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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문화답 Oct 31. 2024

The 자연인이 될 수 있을까

운종재(雲從齋) 만들기

셀프 유배당한 거야?


뭐랄까 좀 어이가 없었다. 덜렁 컨테이너 하우스 한 동,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특별할 거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멀리 야산과 구릉지들이 있고, 살짝 떨어진 곳에 드문드문 단층집들이 보인다. 농막을 둘러싼 그리 넓지 않은 부지에는 무성한 잡초와 어설프게 서 있는 관목들뿐이다.


이 자칭 '전원주택'의 주인인 친구로 말할 것 같으면, 학교 다닐 때는 총학생회 부회장이었으며 졸업 후에는 은행에 입사하여 부지점장을 지내다가 몇 년 전 희망 퇴직했다. 무슨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는데 내용을 들어보면 그냥 그러고 노는 수준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경기도 파주에 '전원주택'을 마련하였다며 친구들 몇 명을 초대했다. 개발 호재를 노리고 퇴직금을 털어 땅을 사두었는데 땅값이 오르기는커녕 여태 묶여 있어 당분간 자신이 살기로 했다는 것이다.


기대했던 숯불 바비큐 같은 것은 없었다. 막강 배달공화국답게 농막까지 배달 온 음식으로 배를 채운 후, 씁쓸한 마음을 안고 돌아왔다. 아무리 봐도 그가 셀프 유배되어 있다는 느낌밖에 들지 않았다.


이 친구는 대체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사람들이 자신의 일상을 플렉스하거나 축적된 자산을 과시하려는 속내를 일일이 알 수는 없지만, 그 저변에는 외로움이라는 복합적인 감정이 깔린 것은 아닐까? 그래서 굳이 타인과 공유하고 공감받으려고 애쓰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버킷리스트 하나를 실현했다고 떠벌리는 이 친구도 많이 외로웠나 보다.


사실, 나의 버킷리스트에도 '운종재(雲從齋) 만들기'가 있다. 역경(易經)에 나오는 운종룡풍종호(雲從龍風從虎)의 앞 글자를 따고, 여기에 집재(齋) 자를 합친 말이다. 러스틱 라이프(lustic life)를 전제로 일종의 '리틀 포레스트'를 만들어 그곳에서 시골길 자전거 타고 달리기, 감성 포텐 7080 기타 연주하기, 내 서재에서 책 3권 쓰기 같은 것을 하는 것이다(필자의 브런치북 '죽기 전에').



내 상상 속 그린랜드


'그곳'은 서울에서 두세 시간 이내 거리이어야 한다. 너무 접근성이 떨어지면 의도치 않은 고립이 될 수 있다. 상하수도 및 전기, 통신, 도로 사정이 나쁘지 않아야 하며, 자연재해가 없고 현지 주민과 적절한 이격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압도적인 뷰가 펼쳐져 있으면 좋겠다.


바깥 풍경이 그대로 보이는 넓은 통창이 있고, 차를 마실 수 있는 작은 홈 카페는 필수이다. 거기에서 주인도 되었다가 손님도 되었다가 책을 읽고 글도 끄적거릴 것이다. 멀리서 벗이 찾아올 경우에 대비해 방 하나는 더 있어야겠다.


해 질 녘에는 마당 가운데에 있는 평상에 앉아 한껏 분위기를 잡고 7080 통기타를 연주한다. 꽃을 좋아하는 아내가 자신의 꽃밭을 꾸밀 수 있도록 마당 한 뙈기를 비워둘 것이다. 지금은 보는 것만 좋아한다고 하지만 언젠가 자신의 꽃을 피워낼지도 모른다.


가마솥 화덕에서는 불을 피워 밥을 하고 산나물도 데치고 꽃 차도 덖는다. 누가 삼겹살을 사오는 날이면 고기도 구울 것이다. 우울한 날에는 장작불에 감자와 옥수수를 던져놓고 불멍하는 시간도 괜찮을 것이다.


