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취향 극복기
학창 시절에는 친구들을 따라 이과에 갔다. 공대 입학 정원은 많은데, 이과의 수는 적으니 당연히 이과를 가야 한다는 논리에 설득당했다. 정작 이과에 가서는 미대를 갔다. 이과에서 공대를 가면 예상대로지만, 이과에서 미대를 가면 특별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기대였다. 경우의 수는 적었지만, 그것이 상위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그냥 0.1% 정도 되는 인간일 뿐이었다.
미대에서는 당연히 바닥이었다. 그림은 그려본 적도 없고, 애초에 예술에 관심이 없다. 그리고 옷도 그냥 무난하게 입는 게 좋았다. 과감한 그들의 취향을 따라 하려 무리를 하다 보면, 촌스러운 나 자신만이 남았다. 이것저것 다 갖다 붙인 패치워크 인간. 학과에서 나는 촌스럽거나, 과하거나, 감각이 없는 사람이었다. 사람이 싫진 않았는데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지향점이 다르고 감각점이 다르니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어떤 룩을 좋아하냐."는 쉬운 질문에도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나마 '놈코어'라는 말이 유행한 뒤로는 무난함을 놈코어 뒤에 숨길 수 있었다.
경영학과 복수전공을 시작했다. 취업을 위한 무난한 전공이었다. 특이함을 쫓아온 길에서 다시금 평범함을 선택했다. 이과 - 미대 - 상경. 정신이 아찔해지는 회전 속에서 머리가 잠시 어떻게 된 것인지. 돌연 CPA를 준비했다. 갑자기 집에 찾아가 어머니께 학원 등록을 부탁드렸다. 그리고 다음 주부터, 삭발을 한 채 새벽 5시에 학원으로 가 12시에 돌아왔다.
2차 시험장에서 아무것도 쓸 수 없을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회계사가 되고 싶은 게 맞나.' 집으로 돌아와 유서를 썼다. 옥상에 올라갔다가 문이 잠겨있어서 방으로 돌아왔다. 가만히 앉아 눈물을 흘렸다. 독서실에 간다 하고서 5시간씩 공원에 앉아 있다가 돌아오곤 했다. 어느 날 공원에서 어머니와 마주치고, 함께 회계사 수험서를 분리수거했다.
인터넷을 둘러보다가 마케팅 동아리를 발견했다. 아무 생각 없이 지원했고, 덜컥 합격했다. 마케팅과 광고 얘기에 눈이 반짝이는 사람들을 봤다. 그 눈빛과 떨림이 좋았다. 여기 있으면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회장이 됐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날 때까지 광고와 공모전 그리고 동아리에 계속 얼굴을 비췄다.
마케팅 인턴을 하게 됐다. 운이 좋았다. 감사한 선배의 덕분이었다. 이어서 대기업에서 마케팅 인턴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인턴만 4번을 했다. 그리고 취업 준비를 했다. 마케팅 직무로 최종 면접에만 4번을 갔다. 이름만 대도 알 수 있는 대기업들이었다. 그리고 전부 떨어졌다.
길을 걷다가 갑자기 발작을 했다. 야간 사격의 레이저 포인터가 온몸에 찍혔다. 어디선가 수백 명의 저격수가 내 몸을 노리고 있었다. 손 하나도 까딱할 수 없었다. 제 자리에 서서 온 몸에 땀이 흠뻑 젖을 때까지 서 있었다. 친절한 아저씨가 나를 흔들어 주셨다.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그 날 이후로 병원을 갔다. 공황장애였다. 여자 친구에게 헤어지자고 말했다. 유서를 꺼내다 옥상이 잠겨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대로 두었다.
여행을 다녔다. 사람들을 만났다. 일을 다시 시작했다. 글을 쓰기 시작했다. 몇 번의 만남과 헤어짐이 있었다. 이 글을 전해줄 수는 없지만 감사한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더 이상 빚을 지고 싶진 않았다. 남들의 필요를 채우며 함께 하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가 무엇이 되고 싶은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회사를 그만뒀다.
"그래서 광래 씨는 어떤 사람인가요?" 언젠가 면접관이 내게 물어봤다. "스펙 말고요. 진짜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요." 공모전 얘기를 하려는 내 말을 가로막으며, 그가 말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었다.
그러게요. 나는 어떤 사람일까요. 남들이 좋다는 것만 따라 하다 보니까 항상 막판에 뒤틀리곤 합니다.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광고 회사의 면접장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이후로, 자기소개서를 쓰는 일이 가장 어렵습니다. 200번 넘게 써 온 일인데. 한 번도 자기를 소개한 적은 없는 것 같아서요. 어쩌면 소개할 자기가 없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들이 분명한 사람들이 좋아 보입니다. 눈에서 빛이 나거든요. 신나서 무언가를 하는 모습이 부럽습니다. 제게도 그런 시절이 있다면 기억을 끄집어 다시 되돌려 놓고 싶습니다. 불가능하겠죠. 그래서 지금은 지금의 취향을 찾아야겠습니다. 취향은 자존이 되고 자신이 되니까요. 호불호가 강한 사람들이 부럽습니다. 나의 양보는 양보가 아닌, 방관과 무책임이니까요.
어떤 일이 좋고, 어떤 회사가 좋고, 어떤 사람이 좋고, 어떤 음식이 좋고...
어떤 일이 싫고, 어떤 회사가 싫고, 어떤 사람이 싫고, 어떤 음식이 싫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