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미술관 전시 HENRIK VIBSKOV FABRICATE
아침에 눈을 뜨면 무슨 생각을 하시나요? ‘지금 몇 시?’ ‘나가기 싫다...’ ‘아침 뭐 먹을까.’ 저는 아침이면 옷장을 열어 놓고 한참 생각합니다.
‘오 늘 뭐 입 지 ? 뭐 입어? 뭐 입지?!?!’ 아침부터 일생일대의 난제를 안겨주는 패션. 늘 우리와 함께 하기에 일상적이면서도 개성을 드러내는 특별한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일상이 예술이 되는 미술관, 대림미술관에서 패션을 주제로 한 전시가 한창입니다. 덴마크의 패션 디자이너 헨릭 빕스코브Henrik Vibskov의 전시인데요. 헨릭은 2003년부터 파리 패션 위크에서 컬렉션을 선보이는 유일한 북유럽 패션 디자이너입니다. 미술관에 전시되고 있는 그의 작품 가운데 인상 깊었던 한 작품을 소개합니다.
Henrik Vibskov
검고 목이 긴 새가 거꾸로 매달려 있습니다. 어쩐지 스산한 분위기가 느껴지네요. 동화 속에서나 볼 법한 저주 걸린 숲이 떠오르기도 하고요. 유쾌한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이곳을 보고 패션쇼를 상상하기란 더욱 어렵죠. 하지만 여러분은 지금 2013년에 열렸던 헨릭 빕스코브의 F/W 패션쇼 무대를 보고 있습니다. 런웨이에서 모델들이 멋지게 걷는 모습만 봐온 사람들에겐 낯선 풍경인데요. 런웨이 중앙에 작품이 놓이고 모델들은 그 옆을 걸었습니다.
작품을 보니 어떤 단어가 떠오르시나요? 당시에 헨릭은 죽음을 주제로 쇼를 준비했습니다. 죽음, 이 두 글자에서 사람들이 깊은 슬픔에 빠져 죽은 이를 애도하는 장면을 쉽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와 정반대로 죽음을 즐겁고 아름답게 기리는 곳이 있는데요. 남미의 과테말라에서는 매년 죽은 자를 위한 축제가 열립니다. 무덤에 화려한 꽃을 꽂고 즐거운 음악으로 망자를 기립니다. 이날 묘지에서 굉장히 거대하고 둥근 연을 날려요. 형형색색의 화려한 연에는 꼬리가 길게 달려 있고, 바람에 연이 흔들릴 때마다 방울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헨릭은 여기서 영감을 얻습니다. 어둡고 슬픈 죽음이 아닌 아름다운 죽음에서요. 그래서 나무 틀로 연을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닭 도살장에 방문해서 보았던 장면을 형상화해 목이 긴 새를 거꾸로 매달았지요. 이 새는 남미를 대표하는 홍학Flamingo입니다. 붉은기가 돌기 때문에 홍학이란 이름이 붙여졌어요. 부리는 검고요. 하지만 작품에 있는 새는 붉은 부리의 검은 홍학입니다. 죽음을 의미하기 위해 검은색을 썼다고 여길 수 있겠지만, 여러분 나름대로 여러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냥 바지 한 벌을 만드는 게 패션은 아니거든요.
헨릭이 한 말입니다. 패션이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어떤 독창적인 관점과 아이디어를 주는지, 대림미술관에서 여러분만의 런웨이를 즐겨 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