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들춰내 바라볼 줄 아는 용기
나르시시스트는 소위
자기밖에 모르거나 본인의 외모나 능력 같은 특징들을 모종의 이유로 높게 평가하는 사람, 타인을 배려하지 못하는 재수 없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사람들이 나르시시스트라는 단어를 접하게 되는 계기는 평소 심리학에 관심이 있지 않고서야 사회 속에서 도무지 본인의 머리로는 이해하지 못할 만한 부류의 사람을 만났을 때, 그로 인해 정신이 피폐 해질 것 같을 때 '이 사람 나르시시스트어서 그랬구나' 이해할만한 명분을 찾으면서부터다.
그런 사람들을 본인밖에 모르는 재수 없는 사람으로 분류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바라보기 무서워 눈을 질끈 감고 있는 겁쟁이임을 그들을 비난하기 전 알아둬야 한다.
자기애성 인격장애가 발현되는 순서를 따지자면 자기(self)가 도무지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실제로 갖고 있는 능력이나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나르시시스트를 검색하는 이유는 그런 사람들을 이해하고자 함이고 굳이 상식선에서 행동하지 않는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개인적인 시간을 할애하면서까지 공부하는 이유는 그런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는, 사회생활을 하면 어쩔 수 없는 일종의 강제성이 부여된 상황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나르시시스트 부모로부터 정서적인 독립을 하기 위한 첫걸음은 스스로의 부모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시작한다. 충분한 이해가 없는 손절은 당장 숨통을 트이게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자녀의 마음속에 커다란 구멍을 내고 오랜 시간 그 구멍은 메워지지 않은 채 차가운 바람이 제멋대로 들어오는 것을 허용한다.
대부분의 나르시시스트부모로부터 자란 자녀들은 저마다의 상처로 인해 크기만 다른 구멍들을 갖고 있지만 나는 그 상처로 인해 내 마음에 구멍을 내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어떤 부모에게서 태어났는지는 각자의 선택이 아니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는 본인의 선택하에 달렸다. 우리 모두는 '선택권'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부모를 포용할 수 있음을 떠나갈 수 있음을 의견이 다름에 맞설 수 있음을 선택에 따라 행동할 수가 있다.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우리는 '존중'키워드의 학습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초반에는 스스로가 내린 선택에 대한 자신감이 있을 수가 없다. 어떤 선택을 할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자신이 없고 다시 선택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당연하다. 오히려 그런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심사숙고해 내린 결정이 맞는지를 의심해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