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ythingbut Dec 01. 2023

‘AI’와 나

영화 <스타워즈>의 한 장면이었다.


홀로그램 통신기이다. 손바닥만큼 작게 축소된 레아공주에게서 파란빛이 난다. 장난감이라고 하기에는 신기하고, 실제라고 하기에는 묘하다.


나는 내심 가까운 미래에는 그러한 유의 신문물이 넘쳐날 것이라고 믿어버렸다. 딱히 내세울만한 과학적 근거는 전혀 없어도 마음만큼은 설레었다.






이십 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홀로그램 전화기는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나처럼 과학책을 펼치면 졸음이 쏟아지지만, 영화 속 설정에는 양껏 너그러운 키드를 위한 소품이었던 것이다.


그 대신에 생겨난 것은 로봇청소기였다. 정확히는 '원치 않게' 생겨버린 초창기의 로봇청소기였다.


얼핏, 일에서 이초 남짓 보면 스타워즈 속 로봇 R2-D2를 닮기는 했지만, 성능은 여간 불안정한 게 아니다. 한 번은 청소를 시켜두었더니, 엉뚱하게 전선을 잘끈 씹어놓기도 했다. 바닥에 너저분한 것들을 모조리 싹 치워놓지 않는 한 또 다른 전선이나 무엇을 오징어다리 마냥 질겅질겅 뜯을지도 모른다(맥주 한 캔을 마시면서). 


이래저래 우리 사이에는 신뢰가 없었고, 나는 매번 직접 청소기를 돌린다. 훨씬 빠르고 집안이 훨씬 말끔해진다. 어떤 이유로 은근히 그것과 나를 비교하게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청소를 마치고 가끔은 로봇청소기를 내려다보게 된다. 그 애물단지는 천연덕스럽게 야금야금 전기만 축내며 거실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또 다른 기기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티브이의 전원을 켜면 말을 걸어오는 지니이다.

 

어마어마한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다는 그녀는 상냥한 목소리로 원치 않은 광고나 정보들을 나열한다.


물론 한 번 정도는 나를 웃게 했다. 통화 중에 내가 장난삼아던진 "오냐."라는 말을 낚아채고는 '고릿적에 쓰는 말투입니다'라며 일침을 놓았다.


하지만, 유머란 인간의 특성이었는지, 그 후로는 웃을만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여전히 귀찮기만 하다. 가면 갈수록 이름을 언급한 적도 없는데 모르쇠로 일관하며 제 할 말만 해대는 통에 개명을 고민하게 한다. 만일 빠뚜라빠뚜빠야도(‘총 몇 명’에 등장한 하얀 강아지의 이름이다)로 이름을 바꾼다면, 거실에 울려 퍼지는 친절을 가장한 말들이 사라질 테다. 지은이조차 외울 수 없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지니가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인공지능처럼 도덕적인 존재도 없다. 그것들은 어느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무자비한 일들을 행한 적이 없다. 하지만 그녀에게선 마주치면 곤란한 일이 벌어질 듯한, 박식한 오지라퍼의 향이 난다.






어릴 적의 예상과 달리 나는 신문물들과 별로 매끄러운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다.


아마 미래라는 것은 여전히 아득히 남아있겠지만, 지나온 경험에 기대어 보면 퍽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우선, 검색기능에 암기력을 내어준 노인이 떠오른다. 노인은 어쩔 수 없이 인공지능을 곁에 두고 생활해 나갈 수밖에 없다. 불을 발견한 인류가 그랬듯이 도구란 거스를 수 없는 데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유머는 없어도 명석하며 기능적으로 우월한, 체력적인 한계를 모르는, 고로 당해낼 재간이 없는 그것들과 동고동락할 테다. 나도 모르게 그것들을 의인화하다 어느 순간에 그들이 무서워지려나. 나는 그저 익숙한 대로 끄적거리며 노인의 심정을 글자를 기록할지도 모른다 - 도대체 나의 존재는 무엇인지 물으며. 





작가의 이전글 키키와 케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