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기 PR시대가 싫다.

솔직한 불호

by 최광래

자기 PR도 스펙이라고 한다. 스스로를 드러낼 줄 아는 사람이 멋지다고 한다. 기록하는 이유, 증명하는 이유, 네트워킹 하는 이유가 그렇다고 말한다. 근데 이거 주종관계가 좀 바뀐 것 같다. 요즘은 PR을 위한 PR이 더 많은 것 같다. 자기 PR의 근본이 무엇이냐. 필요한 상황에서 나를 알리는 일인데, 필요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알려야만 하는 것 같다. 대체 왜?


기회는 언제 찾아올지 모르니까요

그래. 기회가 언제 찾아올지 모른다는 말. 참 매력적이면서 두려운 말이다. 언제 찾아올지도 모를 기회에 나를 맡기는 느낌이랄까. 기회를 얻기 위해 사는 걸까? 기회라는 말이 언제부터 그렇게 주목받기 시작했나. 보통 우리는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하지,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하진 않는 것 같다. 아니, 사용을 떠나서 기회라는 건 결과적인 이야기 아닌가? 보통 설득할 때 '이건 기회예요.'라고 말하지 않나. 그러니까 그게 잘 될지, 안될지도 모르는 데 기회를 얻기 위해서. 나를 꾸준히 알려야 한다는 것 자체가 주객전도가 제대로 됐다. 그리고 기회란 것 자체가 잘 되고 안 되고를 알 수 없는 일이잖아. 알리던, 안 알리던 기회는 오고 기회를 붙잡는 것보다 결과적으로 성과를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기회는 많이 잡았지만, 성과는 딱히 만들지 못하는 타입이니까. 그렇다고 그 시간들이 실패나 낭비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냥 성과가 나지 않았을 뿐이다.


그리고 사실, 나는 먼저 다가오는 사람들을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행동한다. 문장으로 써놓고 보니 안타깝지도 않다. 당연한 사실, 나도 내 이익을 위해 행동하고 우리는 각자의 이익을 위해서 투쟁하고 조율하고 합의한다. 그러니까 내게 기회를 준다느 사람들도 사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는 기회라는 단어를 조금 깎아내리고 싶은 것이다. 뭐 그렇게 대단한 거라고 기회를 가지지 못하면 바보가 되는 거고, 기회를 잡으면 대단한 사람이 되는 것 마냥 말이 되는 건지. 기회가 중요한 게 아니라 결과가 중요한 거였잖아. 새삼스럽게.


기회를 조져놓으니, 자기 PR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생각하게 된다. 억지로 만들어 낸 기회들이 과연 내게 진정으로 의미 있을까?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내게 권하는 것들이 정말 좋은 기회가 될까? 언젠가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적이 있었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이 보낸 제안이었다. 역시나 나랑은 맞지 않는 자리였고, 나는 그것을 기회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내가 아닌 누군가여도 상관없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취업 시장의 불균형을 욕한다. 구직자가 을이 되어야 하는 상황에 대해 안타까워한다. 그런데, 구직자가 을인 상황이 차라리 낫다. 빈 틈을 파고들어서 목적에 맞게 나를 어필할 수 있으니까. 적어도 회사가 제안하는 상황에 맞춰 나를 PR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구직자가 을이 아닌 상황이 만들어진다면? 정말 자기 PR이 능력이 된다면? 내가 잘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남에게 맡겨버리게 되는, 회사도 도박을 걸어야만 하는 그런 상황. 누구 하나도 서로를 잘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비합리가 눈 앞에 펼쳐진다. 행운이 따를 수도 있지만, 서류와 껍데기를 보고 하는 선택은 대부분 어긋난다. 속에 무언가를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자기 PR은 만능이 아니다. 정답도 아니며, 그냥 장단점이 있는 방법 중 한 가지일 뿐이다. 이 점을 알고 출발하면 훨씬 낫다. 실제로 누군가는 자기 PR을 통해 좋은 기회를 만나고, 성과를 만들어나가며 성장하고 있을 테니까. 그렇다고 그게 나의 정답이 될 거라는 맹신은 걱정이 된다. 각자에게 맞는 길이 있고, 타이밍이 있고, 상황이 있다. 그리고 서투르게 쌓아 올린 명성은 결국 무너진다. 높이에만 집중해서 명성을 쌓다가 무너지면 추락사하는 거고, 느리더라도 단단히 쌓으면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나는 무너지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느낀다. 자주 무너지면 새로 탑을 쌓는 것 자체가 어려워진다.


마지막으로, 성과란 게 사실 나 혼자만의 역량이 아니다. 뭐 팀을 꾸리고 사람들을 부리는 것조차 능력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온 세상의 이해관계가 얼마나 복잡한데. 내가 마라톤을 완주하는 것조차 나 혼자만의 능력이 아니다. 신발부터 옷, 공원이라는 조건, 맑은 날씨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법과 환경이 존재한다. 최악을 생각하며 비교하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내가 어디까지 잘했고, 내가 어떤 것을 잘했는지 명확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밖에 나가서 붕어빵 하나도 못 파는 사람들이 브랜드와 마케팅을 논한다. 자기 브랜드 하나 만들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브랜드 성공의 법칙 5가지를 팔아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 중요한 것은 내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하고, 내가 한 것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이다. 적어도 나는 프로젝트를 자기 것이라 말하는 사람보다는, 자기가 어떤 역할이었고 어떤 감사한 사람들과 그 일을 함께 했는지를 이야기하는 사람과 일하겠다. PR을 잘하는 사람보다는 일을 잘하는 사람이 좋다. 사실 그게 당연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