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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Re;Born! 2 21화

불편한 진실! 상사의 언어를 아는가?

by 이내화

중견사원으로 근무하던 시절이다. 여기서 중견사원이라 함은 대리를 말한다. 대개 조직 내에서 대리라는 직급은 이사 대리, 사장 대리, 과장 대리 뭐든지 대리를 하는 것으로 권한은 없지만 회사에선 가장 할 일이 많은 이들이다. 필자 역시 할 일이 많은 대리였다. 당시 HRD 업무를 맡은 터라 신입사원 교육체계와 교육 기획업무를 하고 있었다.

당시 최고 경영자의 특명에 따라 신입사원 교육을 <3개월> 간 진행하라는 주문을 받았다. 당시로선 대기업들이 신입사원 입문교육은 대개 <1주일> 정도 하는 게 다반사였다. 그런데 느닷없이 3개월 동안 하라고 하니 참 막막하기도 하고 짜증도 났다. 국내 기업 중 신입사원 교육을 3개월 동안 실시한 샘플 모델도 없어서 스스로 3개월짜리 교육기획안 만들어야만 하는 처지에 내몰린 것이다. 그렇다 보니 야근은 밥 먹듯이 해야 하고 늘 긴장의 연속에서 지내야만 했다. 이렇게 한 6개월 동난 전력투구한 끝에 대망의 <신입사원 교육 기획안>을 만들어 냈다.

그런데 결재를 받는 과정에서 해프닝이 발생했다. 이 해프닝은 흔히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대 사건(?)과 같은 것이었다. 그 당시 결재 과정은 담당(또는 대리)-> 과장 -> 부장 -> 상무 -> 사장 -> 회장이라는 6 단계를 밟아야 만 했다. 물론 필자로 이 과정을 하나둘씩 밟아 올라가는 것이었다. 재미있는 건 1단계인 과장 사인을 받고 2단계인 부장 사인을 받는 데서 큰(?)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1차적으로 과장 결재를 받고 의기양양하게 부장 결재를 받고 나니 너무 기분이 날아갈 듯했다.

그러나 의외의 일리 터졌다. 결재를 방금 한 부장이 “이 대리, 이 기획안을 말이야! 포스트잇 1장에 요약 좀 해갖고 와라!"라는 너무 기가 막힌 오다가 떨어진 것이었다. 필자는 무슨 개 같은 소리야! 약 60페이지에 달하는 3개월짜리 기획안을 손바닥만 한 포스트잇에 요약정리를 해오라니... 정말이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결재 판을 받아 들고 자리로 돌아오면서 이렇게 넋두리를 했다.”“아 18! 더 이상 못해먹겠다! 18 18^^*”

엄살을 부르는 게 아니라 생각해 보아라. a4용지 60장에 달하는 내용을 무슨 수로 손바닥만 한 종이에 줄일 수 있겠는가? 필자는 연신 짜증을 내면서 담배를 피워댔다. 무슨 방도가 서지 않기도 하지만 6개월 동안 야근을 하면서 만든 <기안서>가 원망스럽기도 했고, 그것을 줄이라는 게 너무 얼토당토치도 않고 억울한 생각마저 들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던 담당 과장이 이렇게 말을 이었다! “이 대리! 왜 그래!” “무슨 일 있냐!” 이 말에 큰 소리로 대꾸를 했다. “이 게 말이 됩니까? 라며 핏대를 올렸다. 이런 발악에 담담 과장은 픽 웃으면서 이렇게 말을 했다! “이 대리! 그러니까 당신이 대리야! 지금 부장님이 요약해오라는 건 이런 말이다. 말하자면 내용이 너무 방대하니까 6하 원칙으로 메모해 달라는 것이야! 이런 멍텅구리! ”

이런 소리를 듣고 한참 동안 멍하니 창밖만 쳐다보고 있었다. 너무 창피하기도 하고 “아하! 그렇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필자는 아주 많은 것을 배웠다. 당시로선 대리라는 직급은 과장을 상대하지 한참 어른 격인 부장을 대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이렇다 보니 필자는 상사인 <부장의 언어> 즉 <상사의 언어>를 이해를 하는 폭이 아주 작았던 것이었다.

