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콘텐츠가 준 새로운 생각

라이킷 9 댓글 3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마인드가드너 Dec 31. 2020

넷플릭스는 사실 우리가 가졌던 심리의 기록이다

나의 아저씨 - 지안의 우울함을 대면하며 나의 불안함을 치유받다

넷플릭스는 큐레이션이 아니라 선택이며,

넷플릭스 시청 기록은 사실 우리가 가졌던 심리의 기록이다.

넷플릭스는 키워드만 입력해도 내가 원하는 콘텐츠와 유사 콘텐츠를 맞춰 보여주는 명실상부한 큐레이션 서비스다. 엄청난 데이터와 콘텐츠가 결합되어, 내가 평생을 할애해도 전부 보지 못할 것 같은 콘텐츠의 늪에 빠지게 한다.

하지만 큐레이션 제공되는 수많은 넷플릭스 콘텐츠들 사이에서 몇가지 콘텐츠는 분명한 이유로 선택을 받는다. 모두가 올 한해를 돌아보게 되는 12월 31일 오늘 같은 날에는 넷플릭스 시청 기록을 한번 봐보는 건 어떨까.

나의 넷플릭스 기록을 찬찬히 살펴보자니, 그 기록들은 1년간 내가 의식하지 않았던 나의 숨겨진 심리들로 하나의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2020년이 반나절도 안남은 지금, 분명히 내년의 기록은 새롭게 쌓여져 갈 것이다. 새해를 맞이하는 나의 심리를 투명하게 반영하면서.

사회초년생인 나의 심리가, 그대로 드러나는 2020년 심리 일기였다.현실에 부딪치면서 사회 속에서 나의 위치를 끊임없이 확인하며 절망했다가, 다시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은 나의 욕구가 그대로 드러났다. 어쩌면, 나의 이런 심리는 이렇게 연말을 핑계로 점검받을 기회가 필요했던 것일지 모르겠다.

정말 많은 리스트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몇가지 나의 넷플릭스 리스트를 살펴보자면,

나의 아저씨 - 취업 공채 과정에서 끊임없이 비교당하고, 나 스스로 비교하던 나는, 지안의 우울함을 대면하여 현실의 변화가능성을 믿고 싶었다.

호텔 델루나 - 사람은 죽으면 어디로 가는걸까. 설리는 왜 하늘나라로 갔을까. 떠난 주변 사람들은 이제 편안할까.

이태원 클라쓰 - 직장 내 에서 느낀 진짜 사회적 '갑' 존재에 자기효능감, 자아 존중감 모두 바닥치던 나. 과연 위를 보고 올라갈 수 있을까.

걸보스 - 사회적 성공을 이룬 그녀에게도 쓰레기통의 빵을 주워먹던 적이 있었다. 나에겐 가진 것 없었어도 무언가를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가 필요해.

로맨스는 별책부록 - 아, 정말 지친다... 몇일 시간을 멈추고, 조용히 책을 읽고 싶다. 하지만, 읽는 것도 꽤 힘이 드니까, 차라리 책에 대한 애정을 다룬 드라마를 다시 찾아보며 힐링 해야겠다.

에밀리 파리에 가다 - 저런 열정은 대체 어떻게 갖는거지? 가끔은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럽다. 나도 일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을 때가 있었고, 지금도 있는데. 저런 그녀를 보며 자극 받아서 열심히 일해야지.

스타트업 - 나도 초심으로 다시 시작해볼 수 있을까,

나의 아저씨

(20년 1월) 취업 공채 과정에서 끊임없이 비교당하고, 나 스스로 비교하던 나는, 지안의 우울함을 대면하여 현실의 변화가능성을 믿고 싶었다.

출처-tvn '나의 아저씨' 방송화면

나의 아저씨에서 주인공 지안(아이유)의 삶은 암담하다. 부양해야 할 할머니와 살아가는 지안에게 살아갈 이유는 매일 찾아오는 빚쟁이 광일(장기용)을 견뎌내고, 원금은 손도 못댄 채 불어나는 이자를 갚아가는 일.

법적인 제도 뿐만 아니라 이웃들의 따듯한 온정도 닫지 못한 곳에서, 그녀는 빛이 들지 않고 어둠이 가득한 곳에서 똑같은 매일을 맞이한다.회사에서 훔쳐온 커피믹스로 끼니를 떼우고, 식당에서 일하다가 손님이 남긴 음식을 몰래 챙겨 식사로 대신한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그녀는 작은 무언가를 훔쳐가며 자신을 지켜간다. 다만, 그녀의 자존감은 지켜내지 못한다. 자신의 인생을 따라다니며 망쳐버리겠다고 말하는 빚쟁이 광일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죽어버리겠다는 말 뿐.

"써. 죽어버리기 전에. 나 괴롭히는 맛으로 살아가는 새끼 사는 맛 한방에 없애버리기 전에" - 지안

"살아 이년아. 너는 못죽어. 죽어도 살아. 이 살인자년아" - 광일

그녀에게 삶이란 부양하는 할머니를 지켜내기 위해, 그것을 명목으로 살아가는 일이었다. '나의 아저씨'는 따스함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던 지안의 삶에서, 직장에서 만난 진짜 어른 동훈(이선균)을 만나며 치유받는 과정이 드러나는 드라마다.

