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평범한 것은 없다
르네마그리트, 살바도르 달리, 마르셀 뒤샹을 포함한 초현실주의 거장들의 원화를 직접 볼 수 있는 전시 [초현실주의 거장들展]이 11월 27일부터 3월 6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진행된다. 본 전시의 모든 작품은 세계적인 박물관인 보이만스 판뵈닝언의 소장품이다. 보이만스 판뵈닝언은 유럽 전역에서 가장 큰 초현실주의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다. 이곳의 방대한 소장품은 방문객들에게 서양 미술사 전체를 둘러볼 수 있게 한다.
앙드레 브르통 (André Breton, 1896-1966) 초현실주의 혁명 (La Révolution surréaliste), 간행물, 1924,28,6 x 20,2 x 0,3 cm © André Breton / ADAGP, Paris - SACK, Seoul, 2021 Collection of Museum Bojmans van Beuningen
경이로운 것은 언제나 아름답고, 경이로운 것은 모두 아름다우며, 사실 경이로운 것만이 아름답다
-앙드레 브르통, 1924
초현실주의를 창립한 앙드레 브르통은 1924년 '초현실주의 선언문'으로 초현실주의를 알렸다. 선언문은 1924년 10월 파리에서 출판되었다. 이 책에서 시인 앙드레 브르통은 초현실주의가 이성과 순응으로 형성된 세계의 '빛 없는 운명'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고 경이로운 새로운 현실로 인도할 것이라 주장했다.
초현실주의는 문학과 시에서 시작되었지만 빠르게 회화, 조각, 영화, 사진, 공연, 디자인으로 확산되었다. 초현실주의의 예술작품은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들어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에일린 아거 (Eileen Agar, 1899-1991) 앉아있는 사람 (Seated Figure), 1956 캔버스에 유채 184 × 163 cm Collection of Museum Bojmans van Beuningen
에일린 아거의 다음 작품을 감상하면 다다주의 예술가들이 추구한 아름다움을 알 수 있다. 다다주의 예술가들은 '찾아낸 일상용품'을 이용하여 예술작품을 만들어 아름다움, 이성, 질서에 대한 전통적인 생각을 흔들었다.
초현실주의는 이러한 다다의 여파로 나타났다. 다다주의자들은 제 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현실에 안주하는 사회를 거부했다. 작가와 예술가들은 전쟁을 피하기 위해 중립국 스위스로 도피했다. 취리히의 카바레 볼테르(Cabaret Voltaire)에서 그들은 자극적인 연극과 춤, 귀에 거슬리는 음악 그리고 비문맥화 된 시로 관객들을 놀라게 했다.
하지만 초현실주의와 다다주의에는 차이가 있다. 둘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표현되었다. 다다주의자들은 비합리적이고, 무정부적인 것을 즐겼고, 행동의 무익함을 받아들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초현실주의자들은 새로운 형태의 아름다움을 추구했고, 자신들의 작품이 일으킬 초현실적 충격으로부터 새로운 현실이 나타날 거라고 믿었다.
다다는 1923년 사그라들었다. 다다주의자들은 초현실주의 혁명에 동참하기도 하였다.
르네 마그리트 (Réne Magritte, 1898–1967) 그려진 젊음 (La jeunesse illustrée), 1937 캔버스에 유채 184 x136cm © René Magritte / ADAGP, Paris - SACK, Seoul, 2021 Collection of Museum Bojmans van Beuningen
초현실주의자들의 작품은 몽환적이고, 환상적이다. 이들 작품의 근원에는 꿈이 있다. 이들은 꿈이 길들여지지 않은 생각을 활용하기 위한 도구라고 믿었다.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이 무의식의 문을 여는 열쇠라고 하였다. 프랑스 소설가 베르베르는 꿈이 영감의 원천이라고 밝히기도 하였다. 꿈을 사고, 파는 문화, 꿈에 의미를 부여하는 문화는 꿈이 신적 존재나 더 거대한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된다. 이처럼 꿈은 내면 세계의 반영인 동시에 추상적인 이 세계를 반영하는 거울이기도 하다.
