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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문화답 Jul 18. 2024

내 눈밑 지방은 어디로 갔을까

나이가 든다는 게 화가 나

환자복을 입은 채 담요를 덮고 누워있는 침대 주위로 커튼이 둘러쳐 있었고 팔에는 링거가 꽂혀 있다. 내 얼굴은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하다. 거울을 보여 달라고 부탁하고 싶지만 사방은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만큼 고요하다. 얼굴 위에 커다란 바위 하나가 올라가 있었고 그 무게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무거워졌다.


잠들다 깨다를 몇 차례 반복했다. 억겁의 시간이 흘러간듯했다. 집에 가고 싶다. 그때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눈을 떠보니 아내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괜찮아요? 아이고, 수고했네요.'  


그러니까 이 모든 일의 시작은...... 맞아, 나이 때문이었다.


숫자에 불과하다는 나이의 앞자리 수가 바뀐 이후로 몸 상태가 예전 같지 않음을 매일 절감한다. 아니 하루가 아니라 한 시간이 다르게 느껴질 때도 있다. 아무래도 남성호르몬 감소로 인한 여러 가지 증상들이 대부분 이겠지만 이 부분은 논외로 한다.


다음으로 두드러지게 느껴지는 것은 피부, 특히 눈 주변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살면서 하루에도 수 백 번 눈을 깜빡였다고 생각해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이다. 상대적으로 피부가 얇은 데다 근력 약화로 눈 밑에 지방이 흘러내려 쌓이고 주름과 다크 서클이 자리 잡았다.


내 청춘 돌려달라고 외쳐봐도, 아무리 숨기려 애를 써 봐도 거울이나 사진 속 얼굴을 보면 여지없이 우울하다. 스스로 보기에도 민망하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선글라스 없이는 사진을 찍지 않는다.


그렇게 아무 잘못이 없는 나이 탓, 세월 탓을 하고 있던 어느 날 아내가 물었다. '성형수술하러 갈래요?'


불평불만을 늘어놓기만 했지 내 눈 밑 지방을 어떻게 해볼 생각은 전혀 하고 있지 않았기에 이 말을 듣는 순간 살짝 당황했다. 성형수술이라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오히려 면박을 주었다. 적어도 성형수술은 나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내 한숨이 잦아질수록 아내는 포기하지 않고 나를 설득했다.


이쯤에서 나는 보다 근원적인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나이가 들면 늙어 보이는 것이 당연하거늘 굳이 젊어 보이려는 노력 같은 걸 꼭 해야 하나? 아니면 비용도 그렇고 이것저것 번잡할 텐데 그냥 받아들이고 순응하며 사는 것이 맞는 것일까?


비숫한 연령대의 지인들 중에는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살아가는 분들이 있다. 염색을 하지 않아 성성한 백발에, 얼굴에는 굵은 주름이 가득하고 거칠고 검붉은 피부에 검버섯이 보이기도 한다. 여지없이 눈 밑에는 툭 불거진 지방주머니를 달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아직은 50대인 어떤 지인은 한 살이라도 적을 때 관리해야 한다면서 성형외과를 드나들며 보톡스나 호르몬 주사를 맞기도 한다. 헤어스타일링이나 피부 관리숍에도 망설이지 않고 다닌다. 비단 이 사람뿐만 아니라 가끔 방송을 보면 무슨 보디빌딩 대회 같은 것에 나가 입상을 하는 등 세월을 거스르는 인생을 살고 있다는 분들을 종종 접할 수 있다.


내가 지향하는 것은 어느 쪽일까? 아마 이쪽도 저쪽도 아닐 것이다. 같은 고민을 해본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마음 따로 몸 따로이다. 즉, 노화 현상 극복이나 지연에 대한 생각은 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어떤 구체적인 실행에 착수하지 못하고 여전히 세월만 더 보내고 있다.


지나간 젊음이 아쉬워서 붙들고 싶다거나, 새삼스럽게 다른 사람한테 잘 보이려는 차원은 아니다. 다만 거울에 비친 얼굴이 영 내키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자신감도 떨어지고 외부 활동이나 대인 관계에 소극적이 된다. 겉으로 보이는 것에서 시작되었지만 결국 진짜 문제는 심리적인 문제로 귀결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이런 부분이 개선된다면? 성형수술을 통해 삶의 질을 제고할 수 있다면? 모종의 순기능적 측면이 분명히 보인다. 그래서 결심했다. 도전해 보기로.


