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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won Nov 26. 2023

샌프란시스코 동네 서점에서

글이 써지지 않아 막막할 때 나는...

정신적 고갈을 느낄 때마다 서점으로 뛰쳐간다. 그 서점은 아이가 마실 우유가 떨어졌을 때 얼른 다녀오는 동네슈퍼, 현금을 뽑으러 추리닝 바람으로 가곤 하는 은행 ATM 과 거리를 공유한다. 


인도를 향해 널찍하게 열려있는 입구에 들어서면 책들이 눈앞에 쏟아진다. 누군가의 노고와 상상력과 용기가 예쁜 표지와 명쾌한 제목을 달고 방문자를 반긴다. 나는 가장 먼저 책들을 손으로 휙 쓸어본다. 마치 그 손짓에 텅 비어있는 내 영혼이 채워질 수 있기라도 하듯. 


대형서점은 물론 다양한 컨셉을 갖춘 독립서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서울과 달리 샌프란시스코에는 서점이 몇 없다. 프랜차이즈를 좋아하지 않는 정치적 성향에 비싼 땅값이 더해져 한국의 영풍문고나 미국의 반즈앤노블즈와 같은 대형서점은 아예 찾아볼 수 없다. 그런 샌프란시스코에서 5분 안에 서점에 닿을 수 있다는 건 엄청난 행운이다.



샌프란시스코에 서점은 몇 없을 지언정 책은 어느 시절보다 접근성이 좋아졌다. ebook리더기는 물론 휴대폰으로 수시로 책을 읽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밀리의서재와 리디북스, 도서관 앱 덕분에 저렴한 금액 혹은 무료로 수많은 책을 받아본다. 서점브랜드 웹사이트들은 베스트셀러 목록을 분야별 세분화하여 보여주며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 막막한 이들을 친절하게 안내해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서점에 들어서야 비로소 책과 진짜 조우를 한다. 


책 한권을 집어들 때 그곳에는 그 책의 별점도, 리뷰 수도, 상세 카테고리도, 판매 랭킹도 없다. 대신 책의 

무게와, 종이의 질감과, 그 책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이웃 책들과 나무 선반이 있다. 손으로 정성스럽게(?) 휘갈겨쓴 서점 스태프의 추천평이 있다. 추천평을 읽고 있는동안 뒤에서 스태프가 단골손님과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린다. 어느새 그의 목소리를 대입해 낭랑하게 추천평을 읽어본다. 



책구경이나하자 라는 마음으로 들어가지만 결국엔 어김없이 책 한권을 쥐어들고 나온다. 바로 옆에 복도와 화장실을 공유하는 칵테일바 탓을 해본다. 오후 두시부터 구리 머그잔에 크래프트 칵테일을 파는 힙스터들의 칵테일 바. 그곳에서 너는 서슴없이, 분위기에 취해, 단 30분을 위해, 한 잔을 시켜먹지 않는가. 같은 가격으로 일주일이, 한달이, 아니 평생이 달라질지도 모르는데 어찌 돈셈을 하고 있느냐. 하고 책 뒤에 붙은 가격표가 나를 혼내듯이 쳐다보고 있다. 


이번에 고른 책은 You’re Not Listening: What You’re Missing and Why It Matters 이다. 토요작가클럽을 하면서 UX리서처로 일하던 때가 많이 떠오른다. 누군가의 속내를 집중해서 듣고 그 사람의 고민과 목표를 마치 내 인생숙제인냥 오랫동안 껴안고 시간을 보내는 일이라 그렇다. 내가 뱉는 말의 무게가 무거워질수록 듣는 일이, 듣고 해석하는 일이 더 조심스럽다. 어떻게 하면 더 잘 들을 수 있을까. 상대를 더 잘 이해하고, 공감하고, 도와줄 수 있을까. 이 책을 발견하고서야 나도 알아차리지 못했던 마음 속 깊은 욕망을 마주한다. 서점은 때로 무당보다 더 예리하게 마음을 파고들곤 한다. 



책은 우리가 제대로 듣지 못하는 이유와 해결방안을 챕터별로 소개한다. 가장 의외였던 (하지만 생각해보면 참 뻔한) 이유는 우리의 내면의 목소리Inner Voice가 너무 커서란다. 누군가가 내뱉는 단어가 트리거 혹은 새로운 무대가 되어 마음이 소리를 치기 시작하는거다. 마치 산책을 자주 못한 강아지가 오랜만에 나와서 더 흥분하는 것처럼 우리가 자주 들여다보아주지 못하는 내면도 대화 속에서 그런 식으로 날뛰는건 아닐까. 글을 자주 쓸수록 마음이 차분해지는 건 그래서일지 모른다. 


토요작가클럽의 글동무들에게 글쓰기 만큼이나 강조했던게 영혼 채우기다. 글쓸거리가 생각나지 않는다면, 막막하다면, 그건 내 글쓰기 실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정말 영혼이 탈탈 털린 상태여서일 수 있다. 영혼 채우기에는 데이트를 준비하는 것과 같은 약간의 준비와 노력이 필요하지만 굉장히 근사할 필요도 없다. 나의 동네서점 산책도 그리 대단한건 아니었다(머리를 꽉채운 온갖 일상의 의무와 지루한 협상을 벌이고 나와야 했을 뿐.)



하지만 과장없이 말하건데 

방금 발견한 나의 내면을 닮은 종이책을 손에 들고 근처 카페에서 아이스라떼를 마시며 책장을 넘기는 오후는 하와이에서의 휴가만큼이나 귀하고 달았다. 





북클럽처럼 캐주얼하지만 진중하게 참여할 수 있는 글쓰기클럽을 하고 있습니다. 

각자의 라이프스타일과 목표에 어울리는 글쓰기 습관과 체계를 만들어드리고 쉽게 만날 수 없는 영어권 글쓰기 관련 동기부여 콘텐츠를 제공합니다. 다양한 나라 도시에서 참여하는 글동무들도 있고요. 


토요일처럼 가뿐한 마음으로 글을 써보자는 뜻에서 토요작가클럽이라고 불러요. 이 토요작가클럽이 곧 새 프로그램을 시작하는데요. 지인들과 함께한 여름, 인스타그램의 팔로워분들과 함께한 가을에 이어 이번 12월부터 열리는 겨울 모임에 브런치 독자&작가 분들도 초대합니다. 관심이 있으신분들은 인스타그램 @juwon.kt에 DM 주시면 자세한 업데이트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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