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해
의류 쇼핑몰이 성장하다 보면 타 쇼핑몰과의 제품 차별화 및 영업이익을 높이기 위해 자체 제작을 하게 된다. 그리고 자체 제작을 통한 영업이익이 개선되기 시작하면 자신감이 붙게 되고 더더더 많은 생산을 하고 결국 어느 시점에 재고 문제로 큰 사고가 한번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때 발생하는 규모에 따라 좋은 경험 한번 했다고 생각하고 넘길 수준 일 수도 있고 또는 돌이킬 수 없는 문제의 시발점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 제도권 의류 기업 대부분도 판매 부진에 따른 재고 문제 이슈로 인해 몇 년 못 가서 해당 브랜드를 접는 경우가 많다.
월평균 30억 원 매출을 하는 쇼핑몰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작년에 겨울 아우터 다운재킷과 패딩을 총 1만 장을 만들었고 고객들의 뜨거운 성원에 힘입어 시즌 초기 조기 품절이 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매출을 더 올릴 수 있었는데 아쉽게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올해엔 제대로 팔아보고자 과감하게 투자해 2만 장(제작원가 10만 원 / 판매가 25만 원)을 기획 생산했다. 그리고 올해 전국적으로 롱 패딩 열풍이 풀어 그 어느 때 보다 기대가 컸다. 그런데 잘못된 가격 정책과 운영 미스로 5천 장밖에 못 팔고 1만 5천 장이 재고로 남게 되었다. (생산 원가 제품당 10만 원이므로 15억 원의 재고가 남게 된 상황) 아무리 매출이 높은 쇼핑몰이라도 단일 제품 재고 금액으로는 여러모로 부담이 큰 규모이다. 그리고 내년에 팔릴 것이란 기약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의류 쇼핑몰은 영업 이익이 안 좋은 사업 분야다. 이런 기업 특성을 고려하면 15억 원이라는 현금이 그대로 묶이는 상황 발생은 운영자금이 충분하지 못한 국내 소호 의류 쇼핑몰 입장에선 앞으로 운영에 큰 자금 압박으로 다가오게 된다. 그리고 부피가 큰 1만 5천 장의 겨울 아우터 재고를 보관하기 위해 1년간 창고 유지 비용 또한 작게는 수천만 원에서 억대의 비용이 들어가야 한다. 내년에도 못 팔면 그 비용은 눈덩이처럼 커진다. 그리고 이 겨울 재고 때문에 해당 연도에 겨울 아우터 진행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그리고 의류 특성상 올해 5천 장 밖에 안 팔린 동일 상품을 내년에 1만 5천 장 다 판매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12월 10일경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대표가 주관하에 MD, 마케팅, 광고, 생산 관련 담당자 문제 해결을 위해 회의 소집을 진행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해결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그래서 나온 결론은?
모두사 예상했겠지만, "의류 쇼핑몰 특성상 기존 브랜드와 달리 50% 이상 할인을 진행하면 기존 고객들의 반발이 심할 수 있으므로 12월 20일 전후로 시즌 오프 할인 30%로 해서 2일간 재고 소진을 합시다!"
언뜻 보면 위의 회의 결론은 아주 현실적이다. 하지만 본 회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다시 상기해보자. 바로 1만 5천 장에 달하는 재고를 없애야 하는 상황에서 모인 회의다. 2달간 5천 장을 팔았는데 2일간 30% 할인해서 판다고 연말과 1월로 접어드는 상황에서 그걸 다 소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행사 예상 결과는?
모두가 짐작 한대로
거의 그대로 재고로 남는다.
가장 중요한 시기적인 문제
소비자가 겨울 아우터를 대부분 사는 시점은 10월 20일 - 12월 10일 전후다. 이미 소비자들은 어떤 형태로든 겨울 아우터를 준비했거나 아니면 대체 방안을 찾았을 시기로 접어들기 때문이다. 아래 겨울 패딩 빅데이터 추이 그래프를 보면 판매가 가능한 시기를 놓쳤다는 것을 더 잘 볼 수 있다.
쇼핑몰 고객층 문제
겨울 아우터와 같이 객단가가 높은 20~30만 원의 패딩 점퍼를 소호 쇼핑몰에서 생산 판매하는 경우, 품질이 브랜드와 동일한 수준의 퀄리티라고 아무리 어필한다고 해도 고객들에겐 쇼핑몰 자체 제작 상품일 뿐이지, 노스페이스, 디스커버리 같은 브랜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해당 옷을 구매할 가능성이 있는 고객은 여러분이 운영하는 쇼핑몰의 일정 등급 이상의 충성 고객에 한정될 수밖에 없다. 브랜드 가격과 거의 비슷하게 판매하는 겨울 아우터를 구매할 일반 고객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할인 가격 문제
25만 원 롱 패딩(30% 할인) >> 175,000원
30만 원 다운점퍼(30% 할인) >> 210,000원
가성비를 앞세워 중저가 브랜드들이 롱 패딩 가격이 10만 원 중반대로 판매해서 대박을 터트린 상황, 여타 브랜드 조차 20만 원대의 롱 패딩을 판매하고 있는 상황에서 위와 같이 쇼핑몰 제작 아우터 30% 할인된 가격(17만 5천 원, 21만 원)이 메리트가 있는가? 마음 같아선 50% 이상 할인을 해서라도 재고를 소진하고 싶겠지만 유통망이 온라인 자사몰이 거의 유일한 쇼핑몰 입장에선 50% 이상 할인에 따른 고객들의 원성과 불만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고 다음 해에 겨울 아우터 판매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에 실행 하기엔 어려움이 따른다.
