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가지지못한 '나만의 특징'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회
태어나기 전 부모를 선택할 수 없기 때문에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많은 문제들이 생긴다.
'이혼숙려캠프' ,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 '엄마와 딸의 관계', '부모와 단절' 등
전 세계를 통틀어 나와 같이 환경에 불만이 있는 자식들은 얼마나 많고 또 우리 부모님 같은 부모들은 얼마나 많은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유튜브에 나르시시스트 부모를 주제로 어느 심리학자가 강연한 영상이 하나 있다. 댓글만 2000개다. 강연의 주제는 뒷전이고 2000명의 사람들이 남긴 댓글에서 현시점 원하지 않은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라오며 겪은 아픔들이 내 눈에는 보인다.
관계를 단절하는 게 좋은 정답일까, 누군가 속 시원하게 해결책을 알려주면 좋겠지만 정답은 내 안에 있다. 유튜브나 인터넷에 올라오는 글들은 나만의 고민은 아니라는 잠깐의 안도감을 주지만 내 안의 정답을 바깥으로 꺼내놓지 못했기 때문에(본질을 외면했다고 표현하겠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해결되지 못한 감정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고 부모님에 대한 증오와 원망이 커진다.
나르시시스트 부모밑에서 자란 자녀의 삶은 '모' 아니면 '도'다. 환경과 환경이 본인에게 준 영향력을 일찍이 파악하고 계획을 세운다면 화목한 가정아래에 성장한 사람들보다 인격적으로 더 성숙해지고 다채로워(개성이 생기는) 질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문제는 모가 아닌 '도'에서 비롯한다. 관성에 절여져 문제가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아가다가 문제를 찾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짧으면 몇 년, 길면 인생을 통틀어 고착되어 온 문제의 뿌리를 뽑아야 하는데 이는 많은 용기와 좌절이 필요하기 때문에 엄두를 낼 수 없다.
인간관계는 보편적인 황금률이 있다. 상대를 존중하면 상대도 나를 존중한다. 존중받기를 기다리기 전에 먼저 존중하고 있다는 느낌을 상대에게 주어야 한다. 너무 뻔하다 초등학생도 알법한 명제다. 하지만 위 명제에는 하나의 전제가 깔려있다. 스스로를 존중해주어야 한다. 본인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만이 타인을 어떻게 존중해야 하는지 방법을 안다.
이 황금률은 부모 자식관계에서도 같다. 내가 먼저 나르시시스트 엄마 혹은 아빠를 존중해야 한다. 이도 마찬가지로 스스로를 존중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나르시시스트 부모밑에서 자라온 대부분의 자녀들은 '존중' 키워드의 학습을 받아본 적 없기 때문에 스스로 존중하는 방법을 모른다. 복잡해 보이는 이 과정은 나의 잘못도 선택도 아닌 삶을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하는 과정이고 죽기 직전까지 풀어야 하는 숙제다.
문제를 파악하고 행동에 옮기는 과정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명심하고자 한다. 나르시시스트 부모밑에서 자라온 개인적인 이야기들이나 시답지 않은 충고를 주는, 짧고 달콤한 말들로 아픔을 잠시 위로하고자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아니다. 오히려 그런 가볍고 겉핥기식 정보들로 인해 사람들이 본인의 내면을 스스로 들여다보아야 할 시간에 남의 이야기에 집중하게끔 정신을 홀린다.
지향하는 콘셉트는 '교과서'다. 적어도 나르시시스트 부모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이 글을 완독 했을 때 짤막한 공감과 위로를 받는 것이 아니라 본인을 돌아보는 첫걸음에 있어서 큰 울림이 되었다면 그것이 오히려 내가 원하는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