽게 보컬을 흘리는 그의 모습은 전례를 찾을 수 없었다. 이러한 신기한 광경에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은 어느새 그들이 선사하는 펑키하고 그루비한 정통 흑인음악에 매료되었다.


 인트로 트랙 '...Sound Renvoates A Structure'부터 특이한 리듬과 즐거운 에너지가 넘쳐난다. 딱 이 트랙만 들어보면 '아프리카'의 스테레오타입이 떠오를 것이다. 자유분방하게 북 치면서 노는 원주민들의 모습. 하지만 이 트랙은 아소토 유니온이 이 앨범을 통해 청자에게 선사할 본토 흑인음악 요소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인트로가 끝나자마자 다음 트랙 'We Don't Stop'이 탄력 넘치는 베이스 사운드와 그루비한 기타 리프를 때려 박는다. 탄력적인 브라스 사운드와 멋진 추임새가 중간중간 곡 위에 자유롭게 올라가 춤춘다. 보컬도 사운드의 중심이 아닌, 일부로서 작용하며 자연스럽게 흘러들어 간다. 즉흥적이고 자유롭지만, 모두 정교한 리듬 위에서 치밀하게 연주되는 것이다. 이런 사운드를 수용하는 것이 처음인 청자들은 당황하면서도 결국 그들의 전례 없는 재지함에 매료된다.


 [Sound Renovates A Structure]는 정통 흑인음악 안에서도 존재하는 여러 가지의 사운드를 보여주고자 노력한 흔적이 드러난다. 앞서 이야기한 'We Don't Stop'이 끝나면 기다리고 있는 것은 느린 비트에 소울풀하지만 교묘한 펑키함을 드러내는 'Make It Boogie'이다. 윤미래와의 듀엣이 인상적인 'Blow Ma Mind'는 2019년 현재, 레트로한 감성을 제대로 저격할만한 그루비함으로 무장한 곡이다. 다이나믹 듀오라는 이름을 만들기도 전인 두 래퍼, 최자와 개코의 어린 패기가 넘쳐나는 래핑을 들어볼 수 있는 정통 펑키 힙합 'Mad Funk Camp All Starz' 역시 놓칠 수 없는 트랙이다. 즉, 이 앨범은 훗날 '무브먼트'라는 초대형 힙합 크루의 태동을 엿보는 소소한 재미도 있다.


 하지만 결국 모든 장점을 다 제쳐놓고 보았을 때, 이 앨범이 대중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것은 타이틀곡인 'Think About' Chu'의 공이 크다. 지금도 많은 뮤지션들이 커버하고 리메이크곡을 낼 정도로 대중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다. 지금도 이 곡을 듣는 사람들이 쓰는 표현인 '싸이월드 감성'은 이 곡이 가진 대중성을 그대로 표현한다. 물론 아소토 유니온 본인들은 이 앨범의 대중성 자체에 큰 기대를 걸진 않았던 것 같지만, R&B 발라드와 소울에 심취한 당시 대중음악계에서, 'Think About' Chu'는 그 취향의 골조에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면서도, 다른 R&B 곡들에서는 느낄 수 없는 독보적인 힘이 있는 곡이었다. 앨범 내에서 가장 심플한 사운드를 지녔지만, 그 속에는 사랑의 감정을 딱 절제된 모습으로 표현하는 치밀한 계산이 숨어 있다. 


 아소토 유니온, 'Think About' Chu', 그리고 1만장이 넘게 팔린 [Sound Renovates A Structure]의 성공은 우리나라가 정통 펑크, 재즈를 받아들이는 그 시작점을 당당히 만들어낸 기념비적인 앨범이다. 자칫 천편일률적인 양산형 R&B의 늪으로 빠질지도 몰랐던 대중음악계에 그들이 부여한 것은 '다양성'이었다. 결국, 그들이 만든 다양성이 어쩌면 지금까지도 트렌드를 주도하는 국내 R&B의 질적 향상을 유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앨범이 발매된 지 16년 정도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담긴 사운드는 여전히 세련되었다는 점에서 이 앨범이 가진 파급력과 힘이 느껴진다.


 흑인음악에 대한 사랑과 고집으로 만들어진, 그야말로 장인의 작품이나 다름없는 명반을 남긴 아소토 유니온은 아쉽게도 이 앨범을 마지막으로 윈디시티와 펑카프릭으로 갈라졌다. 아쉽게도 김반장은 이제는 대중음악계에 새로운 영향을 안겨주는 뮤지션은 아니지만, 윈디시티를 통해 레게라는 또 다른 흑인음악을 보여주며 음악계의 다양성만큼은 여전히 지탱하고 있다. 물론, 아소토 유니온이 지속해서 활동했다 한들, 또 새로운 충격을 안겨주기보단 여전히 그들만의 즐거운 음악을 했을 것이다. 그러니, 어쩌면 대중음악사적으로 보았을 때, 국내 흑인음악의 표본과도 같은 불후의 명반 하나를 남긴 채 해체한 것은, 아소토 유니온을 더욱 전설 속의 밴드처럼 만들어 준 행보일지도 모르겠다.


* 참고서적 : [한국대중음악명반 100 앨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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