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는 아니지만 금요일 퇴근시간 맞춰 남편 회사 근처로 찾아가 밤 데이트를 하곤 합니다.
겨울만 되면 신세계백화점 본점과 그 일대 트리 장식이 불야성이라 12월 중순쯤 오래간만에 구경하고 왔어요. 이제 명소가 다 된 데다 금요일 밤이라 명당자리에 인파들이 얼마나 몰려있던지. 다들 휴대폰으로 동영상 찍느라고 난리더군요~.(나를 위해 찍어준 남편 포함) 인도를 막지 않도록 안전요원들이 곳곳에서 통제 중이라 그나마 인도를 다 막지 않고 몰려있을 수 있었을 듯.
남편 회사가 을지로, 충무로 인근이고 결혼 후 계속 같은 회사에 다녀서 밤 데이트 장소야 동네 마실하듯 명동 쏘다니는 게 주고 청계천을 오가고 어쩌다 남산, 어쩌다 종로 시내, 광화문 일대를 빨빨거리기도 하면서 10년 넘게 주변을 어슬렁 거리면서도 음식점도 가는 곳만 (전 어디가 좋으면 질리지도 않고 찾아가는 습성이 있습니다.) 가는 참 심심한 데이트입니다.
그래도 매주 하는 데이트는 아니라서, 늘 오가는 곳만 다니면서도 금요일 밤에 밖에서 만나는 건 참 설렙니다. 남편도 밤 데이트 있는 날은 더 멋있게 차려입고 나가고, 저도 오래간만에 신경 써서 (일부러 신경 쓰면 더 이상하다고 놀림받지만) 예쁘게 차려입고 익숙한 곳들을 쏘다니지요.
늘 같은 장소를 다니는 것이라 해도 매번 부딪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
계절마다 다른 얼굴의 거리들.
생각보다 자주 바뀌는 가게들과 거리의 풍경.
더구나 연말이라 화려해진 거리가 볼만하네요~.
거리를 돌아보고 예~전에 가봤던 종로 옥토버훼스트가 아직도 영업한다길래 들러서 소시지에 맥주 한잔하고요~. 국내 수제 맥주 전문점 1호라는데 2003년 생겨서 아직도 운영하네요. 참 옛스러운 공간. 여기 역사와 분위기 때문인지 나이대가 젊은 편은 아니고 간만에 소란스러운 곳에 가서 귀가 웽웽웽~ㅎㅎㅎ
어쩌다 특별한 기분의 데이트도 별것 없는 일상의 연속입니다. 감정은 극적으로 자주 움직여도 생활은 어쩜 이리 한결같이 잔잔바리인지. 그래도 가끔은 일상을 '쿵~'하고 흔드는 큰일이 없다는 것 자체가 감사할 때가 많습니다. 몇 번이나 통제 못할 큰일을 겪고 나면 그야말로 '일상의 평온'이 얼마나 소중한지 느끼게 되잖아요. 별것 아닌 일상의 소중함을 자주 느끼게 돼서 가끔은 '벌써 세상에 통달했나. 죽을 때가 되었나 보다' 쓸데없는 생각도 합니다.
상태가 안 좋았던 시기를 제외하면 매번 조금만 새로운 걸 봐도 '와~'하는 스타일이라 늘 어디 데리고 다닐 때 보따리 들려준다고,, 오늘 처음 상경한 시골 소녀 같다고요..ㅎㅎ
금요일 밤 데이트가 좀 슴슴했어서 다음날 '서울의 봄'을 급 예매해서 보고 오고,,
버스로 몇 정거장 거리에 CGV가 있어서 주말에 갑자기 볼까~? 하면 보고 오는 단순한 데이트.
수백 번은 다닌 영화관 옆 서점, 영화 보고 오는 길에 마트에서 장 봐오기(버스를 타야 되니 무겁게는 안 삽니다)
가끔은 마트를 30분 휘졌고도 살 거 없다고 그냥 달랑달랑 빈손으로 나오면서 돈 안 썼다 선방했다고 킬킬거리며 좋아하기도 하고. 주말에 먹을 거 없어서 끼니를 위해 주섬주섬 챙겨 입고 동네마트 가는 것도 데이트죠, 뭐~
수천번은 다닌 그 길들 위에 또 한 해가 저물어갑니다.
개인적으로 다사다난했다는 뻔한 말이 너무 들어맞는 23년을 보냅니다.
친한 동생부부와 집에서 조촐하게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내고, 내일도 연말도 평범하게 지나갈 거예요.
24년은 아무 근거 없이 대박 날 것 같다는 예감을 품어보는 올해의 마지막 주간.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도 23년 살아내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메리 크리스마스~!
24년엔 올해 보다 더 많이 행복해 지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