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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won Jul 07. 2021

[대화] 우리 사이에 말하는 지팡이가 있다면

대화를 지혜롭게 하고 싶은 순간


오늘의 단어: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의 ⌜말하는 지팡이⌟ 


내가 "말하는 지팡이(Talking Stick)"를 만났던 것은 그랜드 캐년 정상에 머물때 방문했던 원주민 '호피' 부족의 예술 뮤지엄에서였다. 척박하고 혹독하기까지한 서부의 사막에서 지난 수천년간 콩이나 옥수수를 경작할만큼 세상을 예리하게 관찰하고 공생할줄 알았던 호피족 다운 물건이라고 생각했었다. 이 지팡이의 힘은 간단하다. "말하는 지팡이"를 손에 쥔자는 말할 권리를 얻고, 주변 사람들은 지팡이를 물려받을 때까지 조용히 경청을 해야 한다. 마을회의와 같은 단체 모임에서 참석자들은 지팡이를 쥐고 발언을 한 뒤에 바로 옆 사람에게 넘겨 결국 모두가 돌아가며 발언권을 갖게 된다. 지팡이를 이어 받은 사람은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기 전에 먼저 방금 발언을 마친 옆사람의 이야기의 핵심을 반복해서 말해야 한다.


“When Grandfather Speaks” by Artist Alfredo Rodriguez.


호피족의 "말하는 지팡이"는 해리포터의 마법지팡이처럼 정교하지도, 과거 고등학교 선생님의 사랑의 매초리처럼 권위적이지도, 오늘날의 발언권의 상징인 마이크처럼 차갑고 화려하지도 않았다. 여러 종류가 존재하지만 대부분은  크기나 굵기 면에서 딱 연필만하여 어린아이나 힘없는 할머니도 부담없이 손에 쥘 만 하다. 얇은 나뭇가지 중간에는 작은 비즈구슬이 촘촘하게 둘러박혀 있으며, 한쪽 끝에는 짐승의 털과 새의 깃털이 달려있었다. 깃털은 용기있게 말할 것을, 부드러운 털은 상냥한 어조와 다정한 어휘를 택할 것을, 지팡이 위에 달린 구슬은 위대한 영혼이 그날 공유된 언어들뿐 아니라 지팡이를 들었던 이들의 마음속 진심까지 다 듣고 있음을 상징한다고, 지팡이에 붙은 작은 설명서에 적혀져 있었다. 지팡이를 손에 쥔 이에게 진정한 대화의 지혜와 언어의 힘을 상기시켜주는 것이었다.


나는 호피부족의 모임을 상상해본다. 말하는 지팡이를 넘겨주고 넘겨받는 그 잠깐의 행위들은 하나의 의식이 되어, 우리 모두 저마다의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표현할 능력이 있는 동등한 존재들임을 가르쳐줄 것이다. 그 잠깐의 침묵은 방금 들은 그 말을 소화시키는 동시에 나의 생각을 정리해볼 기회를 줄 것이다.

세상에는 백마디 충고보다, 쓰디쓴 경험보다도 더 강력한 상징들이 존재한다. 말하는 지팡이를 처음 만난 그날 이후로, 나는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법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지팡이를 손에 쥐어보지 못하는지, 마이크의 화려함과 기교만을 믿은채 사회에 울려퍼지는 헛된 말이 얼마나 많은지, 남편과, 가족과, 오랜 친구와 단둘이 나누는 대화에서 조차 지팡이의 법칙을 잊은채 상대가 방금 한 말을 제대로 듣지 않고 다른 소리를 하는 때는 얼마나 많은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나는 부드러운 털이, 깃털이, 구슬이 상징하는 언어의 지혜를 잊고 않고 마음에 가까운 단어들을 사용하고 있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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