르네 마그리트의 <그려진 젊음>은 끝 없이 이어진 길에 사자와 같은 생명체부터 악기, 자전거, 탁구대 등의 비생명체까지 한 줄로 나란히 서 있는 장면이 담긴다. 이는 꿈 속에서 본 장면, 혹은 낯선 세계의 형상화로 보인다. 이들의 그림을 보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고, 상상력을 자극한다.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작품은 관객들이 망상을 공유하도록, 예술적 장을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살바도르 달리 (Salvador Dali, 1904-1989) 머리에 구름이 가득한 커플 (Couple aux têtes pleines de nuages), 1936 판넬에 유채 98,5 x 77 x 4,5cm(L), 87,5 x 72,4 x 4,5cm(R) Salvador Dalí, Fundació Gala-Salvador Dalí, SACK, 2021 Collection of Museum Bojmans van Beuningen
살바도르 달리의 <머리에 구름이 가득한 커플>은 각자의 무의식을 품은 커플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커플은 서로의 많은 것을 공유해도 무의식은 공유할 수 없다. 각자의 무의식의 세계가 있는 한 두 사람은 완전히 겹쳐질 수 없다는, 타자와의 완전한 겹쳐짐은 불가능하다는 상징적 의미로 느껴졌다.
초현실주의자들은 무의식으로 가는 길을 열기 위한 시도를 거듭하였다. 이러한 시도는 무의식마저 공유하고자 하는, 무의식을 언어화하고자 하는 도전의 일종으로 보였다. 초현실주의자들의 작품을 보며 그들의 무의식을 엿볼 수는 없다. 다만 관객 각자의 무의식을 끌어낼 수는 있다. 그 자체로 놀라운 경험이 아닐 수 있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으며 서로의 꿈을 기록하고 환각을 추구했지만 그 어떠한 방법도 극단적이지 않았다. 현실에 기반을 둔 이들의 노력 덕분에 오늘날까지도 초현실주의자들의 작품이 관객 각자의 무의식과 연결될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살바도르 달리 (Salvador Dali, 1904-1989) 태양열 테이블 (Table solaire), 193 판넬에 유채 60 x 46 cm Salvador Dalí, Fundació Gala-Salvador Dalí, SACK, 2021 Collection of Museum Bojmans van Beuningen
'운하임리히'는 친밀한 대상으로부터 낯설고 두려운 감정을 느끼는 심리적 공포를 말한다. 자신의 영혼을 보거나 데자뷰를 느끼는 것 등이 이에 해당한다. 꿈 속에서 친근한 대상 혹은 자신이 공포스럽게 묘사되는 일 또한 이에 해당한다. 익숙한 것의 내부를 오래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기필코 낯선 것이 있다. 이는 기이하기에 가장 섬뜩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초현실주의자들은 낯선 것을 두렵게 묘사하지는 않지만 친밀한 일상의 사물을 통해 낯선 이미지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운하임리히'가 연상된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우연한 만남에서 가능성의 세계를 보았다. 일상용품을 이용해 익숙한 이미지와 사물들을 놀라운 방식으로 모아 묘하고 신비롭게 만들었다.
살바도르 달리의 <태양열 테이블>을 보자. 사막에 책상과 컵과 수저가 놓여 있다. 먼 곳을 바라보는 아이도 있다. 사막은 모래사장처럼 묘사되며 사막에는 작은 돗단배가 놓여 있다. 익숙한 사물들을 겹쳐 놓으니 작품 속 세계는 사막도, 모래사장도 아닌, 현실에 없는 시공간을 재현한다. 관객들은 이 작품을 통해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상상한다.
예술은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거나, 현실 너머의 낯선 세계를 상상하게 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은 현재까지 지속되는 예술의 한 개념을 적립하는데 기여하였으며 여전히 회자되는 명작들을 탄생시켰다.
초현실주의 거장들展에 방문하여 이토록 낯선 세계에 푹 빠져보시길, 기묘한 아름다움을 만끽하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