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진영 Feb 18. 2019

06. ‘풍년화’는 안다…추위를 견뎌야 봄이 온다는 걸

옛사람들은 “삼한사온(三寒四溫)이면 풍년, 이상난동(異常暖冬)이면 흉년”이라며 겨울 추위로 이듬해 농사의 풍흉(豊凶)을 점쳤다고 합니다. 이와 더불어 겨울에 눈이 많이 내려야 상대적으로 따뜻하고 풍년이 든다는 말은 일종의 상식이기도 하죠.


이제 자기 손으로 농사를 짓지 않아도 가까운 대형마트나 온라인 쇼핑몰에서 얼마든지 전국 각지의 좋은 쌀을 구할 수 있는 세상입니다. 그런 편리한 세상을 살아도 풍년이란 말을 들으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집니다. 아직도 우리에겐 계절에 민감한 농경사회를 꾸렸던 조상들의 DNA가 깊게 남아있나 봅니다. 봄이 오기 전에 마른 껍질을 뚫고 가지 겨드랑이마다 가득 꽃을 피워내는 풍년화는 이름 자체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꽃입니다.

충남 태안 천리포수목원에서 촬영한 풍년화.

풍년화는 먼저 독특한 꽃 모양으로 눈을 사로잡습니다. 가늘고 길게 갈래진 노란 꽃잎은 마치 잔치국수 위에 올리는 계란 지단이나 색종이를 연상케 합니다. 꽃 전체 모양은 종이로 만든 제기나 먼지털이를 닮았죠. 사실 풍년화는 피부 미용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위치하젤(Witch Hazel)이란 이름으로 더 익숙한 식물입니다. 풍년화의 수피(樹皮)와 잎에서 추출한 성분은 염증을 완화하고 민감한 피부를 진정시키는 능력이 뛰어난 천연 항균 재료라고 합니다. 이 때문에 풍년화 추출물은 화장품, 물티슈 등에 기능성 원료로 쓰이고 있죠.


서울 홍릉수목원에서 촬영한 풍년화

이 땅에서 풍년화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습니다. 풍년화는 일본 원산으로 우리나라엔 지난 1923년 서울임업시험장에 처음 도입됐다고 합니다. 일본 사람들은 풍년화를 풍작을 의미하는 ‘만사쿠(まんさく)’라고 부르며 꽃이 피어나는 모습을 보고 그해의 풍흉을 가늠했다고 합니다. 눈이 많이 내리면 그만큼 겨우내 마른 땅에 물이 풍부해져 가지에 꽃잎이 풍성하게 매달릴 테니, 일본 사람들이 왜 봄이 오기 전에 풍년화로 풍흉을 점쳤는지 이해할 만합니다.


최근 들어 며느리밑씻개, 큰개불알풀 등 일본어 번역에서 유래한 정체불명의 식물 이름을 우리나라에 맞게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아마 풍년화란 이름도 ‘만사쿠’를 우리말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일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풍년화란 이름이 우리 귀에도 그리 어색하게 들리진 않습니다. 차가운 겨울바람에 맞서 가지를 가득 채운 풍년화의 노란 꽃잎을 바라보면 올 가을에 정말 풍년이 들 것 같은 기분이 드니 말입니다. 풍년화와 ‘만사쿠’란 이름 모두 농경문화권인 한일 양국 사람들이 같은 꽃을 바라보며 느낀 감정이 다르지 않았다는 방증이겠죠.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리는 지혜가 이 땅의 식물 이름을 정리하는 데에도 필요해 보입니다.




풍년화를 만나는 방법 : 풍년화는 보통 3~4월쯤에 만개하는데, 입춘 전인 1월 말부터 꽃을 피우는 개체도 적지 않습니다. 풍년화를 가장 확실하게 만날 수 있는 방법은 가까운 식물원을 찾아가는 겁니다. 연초에 뉴스를 검색해보면 풍년화 개화 소식을 전하는 식물원이 꽤 보입니다. 서울 홍릉수목원, 충남 태안 천리포수목원은 이른 시기에 풍년화를 만날 수 있는 명소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04. 동지섣달에 피는 봄의 전령사 ‘납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