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서초동에서 저녁 약속이 있어서 교대역에 갔다. 교대역에서 환승은 여러 차례 했으나, 승강장에서 출구까지 걸어본 것은 수년만이었다. 30여 년 전 초등학교 시절 6년을 개근하며 이 역을 이용했던 터라, 교대역에서 있었던 여러 추억들의 배경이 머릿속에 생생한데, 지금의 모습은 기억 속과 많은 차이가 있다. 3호선에서 2호선을 타러 가는 지하 1층 공간에 공판장이 있었는데, 간식거리도 팔아서 하굣길에 애용했다. 마그네틱선이 있는 티켓을 구매하여 승강장으로 내려가면 200원짜리 탄산 음료수 자판기도 있었고, 주황색 로봇 모양으로 된 핫도그 자판기도 있었다. 벽에는 작은 타일을 이용해 모자이크 형태의 벽화도 장식되어 있었다. 이제는 모두 없어졌다. 사람의 동선보다는 물건진열이 우선시 되었던 공판장을 대신해 깔끔하게 구획된 매장이 생기고, 티켓 판매하던 승무원 부스는 사라지고 교통카드를 이용하게 되었다. 또 승강장은 세련된 메탈패널 마감재가 설치되고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었으며, 교통카드로 결제까지 되는 최신 간식 자판기가 생겼다. 그러나 온통 바뀐 와중에 한 곳은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오랜 시간을 잘 간직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바로 계단이었다.
정확히는 계단의 돌이었다. 화강암으로 된 계단은 수많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 그 위를 오간 덕에 모서리를 부드럽게 마모되었고, 거칠었던 표면도 부드럽게 닳았다. 그 오랫 시간을 고스란히 머금고 있는 모습이었다. 다시 한번 돌이라는 재료의 매력을 맛본 순간이 참 반가웠다. 많은 이들이 오랜 세월을 간직한 건물이나 공간을 그리워한다. 사람들이 고향을 찾는 이유도 고향에 있는 사람뿐 아니라 과거의 흔적과 만나며 따스함을 느끼기 위함이 있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에도 이렇게 세월의 흔적을 담을 만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최근에 지어지는 아파트의 경우, 1층에서 3층 외벽에는 콘크리트면 위에 화강석을 추가로 붙인다. 이때 사용하는 석재의 대부분은 표면이 맨질맨질하게 광택이 나는 화강석이다. 이렇게 폴리싱 처리된 석재는 광택이 있어서 깨끗해 보이는 느낌은 있으나, 앞서 언급한 사례처럼 세월을 담아내는 재료로서의 기능은 약하다. 이 저층부위는 폴리싱처리된 석재보다는 잔다듬 된 석재를 사용해 보면 어떨까? 처음에는 다소 밋밋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입주 후 5~10년이 지나 광택을 잃어 둔탁해 보이는 폴리싱 처리된 입면보다는 세월의 흐름의 따라 자연스레 색깔이 변하고, 풍파에 마모도 되며 시간을 담아낼 수 있는 운치를 느끼는 것이 더 유익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