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바리 나초 1703 <아내가 결혼했다> by 박현욱
얼마 전, 트레바리 커뮤니티 이벤트로 마련된 김상욱 교수의 '인포메이션' 강연을 들었다. '인간의 특정 행위는 AI가 할 수 없지 않은가’라는 질문이 나왔다. 김상욱 교수는 두 가지로 답변했다. 하나는 AI가 왜 그 일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 다른 하나는 AI가 해결할 수 있는 형태로 그 문제 또는 행위가 정의되었는지를 봐야 한다는 것. 뉴턴은 만유인력의 법칙을 얘기하며 가장 먼저 개념을 정의했다. 그동안 관념적으로만 이해했던 '힘’이라는 개념을 명확하게 정의하고 논의를 시작한다.
선택의 상황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무작정 선택지를 나열해 놓고 고통스러워 하기 전에, 먼저 그 문제를 선택 가능한 형태로 잘 정의했는지를 생각하는게 맞는 수순이다. 문제를 명확히 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판단 기준이 흐려질 수도 있고, 애초에 선택지 자체가 잘못됐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난 '연애’라는 개념을 선택 가능한 형태로 먼저 정의해보기로 했다. 때론 아주 건조하게, 때론 아주 감정적으로.. 사랑을 이리 저리 내 마음대로 가지고 놀다 보니 한가지 한계에 부딪혔다. 어떤 식으로 정의를 하든지 간에 그 개념에서 상대방이 배제된다. 상대가 누구인지 알 수 없고, 그 상대의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나와 너’를 고려한 개념을 떠올리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수학이나 물리학 개념처럼 누구에게나 동일한 내용과 형태로 정의될 수 있는 성격의 것도 아니다. 결국 연애에 대한 개념 정의는 언제나 나의 언어와 생각의 덩어리로만 구성된다. 사랑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연애는 혼자서는 할 수 없다. 상대가 포함되지 못한 개념의 연애가 항상 상대가 있어야 성립되는 모순이 발생한다.
그런데 우리는 연애를 한다. 나는 이것이 어마어마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서로 다르게 정의한 개념을 두고 이어지는 건 마치 다른 세계와 세계가 부딪히는 것과 비슷하다. 인포메이션 책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우리는 흔히 문자가 없는 시대를 상상할 때 그냥 문자가 없는 상태를 상상한다고. 하지만 단순히 문자가 있고 없음의 차원이 아니라 아예 사고 체계 자체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따라서 문자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문자가 없던 시대를 상상하기 어렵다고. 다른 세계와 세계가 부딪힐 때도 흔히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있는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우리의 연애는 항상 불안하고 고통이 뒤따르는 것일지 모른다. 어쩌다 유사도가 높은 세계를 만나 만족스러운 연애를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지구의 판과 판이 부딪히는 현상처럼 연애를 경험한다. 그리고 이건 너무나 좋은 이별 핑계다.
"우린 너무 달라"
인아와 덕훈의 연애 개념도 매우 다르다. 덕훈도 이 사실을 안다. 알지만 이를 간과한다. 덕훈 자신이 인아의 세계를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결혼하면 인아가 달라질거라 생각했다. 여기서 덕훈의 배드 초이스가 나온다. 흔히 연애를 하면 상대를 독점적으로 소유한다고 느껴진다. 그래서 가족을 제외하면 (그래, 몇 명의 베프까지도 양보) 그 사람을 내가 제일 잘 안다고 생각하게 된다. 덕훈 역시 인아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인아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자신이라는 점을 계속 내세운다. 연애가 독점적 소유를 의미하는가에 대한 논의를 차치하고서라도 독점적 소유 대상을 가장 잘 알거라는 믿음은 착각에 가깝다. 덕훈이 '그놈’과 인아가 함께 있는 경주 집에 몰래 들어가는 장면에서 그게 착각이었음을 인지하는 덕훈의 눈빛을 봤다.(책에서는 잘 묘사되지 않지만 영화에서 나는 그렇게 느꼈다.)
잠깐 스쳤던 인연이 헤어진지 2년인가 지나서 갑자기 전화를 해왔다. 번호는 이미 지운 상태였지만 목소리로 희미하게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울고 싶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복잡하고 힘든 일이 많아서 울고 싶은데 가족한테도, 친한 친구한테도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생각났단다. 편하게 울 수 있는 상대. 나는 조용히 그녀의 얘기를 들어주었고, 그녀는 실컷 울었다. 당시 그녀가 누군가와 연애하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만약 그랬다면 그 사람은 몰랐을 그녀의 비밀을 나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인아는 적어도 덕훈과 다른 세계에 있다는 점을 수없이 얘기했고, 바꾸려고 하지도, 그럴 생각도 없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인아의 배드 초이스는 여기서 비롯된다. 자신의 연애 세계를 놓치지 않기로 했다면 인아는 결혼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연애의 끝은 결혼이라는 말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제 자명하다. 그러나 결혼은 집안과 집안 간의 만남이라는 말, 더 넓게는 두 사람만의 것이 아니라는 말은 아직 유효한 것 같다. 이는 당위를 떠나 그 기제와 제도가 그렇게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만의 정의로도 실현가능했던 연애와 달리 결혼은 그럴 수 없다. 게다가 아이까지..아이는 태어난 순간 나의 자식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손주, 조카가 되어 버리지 않던가. 그저 연애에서 이름만 바뀐 결혼이 아닌 이상 인아는 결혼을 하지 말아야 했다. 그것도 한 사람도 아닌 두 사람과의 결혼을 택한 건 내가 보기에는 배드 초이스다.
그렇다고 해서 인아와 덕훈의 연애가 파멸이어야 했을까? 파멸이었어야 진짜 현실적인게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배드 초이스를 저지른다. 지구의 판과 판이 만나는 지점 위에서 비틀비틀거리며 연애를 하는데 마치 볼링에서 트리플을 꽂아버리듯 어찌 나이스 초이스만을 연속할 수 있을까. 연애, 그리고 사랑은 우리의 의식만으로 통제되지 않은 것이 아니었던가. 만약 그들의 연애가 파멸을 맞았다면 나는 연애에 대한 허무함만을 느낀채 이 책을 덮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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