어두운 드라마를 기피했던 이유 중 하나는 드라마를 볼 때 공감능력이 무장해제되면서 내가 드라마 속 상황에 몰입해서 보기 때문이었다. 드라마 속 이야기가 아닌 현실을 떠올리면서 드라마 속 상황에 몰입해서 보는 스타일인만큼, 내가 견뎌내야 할 현실 속 여파가 걱정되기도 했던 것이다.

이 드라마를 찾아보게 된 이유는, 암투병을 하고 있던 유튜버가 자존감을 주제로 추천했던 드라마였기 때문이다. 어두운 톤앤매너의 드라마 인만큼 끝까지 보기 힘들수도 있지만, 마음껏 울고 공감하며 나중에 치유받는 느낌을 받는 것 같다던 드라마 평에 망설이던 마음을 접고 한번 대면해보기로 다짐했던 것이다. 어디 한번, 시도해볼까 하고.

물론 드라마는 해피엔딩이 많지만 현실엔 동훈이라는 어른도 없고, 현실은 개선되지 않을 것만 같아서. 그 마저도 해피엔딩이 아닐 것만 같아서 걱정스러웠던 것이다. 우울한 생각에 잠길 수 없어, 애써 외면했었던 나의 아저씨. 이로서 나는 해피 엔딩만 찾아보는 나의, 우울함을 대면하지 못하는 나의 한면을 맞이하고 극복했다.

작년 12월, 이 시기는 참 추웠다.

누군가에게는 지금도 참 추운 시기일테지. 취업 시장을 여전히 얼어있고, 사람들은 여전히 고통스러울 것이다. 이 시기의 나는 취업 과정에서 합격 소식을 받은 상태였지만, 오히려 취업 준비 과정보다 나에 대한 자신이 부족해졌다. 경쟁을 앞세운, 차가운 환경에서 끊임없이 냉철한 잣대로 자기검열을 했기 때문에. 자기 인정을 해주는 것과, 사회에서 인정받고 선택받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경쟁을 정말로 끔찍이도 싫어했지만, 취업 과정이란 정말 경쟁을 코앞까지 대놓고 들이밀고 버틸 수 있는 능력치를 테스트하는 과정이었다. 서류를 넣었고, 인적성을 보았고, 인적성을 보면서도 같은 처지인 이 친구들 중에서 몇 명이나 붙을까. 나는 합격자가 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고, 합격 소식을 봤을 땐, 최종 합격보다는 이 삭막한 취업 시장에서 처음으로 면접의 문턱을 넘길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오히려 설렜다.

면접을 준비했을 땐 최선을 다해 준비한 과제였지만 어딘가 항상 부족해 보였다. 실무를 못해 봤기에 실무적인 시각이 부족한건 어찌보면 당연한 것인데, 실무를 몰라 떨어질 것 같은 느낌. 그렇게 나는 사회인과는 점점 멀어지는 붕뜬듯한 기분이 들었다.

공채 과정에서 마지막엔 1달의 인턴 과정을 통해 4명의 친구들과 한팀을 들어가기 위한 경쟁하며 테스트를 받았다. 대놓고 경쟁시키는 구조 속에서 어른들의 차가운 시선들을 많이 마주한다. 경력없이 늘어난 나이는 유학, 석사, 인턴 등의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다. 그 나이대가 가져야 하는 과정이라는게 있다면, 그들이 보기에 나는 무언가 이루려고 했어도 이뤘어야 하는 나이였던 것이었다.

처음으로 어른들의 냉정한 시각으로 나 스스로가 채용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지를 체크해봤다.

나는, 실제로 나는 나이가 제일 많았다.

실제로 나는 그들 중에 가장 영어도, 학력도, 어학연수 경험도, 무엇보다 경력이 제일 부족했다.

이렇게 공채가 끝나가면 자연스레 1살 나의 공백기가 더해질 테고, 나는 또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야만 했다.

이 외에 회사에서 나누는 사담 속에서 아주 냉정하게 나의 상황이 불안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나에 대해 자신하고 날 아끼고, 날 인정하지만 사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사회인으로서 나는 선택받지 않을 수 있다.

아버지를 떠나보낸 경험이 있었던 나는, 영원하게 날 지지해주는 사람이 한 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드라마 속 지안처럼 내가 홀로 감내해야 하는 상황에 정말 불안해진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경제로 힘든 경험을 느껴본 적 없었으나, 언제든 내가 감내햐아 하는 상황이 많아질 수 있는데 나에 대한 자신감이 무너져버렸다.

위와 같은 편안하지 않은 마음에, 기피해버렸던 그 드라마가 ‘나의 아저씨'였다.

하지만 드라마 후반부로 갈수록 지안을 포함한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숨겨진 상처의 이면이 보이며 이해가 갔다. 빚쟁이 광일이 그렇게 지안을 괴롭히게 되었던 이유는 지안을 아끼던 착한 마음이 자신의 부친을 살해했다는 사실에 무참히 짓밟혔기 때문이었다. 동훈은 자신의 상처가 있지만 그것을 감내하며 지안의 상처를 따스하게 덮어준다.

상처의 이면 위로 따스함을 간직하고 있는 진짜 어른 동훈을 보면서 사회를 살아간다는 것은 이 따스함을 어떻게 잘 그 이면 위로 간직하며 살아가냐는 문제이기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면할 수 있지만, 굳이 따스하게 살펴보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진짜 위로와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된다는 것을 느꼈다.

느낀 것을 줄줄이 설명하지 않아도, 내 불안함이 괜찮다고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던 드라마다.

앞으로도 수많은 불안함과 상처는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것이지만,

그것을 들여다볼 수 있는 어른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도 충분이 위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