비가 오면 부침개와 막걸리 한 병을 차려놓고 빗소리를 따라 추억 여행을 떠날 것이다. 마당에 눈이 소복하게 쌓이면 옛날 고향 집에서 그랬던 것처럼 빵모자를 쓰고 코를 훌쩍거리며 온종일 눈을 쓸어야지. 찾아오는 이 없더라도 문밖 멀리까지 길을 내어 놓아야겠다. 그러다 허리가 아프면 꼬마 눈사람 하나 만들면서 쉬자.


자전거는 두 대를 사야 한다. 그래야 하늘이 파란 날이면 아내와 함께 시골길을 달릴 수 있다. 저녁이면 앞산 너머로 지는 해를 보며 사색에 빠진다면 비로소 플라톤의 이데아와 니체의 허무를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텃밭은 힘에 부치지 않을 정도로 하고, 텃밭에 심은 작물들은 혼자 다 먹을 수 없으니 몇몇 집에 제철 농산물 꾸러미를 보내준다. 그들은 언박싱(un-boxing)의 즐거움을 누릴 것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꾸러미가 도착하기를 손꼽아 기다릴지도 모른다.



이 또한 성공이나 실패


사람들은 세상살이에 지치고 힘들 때면 가장 먼저 전원생활을 동경한다. '내 상상 속 그린랜드'처럼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위안을 받고자 다. 물론 꿈만 꾸는 게 아니라 실제로 실행에 옮기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통계에 의하면 귀농 귀촌 인구는 2017년 50만 명을 돌파한 이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도전에 실패하는 쪽이 더 많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요인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주관적이고 전혀 근거가 없는' 원인 분석을 한 번 해보자. 


정착에 성공하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고향이라는 낯설지 않은 곳을 우선 선택함으로써 회귀본능과 연관성을 중시한다. 기능적인 면에서도 시골에서 자라고 시골생활의 추억이 있는 사람 또는 토목, 건축, 인테리어 같은 현장 일을 많이 한 사람이 유리하다.


절박함도 성공의 한 요인이다. 더 이상 기댈 곳이 마땅치 않은 사람이라면, 그 절박함이 내려놓음으로 승화되고 막다른 길에서 한 선택이 오히려 새로운 기회가 되는 것이다. 텐트나 움막에서 생활해 가며 터를 일구고 집을 지었다는 사람들처럼 용기도 필요하다.


실패하는 사람들은 주로 혼자라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한다. 이를 피하고자 다른 사람과 함께 한다면 십중팔구는 오히려 독(毒)이 된다. 오랜 세월 자기 방식으로 살아온 사람들의 노욕(老慾)은 바다를 덮고, 고집은 고래 힘줄처럼 질겨진다. 합을 맞춰보려고 애쓰다가 결국 갈라서게 되면 좋은 친구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


감정적인 요소 못지않게 환경적인 영향도 적지 않다. 도시의 철저한 방어막 속에 살던 사람은 지네, 뱀, 모기, 쥐, 멧돼지 같은 각종 벌레, 해충, 들짐승들이 무섭다. 움직이기만 하면 흙투성이가 되고 마음대로 씻기도 어려워 불편하기 짝이 없다.


군대를 주둔시키는 좋은 방법이 있기는 하다. 닭 상병, 거위 병장, 고양이 하사, 개 소대장으로 구성된 수비대의 도움을 받는다면 외로움도 덜고 자연 친화적이다. 특히, 충성심이 강한 삽살개는 꼭 키워야 한다. 적을 경계하는 날카로운 눈빛을 살짝 가린 채 목숨을 다해 주인을 지켜줄 것이다. 다만, 이 방법은 시간이 좀 걸리는 것이 문제이기는 하다.


관계 맺기라는 어려운 과제를 또 치러야 한다. 시골 사람 중에는 텃세가 심한 분도 있다고 한다. 사람을 피하고자 내려간 곳에서 또 사람하고 잘 지내야 한다니 살짝 부담스럽다. 인간관계라는 것이 내가 공들인 만큼 항상 결과가 좋은 것은 아니지 않은가.