강남구 신사역 인근에 위치한 성형외과 병원이었다. 몇 년 전 아내가 이 병원에서 쌍꺼풀 수술을 했다. 무슨 특별한 혜택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당시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던 아내가 이곳으로 정한 것뿐이다. 성형외과가 밀집한 지역이라서 그런지 거리에는 모자를 눌러쓰거나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젊은 여자분들 여럿이 눈에 띄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 층별 안내판을 보니 15층이 넘는 높은 건물 전체가 성형외과로 채워져 있었다. 과연 이 많은 성형외과가 어떻게 손익 관리가 되고 지속 경영이 가능한 것인지 공연한 걱정을 잠깐 했다.


아내가 미리 예약을 잡아 놓은 터라 접수를 하고 잠시 기다렸다. 대기 공간에 앉아 있는 사람들 사이를 누비며 유니폼을 차려입은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성형외과라서 그런지 하나같이 빼어난 미인들이었다.


원장이라고 불리는 50대 초반의 남자 의사는 피곤에 절어 부스스한 모습이었으나 친절하고 조곤조곤 말하는 게 신뢰를 주는 편이었다. 내 얼굴을 이리저리 관찰하더니 만족도 80%를 제시했다. 수술은 어렵지 않으나 나이가 있고 내 얼굴형 자체가 안저가 들어간 형태라서 가시적인 효과가 덜할 것이라고 했다.


의사와 면담을 마친 후 담당 실장이 우리를 상담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이렇게 따로 상담실로 끌려가면 항상 뭔가 심상치 않은 얘기들이 나온다. 수술 비용은 하안검과 지방 재배치를 동시에 하기 때문에 다소 비싸다고 했다. 하지만 특별히 원장 지인 추천 할인을 적용해 줄 수 있다고 했다. 수술 전후 사진을 제공해 주는 조건이었다. 뻔한 수법으로 보였지만 거절할 수 없었다.


마취는 부분 마취를 권했다. 성형외과에는 마취 전문의가 없어서 부담이 덜한 이 방법을 권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벌써 수술 공포에 떨고 있는 나는 수면마취를 택했다. 어떤 연예인이나 유명인이 병원을 드나들며 수면마취제를 불법으로 투약했다는 보도 기사를 여러 번 본 적이 있는지라 그렇게 거부감이 크지 않았다. 게다가 그 사람들은 불법이지만 나는 합법적 아닌가.

     

2주가 지나고 수술 당일 오후 2시, 아내는 출근해야 하므로 이번에는 혼자서 병원을 방문했다. 아내가 없으니 뭔가 불안한 느낌이 배가 되었다. 부부란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는 것 같다.


세안을 한 다음 몇 가지 문진과 함께 수술할 부위에 마킹을 하고 수술복으로 환복 한 후 잠시 대기하다가 수술실로 들어갔다. 수술실 중앙에 수술 베드가 덩그러니 누워 있고 그 주변으로 몇 가지 장비들이 놓여 있었다. 수술팀으로 보이는 두세 명이 도구들을 챙기고 있었다.


수술 베드에 눕고 잠시 후 의사가 들어왔다. 당연히 수술 장갑을 끼었겠지만 내 얼굴 부위를 촉진하는 그의 손에서 담배 냄새와 섞인 달콤한 향이 났다.     

     

그런데 예상치 못했던 일이 생겼다. 나는 처음부터 수면마취를 하고 수술을 진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야 내가 통증이나 불안을 모르니까. 하지만 수술 부위 부분 마취를 먼저 하고 수면마취를 진행한다고 했다. 즉, 이 말은 부분 마취할 때 통증은 그대로 느껴야 한다는 뜻이다.

     

치과에 가서 잇몸치료를 받을 때 치료보다 마취 주사가 더 아픈 것처럼 '따끔합니다.' 정도가 아니었다. 면도날을 피부 속으로 밀어 넣는 느낌이라고 할까? 내 얼굴을 붙들고 있어서 반발하지는 못했지만 그렇게 서너 번의 극강 통증과 함께 부분마취가 끝났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수술이 다 끝난 느낌이었다.     

