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믿는 것을 볼까? 보는 것을 믿을까?
영국의 BBC 방송에서 한때 네시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다각적인 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다. 그 와중에서 네스 호 관람객들을 대상으로 특이한 실험이 행해졌다. BBC팀은 네스 호 중간의 호수 수면에 기둥을 설치해 놓고 단체 관광객들에게는 알리지 않고, 이것을 밀어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했다.
그런 후에 관광객들에게 자신이 본 것을 그려보라고 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네스 호의 괴물을 믿는 사람은 괴물의 머리를 그렸고, 믿지 않는 사람은 네모난 통을 그렸다. 둥그런 통을 보여주었음에도 어떤 사람은 통을 보았고, 어떤 사람은 괴물의 머리를 보았던 것이다.
1994년부터 1996년까지 전 미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O.J. 심슨 사건을 둘러싸고 한 연구자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재판의 진행과정 중에서 수많은 증거와 증언, 자료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처음의 태도를 그대로 유지했다. 즉, 심슨이 진범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끝까지 그가 진범이라고 생각했고, 심슨이 진범이 아니라고 생각한 사람은 끝까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심슨이 진범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에 적합한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취합하여 자신의 태도를 강화했고, 심슨이 진범이 아니라고 생각한 사람들 역시도 자신의 태도에 적합한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취합해서 자신의 태도를 강화했던 것이다.
소비자는 믿는 것을 본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이나 믿음을 바탕으로 해서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처음 제시하는 믿음이 중요하다. 한번 잘못 설정된 믿음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브랜드는 소비자들에게 확실하고 단단한 믿음을 심어줘야 한다는 것 (원문 : 쉽고 강한 브랜드 전략 중에서)
이쯤 되면 이 이야기를 왜 하는지 눈치챘을 것이다. 임블리, 난닝구, 육육걸즈, 츄, 핫핑, 고고싱 등의 쇼핑몰을 비롯해 국내에서 소위 잘 나간다는 의류 쇼핑몰 대부분에서 제품 목록에 움직이는. gif가 많은 이유에 대해 이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 보고자 하기 때문이다. 통계적 데이터는 부정확한 상황에서 초기 선두 쇼핑몰 한 곳에서 시행한 첫 번째 시도가 아무런 이유 없이 모든 쇼핑몰에서 따라 하게 되고 그것이 어느 순간 '당연한 것'이 되어 버린 상황은 아닌지 비판적 시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이유
다들 그렇게 하니까!
실제로 명확한 이유를 대지 못하는 담당자들을 많이 접하게 되는데, 왜?(why?)에 대한 질문은 여기에서 생략된다. 그냥 따라 하는 것일 뿐이라는데 이유가 있을 리 없다. 대표와 담당자 모두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 없이 다른 쇼핑몰 따라서 그냥 하는 것이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서도 나타난다.
소중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가며 하는 일이
정작 '왜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고 하는 것이라면
이것만큼 슬픈 일도 없지 않을까?
두 번째 이유
제품 주목도가 높아져 클릭률이 상승하면 구매로 이어질 확률이 올라가니까.
이 주장엔 나름대로 근거가 있다. 일반적으로 같은 이미지를 갖고 하나는 '움직이지 않는 배너'를 만들고, 하나는 '움직이는. gif 형태 배너'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노출시켜 A/B테스트 시행 시, 후자 쪽의 클릭률이 높게 나타나는 실험 결과에 대한 통계는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내 의류 쇼핑몰 메인 페이지를 한번 보면 대부분의 상품이 움직이는 배너로 만들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10개의 제품 중에 1~2개가 '움직이는. gif'로 만들어진다면 효과가 크게 있을지 몰라도, 10개 중 8~9개 제품이 '움직이는. gif'로 만들어졌다면 효과가 있다고 과연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세 번째 이유
이 글에서 중점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부분이기도 한데, '움직이는. gif'로 만드는 주된 이유로 주장하는 것이 '컬러가 다양한 제품의 경우 대표 목록 이미지로 선택 한 컬러의 상품만 많이 판매가 되니까, 다른 컬러도 보여줘야 한다.'이다. 많은 의류 쇼핑몰이 아마 해당 이유로 인해 제품 리스트 모두를 반짝반짝 움직이는 전광판으로 만들어 버리고 있는 것인데, 이게 정말 근거 있는 사실일까?
1.'움직이는. gif' vs '컬러칩 기능'
쇼핑몰 기능 중에 컬러칩 노출 기능이 있는데 굳이 제품 사진을 '움직이는. gif'로 꼭 해야만 잘 팔릴까?
