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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white Mar 20. 2024

다시 쓰는 양말 세탁법

통돌이 세탁기에도 살아남는 양말을 찾아서

외출을 위해 옷을 고르고 마지막에 양말을 신는다. 예상과 다르게 양말 끝이 복숭아 뼈를 완벽하게 덮지 못한다. 벌써 1cm 줄었다. 내가 생각했던 양말 모양은 한 번 세탁으로 사라져 버렸다.


나는 물건을 사서 매뉴얼 대로 닦고 고치고 먼지를 제거해 ‘처음 산 것’ 같은 상태를 유지하는 데 성취감을 느낀다. 그런데 양말만은 예외다.


‘양말 취급 시 주의사항(세탁방법)’을 자세히 본 적 있는가?  


양말은 30도 중성세제로 손빨래하는 것을 권장한다. 다미리질, 힘주어 비틀어 짜기, 건조기 사용, 표백제 모두 금지다. 에르메스 실크 스카프 세탁방법과 거의 같다. 여기에서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발생한다. 구체적으로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첫 번째, 양말 손세탁은 기회비용에서 손해다. 3,000원 양말을 손세탁할 경우 30분 시간이 소요된다고 가정하면 최저시급 9,860원의 절반 4,930원 인건비가 발생한다. 상품 유지 비용이 새로 구매하는 것보다 비싸다. 양말을 손세탁할수록 인건비 측면에서 손해다.


두 번째 문제는 세탁방법이 양말을 취급하는 우리 습관과 동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양말은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대충 벗어던져놓는 물건이다. 이것은 낮동안 쌓인 긴장감과 피로도 함께 털어낸다는 싸인이다. 양말을 벗어야 그날 하루가 끝난다. 그런데 낮 동안 신은 양말을 화장실로 가져가 온도를 맞춰 손세탁을 한다는 것은 ‘일’이 된다. 게다가 세탁해야 하는 양말은 하루에 하나씩 나온다. 빈도가 높다.  양말은 캐시미어 코트가 아니라 칫솔처럼 다루기 쉬워야 한다.


지금까지 그래온 것처럼 앞으로도 양말 ‘취급 시 주의사항’을 따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양말은 빨 때마다 조금씩 줄어들 것이다. 매뉴얼대로 따르지 못한 나의 잘못이 1차적인 원인이겠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뭔가 억울하다.


그래서 한 번 찾아보기로 했다. ‘덜 줄어드는 양말’을.

만 원 이하, 온오프라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빨간색 양말 17켤레를 구입했다. 세탁 전후를 비교하기 위해 A4용지를 대고 외곽선을 따라 그렸다.


3개월간 하루에 한 브랜드씩 빨간 양말을 신었다. 신은 양말은 통돌이 세탁기 일반 코스로 50분간 빨았다.


수축 결과는 다음과 같다.


구매 직후 양말 크기
3개월 간 신고 세탁한 모습  


양말은 평균 5~15% 줄었다. 한 번 세탁으로 단번에 축소되었으며 보풀이 일어나기도 했다. 다이소 1,500원 양말부터 5,000원 양말까지 브랜드 상관없이 수축은 일어났다. 소재에 면 함유량이 높을수록, 두께가 얇을수록 변형이 컸다.  


양말 취급 시 주의사항은 어길 수밖에 없는 지침이다. 차라리 인정하자. 양말은 양말이다. 이것은 매일 8시간 이상 발바닥과 운동화 밑창 사이에서 마모되고 땀을 흡수한다. 양말은 소모품이다.

왼쪽 세탁 전, 오른쪽 1회 세탁 후의 모습. 확연히 크기가 줄었다.


조금씩 변형되는 양말을 보면서 ‘내가 세탁 지침을 어겼기 때문’이라고 자책하고 싶지 않다. 양말은 매일 하루 시작과 끝을 함께한다. 이왕이면 신을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면 좋지 않을까.


그래서 다음과 같은 양말 매뉴얼을 제안한다.


[양말 취급 시 주의사항]

1. 자유롭게 세탁할 수 있습니다.

단, 수축이 10~15% 일어납니다.

2. 수축은 최초 세탁과 동시에 발생합니다.

3. 양말 수명은 9개월~1년 6개월입니다.


P.S

매일 무심하게 빨고, 널고, 말려주세요.

점점 줄어드는 양말과 언젠가 이별하게 된다면, 당신이 그만큼 열심히 걸었다는 증거입니다.


-끝-



양말 브랜드와 전후 비교 사진은 아래 동영상을 통해서 자세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ekltye-fikM?si=tL5MvLX3-7zyNs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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