     

그렇게 부분 마취 통증의 하울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이제 좀 주무실게요.'라는 말과 함께 그제야 내 팔뚝에 수면마취제를 투입했다. 건강검진에서 수면내시경 검사를 받을 때처럼 나는 열을 다 세지 못하고 잠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문득 부분 마취할 때처럼 심한 통증이 왔다. 이번에는 눈밑을 칼로 휘젓는 느낌이었다. 비몽사몽 중에 내가 몸을 움직였는지 '움직이지 마세요. 다쳐요!' 하는 다급한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다행히 그 외침을 끝으로 더 이상 다른 기억이 없다.

     

어떻게 생겼냐고 묻자 아내가 손거울을 보여 주었다. 맙소사! 눈은 퉁퉁 부어 단춧구멍 만했고 눈 밑에는 거즈와 밴드가 광범위하게 붙어 수술 부위를 가리고 있었다. 이렇게 됐구나. 낯선 이질감과 함께 이제 끝났다는 안도감이 동시에 들었다.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택시를 탔다. 퇴근 시간의 서울 시내 도로는 지금 내 얼굴에 붙어 있는 테이프처럼 차들로 가득했다.


매일 약을 먹고 연고를 바르고 재생테이프를 갈아 붙이고 찜질, 나중에는 찜질을 반복했다. 처음 일주일은 주먹으로 맞은 듯 묵직한 통증이 계속되었고 이후에는 통증보다는 거추장스럽고 불편했다. 씻지를 못해 머리는 산발이고 꾀죄죄하기가 이를 데가 없었다. 가끔씩 눈 주위에 피부 트러블이 일어나 느닷없이 좁쌀만 한 게 솟아오르기도 했다. 멀쩡한 피부를 그렇게 헤집어 놓았으니 안 그렇겠나 싶었다.


원하는 결과가 쉽게 쥐어지지 않는 것은 세상살이나 성형수술이나 마찬가지였다. 잠깐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것이 끝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너무나 단순한 자기 합리화였다.


배우 김수현 아버지로 더 알려진 가수 김충훈이 부른 '나이가 든다는 게 화가 나'라는 노래가 있다. 얼마 전 모 방송국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에서 별사랑이 불러 다시 알려진 곡이다.


"나이가 든다는 게 화가 나 지나간 시간들이 아쉬워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과 세상에 떠다니는 나


늙어 간다는 게 창피한 일도 아닌데

저 멀리 지는 석양과 닮아서 맘이 서글퍼....."


깊게 파인 주름살은 지나온 세월의 흔적이고 짊어졌던 삶의 무게이며, 흰머리는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열심히 살아온 인생에 보내는 박수 같은 것이라는 생각에 동의한다. 보이는 것은 중요하지 않으며, 늙은이가 아니라 어른으로 살면 된다는 뜻에도 공감한다.


하지만 나는 어느 날 문득 나이가 든다는 게 화가 났고, 아내의 적극적인 권유와 지원에 힘입어 생애 최초로 하안검 성형 및 눈밑 지방 재배치라는 수술을 감행(?)했다.


요즘 사람들이 나를 보면 대부분 이렇게 말한다. '어...... 뭐가 달라졌는데? 뭐지?' 스스로 생각해도 그렇다. 특히 선글라스 없이는 사진을 찍지 않는다는 원칙에서 벗어났다.


물론 다른 노화 현상이야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눈밑에 지방이 쌓여 우울하고 더 나이 들어 보이던 부분은 개선이 되었다. 최근 4kg 감량을 한 탓에 얼굴도 홀쭉해져서 성형 효과가 다소 상쇄되기는 했지만 기대 수준의 약 70% 정도는 만족한다.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어떤 면에서는 경이롭기까지 하다. 내 눈밑 지방은 어디로 갔을까? 이래서 성형 중독이 되는 사람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나는 또 다른 성형수술을 할 의향은 없다. 이 정도로 충분하고 감사하다. 결과적으로 그만큼 마음이 젊어졌고 자신감도 생겼다. 그러면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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