쇼핑몰 임블리, 난닝구를 비롯한 상위 쇼핑몰 또는 운영 기간이 오래된 몰들을 중심으로 컬러칩 기능을 사용하지 않고 '움직이는. gif' 기능을 유난히 많이 사용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그래도 뭔가 이유가 있지 않을까?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이유를 찾기보다 왜 이런 현상이 고착화되었는지에 대한 이해가 답에 근접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2000년~2010년 사이 국내에서 의류 쇼핑몰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초기 시기, 시중의 쇼핑몰 솔루션 기능(상품 진열, 재고 관리, 컬러별 옵션 관리, CRM)등의 기능은 지금에 비하면 아주 기능이 미약한 상태였다. 특히 다양한 컬러와 사이즈 중심의 의류 특성상, 제품의 컬러별 노출에 대한 이슈가 존재 강하게 했고 이를 해결할 임시방편으로 쇼핑몰들이 생각한 것이 '움직이는. gif'였다. 그리고 실제로 효과가 있었다. 그리고 이 현상이 하위 쇼핑몰로 빠르게 퍼져 나가게 되었고 고착화되었다. 이런 선두 업체의 행동으로 전체 쇼핑몰에 고착화된 대표적 케이스로는 '신상품 할인, 쇼핑몰 로딩 속도 문제를 야기시키는 메인 페이지의 긴 제품리스트, 스크롤 압박이 심한 긴~ 제품 소개 페이지' 등이 있다.
진짜 컬러칩 활용을 제대로
극대화시키기 위해
노력해보긴 한 것일까?
2.'움직이는. gif' vs '검색 기능'
요즘 컬러, 사이즈 별로 검색이 가능한 쇼핑몰 기능이 있는데 꼭 '움직이는. gif'를 고집해야만 할까?
요즘 국내 쇼핑몰 솔루션들은 훌륭한 검색 기능이 있다. 하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쇼핑몰 들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컬러별 검색, 사이즈별 검색, 금액별 검색 등을 찾기에 모자람이 없다. 그런데 왜 적극 활용을 하지 않는지 이야기를 들어보면 고객들이 쇼핑몰에서 검색을 별로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실제 내부 통계를 들여다보면 이 이야기에는 일정 부분은 맞고 일정 부분은 틀린 이야기다.
일부 맞는 이야기
국내 의류 쇼핑몰은 수십만 가지 제품 속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 검색해야 하는 오픈마켓과 달리 1차적으로 특정 목표 고객군에 맞춰진 큐레이션 서비스 성향이 강하다. '160cm 이하 여성들을 위한, 빅사이즈 전문, 섹시 원피스 전문, 오피스룩 전문' 등으로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해당 쇼핑몰에 방문해서 검색을 활용 하는 빈도가 낮았다. 실제로 지금도 대부분 의류 쇼핑몰 통계를 보면 그렇다. 그동안 쇼핑몰 내부 검색 기능도 별로 좋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틀린 이야기
200여 개 미만의 상품을 판매하는 쇼핑몰이라 가정하면 해당 몰에 방문한 고객이 굳이 검색을 하지 않아도 몇 번의 스크롤 또는 클릭으로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1,000여 개의 상품을 상시 판매하는 의류 쇼핑몰이라면 어떻게 될까? 고객은 클릭 몇 번으로 내가 원하는 제품을 찾지 못하면 이탈하게 될 것이다. 이것을 최소화시키기 위해 다음, 네이버 할 것 없이 쇼핑몰 서비스를 하는 기업들이 검색을 고도화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쇼핑몰 솔루션에 해당 검색 기능이 크게 강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움직이는. gif'를 통해 컬러별 옷을 보여주는 의류 쇼핑몰의 현재 방식이 궁극적으로 맞는 이야기 일까?
'움직이는 gif'가 의류 쇼핑몰 영역에서 컬러칩과 검색 기능을 대신할 수 있는 강력한 존재라면, 카카오, 네이버를 비롯한 아마존과 같은 기술 기반 쇼핑몰을 운영하는 기업에서 벌써 해당 기능을 확대 적용하지 않았을까?
여러분의 쇼핑몰을 들여다 보자, 쇼핑몰 어딘가에 있는지도 잘 모르게 존재감 없이 배치된 검색창에 고객들이 검색을 많이 해주길 바라는 건 너무 이기적인 생각이라 들지 않는가? 그리고 좋은 검색 기능이 있어도 활용을 고민하지 않고 익숙한 옛날 것만 고집하면서 "우리 통계를 보면 검색이 중요하지 않아요"라고, 그것이 옳다고 우기진 말자.
초기 쇼핑몰 솔루션 기능적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고민과 대안은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지금도 그것이
정말 최선이라 생각하는가?
ⓒ 크리에이티브마인 이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