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를 타고 강변 터미널에 가는 중이었다. 지방 출장이 있었는데, 갑자기 생긴 급한 일을 처리하느라 늦게 출발했다. 충무로에서 출발, 버스 출발 시간은 25분밖에 남지 않았다. 버스를 놓치면 안 되었기에 택시기사 아저씨께 정말 오랜만에 부모님 뵈러 고향에 내려 길이다, 버스를 놓치면 절대 안된다 거짓말을 했다. 경북의 작은 시골마을이라 오늘 이 버스가 마지막이라고.
택시기사 아저씨는 마른 체구에 은발, 젊었을 적 얼마나 많이 웃고 사셨는지 광대가 불룩하고 안 웃어도 웃는 주름이 자글자글한 멋진 노신사였다.
택시기사 아저씨는 부모님을 뵈러 간다는 말을 듣고, 내가 피곤해 보였는지, 말라보였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주셨다.
'오랜만에 부모님 뵐 때 부모님 기쁘게 해드리는 방법이 뭔지 아는가?'
- 아, 아뇨.
'뜨거운 설렁탕을 한 그릇 비우고 부모님을 뵙는 거야. 설렁탕이 아니라도 뜨겁고 국물 있는 음식이면 좋아. 뜨거운 음식을 먹으면 잠깐이나마 혈색이 좋아지고 소금이 많아서 얼굴이 약간 붓거든. 그런 얼굴을 보여줘야 부모님이 '자식이 잘 먹고 잘 사는구나' 안심한다네.'
'나도 젊었을 때 자네처럼 말랐고 피곤하게 살았어. 항상 눈두덩이가 들어가 부모님이 걱정이 많으셨지. 지금 자식이 자네보다 약간 큰데 키워보니 그 마음 알겠네. 옛날에도 알았더라면 좋았을걸. 부모는 오랜만에 자식을 볼 때 얼굴을 제일 먼저 본다네. 명심하게.'
택시기사 아저씨는 말을 마치기 무섭게 택시를 부아앙-! 몰기 시작했다. 점잖은 노신사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앞길을 막는, 끼어드는 차들은 모두 개새끼 소새끼였다.
부모님 만나 뵈러 간다는 말은 거짓말이었지만, 덕분에 기적적으로 제 시간에 버스를 탈 수 있었고 따뜻하고 소중한 이야기 들을 수 있었다.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이야기와 깨달음이 있다는 것은 정말 재미난 일이다. 부모님께 잘 사는 모습 보여드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