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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SOOOP Aug 13. 2022

섬; 데이즈 SOME DAYS

지성배 전시 _ 예울마루 장도전시관


초록 나뭇잎이 문득 흔들리는 동안

낮은 파도가 갯내를 풍기며 들락거리는 동안 

여기 이곳을 감싸고 도는 공기가 있다     

 

설익은 칠월 자두를 한입 베어 물었을 때 

입속 가득 퍼지는 시린 달콤함 

첫 경험처럼 안팎으로 드나드는 공기가 있다     


장도의 한여름

태양은 높다랗고 찬란하다

포구에 묶인 배들은 잔잔하게 일렁인다     


결코 짧았던 밤들 

떠오르는 조각달이 반달이 될 때까지

우두커니 밤하늘을 보고 있었다     


나는 지금 섬에 있고

‘어떤 날들’이 자꾸 오고 간다



사진 작업은 통상적으로 프리비주얼리제이션Previsualization에 기반을 둔다. 즉, 촬영에서부터 현상을 거쳐 인화까지 미리 예측해서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는 것이다. 그런데 그 예측을 할 수 없다면? 나는 이번 작업에서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 필름, 유효기간이 다한 필름을 사용했다. 폐기 처분을 기다리는 이런 필름들에 어떤 장면이 새겨져 나올지 궁금했다.      


장도의 한여름, 태양은 드높았다. 떠오르고 가라앉는 태양을 쫓아갔다. 유효기간이 한참이나 지난 필름은 예측을 허용하지 않는 결과들을 내놓았다. ‘적정 노출’은 적정하지 않게 작용했다. 필름 내부에는 이미 화학 작용이 일어나 노출 부족이 되거나 곰팡이처럼 반점들이 맺힌 채로 현상되었다. 언뜻 해와 달의 구분도 모호해졌다.      


해와 달 시리즈 중, 빌려온 시리즈는 인터넷에 떠 있는 해 이미지를 캡쳐하고 페이퍼 네거티브로 다시 촬영했다. 이것 역시 유효기간이 한참이나 지난 인화지를 사용했다.      


진섬다리는 예울마루 개관 10주년을 떠올리면서 제작한 것이다. 사람들이 다리를 건너다가 콘크리트 바닥에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하려고 찍어놓은 원형의 틀들은 바닷물이 들고 남에 따라 침식했다. 그 침식에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한몫할 것이다. 다리가 놓이고,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물때에 따라 밀물과 썰물이 쓸고 간 10년의 자국은 마치 하나의 우주 공간처럼 동그랗다.       


섬 작품은 몇 년 전 <섬여닻곶>이라는 이름으로 진행한 작업에 몇몇을 더했다. 섬 많은 여수에서 섬들이 사라지고 있다. 이 섬 저 섬에 다리가 놓이면서 섬의 본디 의미가 약해진 것이다. 하지만 섬을 바라보는 어떤 동경은 남아 있을 것이다. 섬이라는 말이 그냥 풍경처럼 들릴 때가 있다.     


장도 스튜디오에서 푸른 새벽마다 곁에 두었던 존 버거John Burger의 책들과 앨리슨 로시터Allison Rossiter의 사진들이 나를 위로하고 부추겼다. 섬과 물과 해와 달과… 그것들이 어울려 자아낸 ‘어떤 날들’. 예측을 고이 접어두고서 내 안의 뭉쳐진 열망을 끄집어낸 이 작업이 예술의 찬란한 정글 속으로 사정없이 내던져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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