현실적 해결책, 그리고 예상된 결과..
종합해보면, 문제 해결을 위해 모여 내린 결론에 따라 2일간 30% 세일을 진행한 프로모션은 쇼핑몰이 취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대로 예상되는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했다면 본 행사로 인해서 얻을 실제 효과가 거의 없음은 본인들도 일정 부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지난번 글(의류 쇼핑몰 신상품 할인을 왜 하는 걸까?)에서 처럼, 그동안 해왔던 대로 해서는 더 나은 해결의 기회를 만들 수 없다. 문제를 기존의 틀에 끼워 넣어 조금 더 나은 효과를 내는 것을 고민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해결해야 할 일을 정확히 이해하고 눈앞에 문제를 새롭게 정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존 시각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는 'A라는 겨울 아우터 1만 5천 장의 재고를 판매해야 하는 일'이지만 다른 관점에서 접근하면 현재 상황에서 우리가 해결하고자 하는 실제 목표는 고스란히 재고로 남을 것으로 예상되는 A상품의 '1만 5천 장 제작에 들어간 제작 원가를 회수하는 일'이다.
재고를 판매해야 한다는 시각으로 접근하면
세일이라는 전략의 한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하지만 원가 회수 관점에서 접근하면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게 된다.
'브랜드 퀄리티 판매가 25만 원의 덕 다운, 구스다운 패딩, 한 달 35,000원씩 2달간 입고 3월 10일까지 택배로 반납!' 이렇게 판매가 아닌 대여 관점으로 접근한다면 어떤가?
1명당 1.0개의 제품 대여 시 15,000명의 대여 필요.
1명당 1.5개의 제품 대여 시 10,000명의 대여 필요.
1명당 2.0개의 제품 대여 시 7,500명의 대여 필요하다. 가능한 수치로 보이기 시작한다.
매일매일 10일간 500명씩 선착순 대여 시작, 이를 통해 매일 쇼핑몰로 접속자 증가를 유도하고 고객들이 입소문을 내기 위한 기간을 고려해 14일간(2주간)의 행사를 진행한다. 물론 기본적인 광고 마케팅은 병행하면서 해당 이벤트를 크게 알린다. 이렇게 지속하면 마지막 대여 프로그램 시행 일이 다가올수록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높은 수의 방문자와 대여자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달에 3만 5천 원에 겨울 구스, 덕다운 패딩을 입을 기회는 모든 잠재 고객에게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언론 이슈로도 충분히 활용 가능할 테고)
대여 기간이 끝난 후 밀려들어오는 반품으로 인한 업무 마비와 후처리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하기 때문에 아래와 같은 방법을 제안한다. 대여가 끝나고 고객들이 보내오는 제품 회수 처리에 들어가는 시간과 인력은 반품 처리 전문 서비스(리고 플로우)등을 이용해서 해결하면 시간, 비용 측면에서 도움이 된다. 본인의 역할(원가회수)을 다 하고 회수된 옷은 ('리사이클 다운 아시나요?'... 패딩 열풍에 ‘착한 다운’도 인기 ) 이런 시스템을 거쳐 원가는 낮추고 사회적 소비 가치는 올린 제품으로 재 탄생하여 다가올 겨울을 대비한다.
(1) 대여 이벤트를 통한 원가 회수 >> (2) 전문 반품 서비스를 활용해 회수를 쉽고 빠르게 >> (3) 회수된 옷의 충전재(오리털, 거위털)등은 리사이틀 다운 제품으로 착한 옷으로 재 생산>> (4) 원가는 낮추고 가치는 올리고!
어떤가? 같은 문제지만 해당 문제를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는가에 따라서 문제 해결을 넘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어떤 문제가 지금까지의 과거 경험을 토대로 비춰 봤을 때 실현 가능한 범위 밖이라 판단되지만 해당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야 하는 절대적인 상황이라면 혁명 수준의 개혁이 요구되는데 그러기 위해선 그동안 조직이 공유해 온 기존 사고에 리셋 버튼을 눌러 0에서 다시 판을 짜야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선 이미 경험이 있는 특정 원칙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기존 판을 과감히 뒤집어 새롭게 원칙을 만들고 이를 추진할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문제가 생기면
박스 밖으로 빠져나와 생각하세요.
그리고 그 박스를 부숴 버리세요.
ⓒ 크리에이티브마인 이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