언제나 어디서나 그러하듯, 무엇보다 가장 크리티컬한 요인은 경제적인 이유이다.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 전 재산을 탈탈 털어 시골 생활에 투자한 경우 리스크가 크다. 애당초 인풋(in-put) 대비 아웃풋(out-put)이 적은 구조이기 때문이다. 만약 가족들과 같이 갔다면 가정불화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돈 벌기가 아닌 목적으로


그렇다면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할 '자연 친화적이고 현실적인' 방법은 없을까? 전원생활을 하면서 자급자족 또는 그 이상의 생계유지 수단으로 어떤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을까?


주지하다시피 최근 인공지능과 로봇을 앞세운 미래 예측이 회자(膾炙)되며 4차 산업 혁명 시대의 불길에 기름을 붓고 있다. 인간 세상의 많은 패러다임을 폭포수 꺾이듯 바꿔놓을 태세이다. 반면 역설적으로 이런 '초(超) 사회'가 진행될수록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분야와 자연주의를 지향하는 안정적 먹거리 공급은 지속해서 주목을 받게 될 것이다.


이에 착안한 한 가지 아이디어가 있다. 'SNS를 기반으로 하는 먹는 꽃 6차 산업'이다. 정부에서도 2017년 7월 1인 창조기업 육성에 관한 법률과 2020년 3월 치유농업 연구개발 및 육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관련 산업 및 기업과 개인에게 여러 가지 정책적 지원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농작물 이외에 꽃차를 아이템으로 주목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찻잔 안에서 다시 피어나는 꽃송이를 보면 삼생(三生)을 생각하게 된다. 산과 들에 지천으로 널린 꽃들이 귀한 약차가 되는 차원으로까지 승화되고 있다. 화전을 곁들여 브런치 메뉴를 운영할 수도 있겠고, 식용 꽃 샐러드를 개발할 수도 있다.


SNS를 다루는 기술이나 온라인 월드의 세계관과 감성을 따라가기에 역부족이라면 문제가 심각하기는 하다. 하지만 믿는 구석 하나는 있다. 진심을 다하고자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통한다는 진정성이다. '좋아요'가 없어도 그뿐이고 아무도 내 글을 읽어 주지 않는다 해도 그만이다.


사람들은 이유만 있다면 첩첩 산골도 마다하지 않고 찾아온다. GPS와 SNS 덕분에 우리나라 국토는 구석구석 스스로 균형 발전하고 있지 않은가? 이렇듯 돈벌이가 아닌 일을 즐기다 보면 언젠가는 돈이 스스로 찾아올지도 모른다.


사실 돈에 관해서 이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초기 비용이다. 토지 임대 또는 매입 비용, 인테리어 비용 등 초기 세팅 비용이 만만치 않게 소요된다. '내 상상 속 그린랜드' 수준으로 구현하려면 수억 원의 돈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자연인(?)'은 싫다.



나는 자유인이다


친구의 '오픈 하우스 이벤트'를 계기로 잠시 잊고 지내던 나의 버킷리스트, '운종재 만들기'를 리뷰해 보았다. 여전히 벽에 걸린 한 폭의 아름다운 수채화를 구경하는 느낌이다.

 

아마 경험이나 관련 지식이 많은 분이 본다면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아주 그림을 그리고 있네. 그게 실현 가능한 일이야? 근본적으로 관점 자체가 틀렸어.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것부터가 시작이야...


하지만 상상도 꿈도 내 자유다. 마당을 나온 암탉(황선미 작가)의 잎싹이와 청둥오리 나그네처럼, 내가 이루어 낸 꿈은 기적이고, 꿈을 가지면 내가 세상의 주인공이 된다.


로또 복권 한 장을 사 들고 일주일 내내 즐거운 상상을 하듯, 결말이 꼭 해피엔딩이 아니더라과정 자체가 이미 행복한 시간일 수도 있다. 즐거웠으면 그뿐 아니겠는가. 혹시 알아? 그러다가 언젠가 용감하게 한 걸음을 내딛게 될지?


과연 나는 언젠가 '운종재(雲從齋)만들기'라는 버킷리스트를 실현할 수 있을까? 나는 'The 자연인'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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