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저는 가을이면 온 동네 골목과 공터를 싸돌아다니며 주전부리를 뒤지곤 했습니다. 수확의 계절인 가을답게, 조금만 눈여겨 살피면 이런저런 열매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죠. 그 시절 저는 긴 막대기로 몰래 옆집 감나무 가지를 털고, 잘 익어 입을 벌린 석류 열매를 따려고 남의 집 담장에 오르다 집주인에게 혼나는 등 말썽을 많이 부리던 아이였습니다.
말썽을 부리지 않아도 따 먹을 수 있는 열매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조경수로 흔한 주목(朱木)은 이맘때면 크리스마스 트리의 장식처럼 붉고 앙증맞은 열매를 맺는데 그 맛이 매우 달콤하죠. 낮은 울타리에선 달콤 쌉쌀한 구기자 열매가 익었습니다. 조금 더 가을이 깊어지면 산수유가 루비처럼 붉고 시큼한 열매를 가지마다 주렁주렁 매달았죠. 그중에서 시큼하면서도 달달한 맛의 새까만 열매를 맺는 까마중은 어린 시절 제게 가장 만만한 가을 열매였습니다.
까마중은 가지과의 한해살이풀로 우리나라를 비롯해 온대ㆍ열대 지역에 걸쳐 널리 분포합니다. 까마중이란 이름은 열매를 보면 바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동자승의 민머리마냥 둥글고 반질반질한 모양에 새까만 색을 가지고 있죠? 까마중은 매년 5월부터 7월 사이에 흰 꽃을 피우는데, 워낙 꽃이 작은 터라 열매에 존재감이 집중되는 식물입니다.
까마중은 밭이나 길가에서 흔히 자라나는 터주식물(마을이나 농지에 주로 분포된 식물)입니다. 즉, 까마중은 사람과 가까운 곳에서 터를 잡고 삽니다. 하지만 이제 먹을 것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보니, 길가에서 절로 열리는 열매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도 드물어졌습니다. 입술이 까매지도록 까마중 열매를 따 먹는 아이의 모습은 이제 까마득한 옛 풍경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사람의 일을 모르는 까마중은 매년 그 자리에서 꽃을 피우고 지고 열매를 맺으며 자신의 삶을 이어갈 뿐입니다.
이들의 좋은 주전부리였던 까마중은 이제 건강식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까마중은 여름부터 가을 사이에 잎, 줄기, 뿌리를 모두 채취해 그늘에서 말려 잘게 썰어서 약으로 씁니다. 까마중은 항암을 비롯해 혈액순환, 면역력 증강, 고혈압 예방 등에 효능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열매는 눈에 좋다는 안토시아닌 성분을 다량 함유하고 있다는군요. 동의보감도 까마중에 대해 “성질이 차고 맛은 쓰며 피를 맑게 하고 열을 내리게 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만만한 잡초인 줄 알았더니 대단한 식물입니다.
그러나 까마중이 만병통치약은 아닙니다. 가지과 식물들이 대개 그러하듯 까마중 역시 독성물질인 솔라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열매를 너무 많이 따 먹으면 중독 증상으로 인해 두통, 구토 등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 과해서 좋을 건 없습니다.
까마중의 꽃말은 ‘동심’입니다. 열매의 모양과 잘 어울리는 꽃말 아닌가요? 바깥으로 나가 풀밭을 뒤져보시죠. 아마 멀지 않은 곳에 까마중 열매가 열려 있을 겁니다. 즐거움이 별 것 있나요. 아는 것을 다시 만나면 반갑고, 모르는 것을 처음 만나 인연을 맺으면 의미 있는 법이죠.
까마중을 만나는 방법 : 까마중은 누가 따로 심는 식물이 아니지만, 사람들이 자주 오가는 길가의 풀밭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꽃도 열매도 작은 편이라 지나치기 쉽지만 개체 수가 많으므로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찾기 어렵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