그런데 더욱더 재미있는 건 그 뒤에 계속적으로 일어났다. 당시 “왜 부장님은 포스트잇인가?”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다. 부장은 다음 단계인 상무 결재를 득하고 사장 결재를 받는 자리에 필자를 대동시켰다. 왜냐하면 워낙 보고 내용이 많은 터라 혹시 몰라서 담당자를 대동한 것이었다. 사장실에 처음 들어선 필자는 부장과 최고 경영자의 대담(?)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과정을 완전히 습득하는 리얼 학습을 하게 되었다. 그 광경을 좀 생생하게 묘사를 하겠다.

부장: 사장님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사장: 그래 별일 없제!(경상도 회사라서 당시 이 말이 유행)

부장: 네^^* 31기 대졸신입사원 교육안을 갖고 왔습니다.

사장: 앉아!

이 말이 있을 뒤 이들은 본질 즉 대졸신입사원 기획안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바둑이며, 골프며, 주식이며 등등 세상사에 대한 이야기를 무려 30분이나 했다. 언뜻 보아서는 서로가 친구인 것처럼 아주 친하게 대화를 했던 것이다. 이렇게 이들이 대담을 나눌 동안 필자는 소파 귀퉁이 히프를 슬쩍 거친 채로 숨을 죽이고 있었다. 이들은 이야기를 마친 뒤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사장: 그래! 함 보자!

부장: 네 사장님! 일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이번 기수부터는 회장님의 특별 지시로 교육기간이 3개월이나 됩니다.

그래서 예산이 많이 듭니다. (이 순간 부장의 손엔 필자가 건네준 문제의 포스트잇이 쥐여 있었다. 그리고 부장은 그것만을 읽었다. 아마 사전에 이 건에 대한 서로 조 율이 있었던 모양이고 부장이 메모를 해간 건 사장이 그런 식의 보고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사장: 그래 나도 이야기를 들었네! 기간이 기니까? 좀 단속을 잘하게 (이렇게 사장은 필자가 6개월 동안 만든 기획안은 들여다보지 않고 그냥 사인을 하는 것이었다. 그때 알았다. 높은 사람은 기획안을 안 보는구나!)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다음 두 가지 때문이다. ●최종 결재를 하는 사람은 기획안은 안 본다. ●그 사람은 바쁜 사람이니까 그 사람 위주로 기획안을 만들어야 한다. 말하자면 <보고 받는 자를 위한 보고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보고 받는 자 즉 상사의 언어> 보고서나 기획서 담지 않으면 결재를 받기란 어렵다는 이야기다. 물론 당시 그 부장은 그 해 상무로 승진을 한다. 젊은 직장인들이 보기엔 너무 <불편한 진실> 같지만 그 게 현실이다.

이런 상황을 종합적으로 요약해서 말하면 이렇다. <필자의 상사인 부장은 자신의 상사 즉 사장과 잦은 미팅을 통해 사장이 원하는 보고의 맥을 잘 짚고, 그가 원하는 것을 집중적으로 보고한 셈이다.> 이것을 쉽게 말하면 부장은 사장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중간보고>를 하면서 <보고의 맥>을 찾아낸 것이다. 일터에서 상사의 결재를 득하지는 데 실패를 자주 하는 이들은 바로 이런 맥을 못 찾은 이들이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최고의 전략은 우리 소비자가 뭘 원하는지 최대한 잘 파악하는 거다. 전략은 첫째, 빵류와 커피를 최대한 절묘하게 결합시키는 거다. 둘째, 아주 친근하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가격 대비 만족할 만한 가치를 제공할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지금도 소비자에 초점을 맞추고 열심히 연구하고 있다.>(중앙일보 발췌)

나이절 트래비스 던킨 그룹 CEO이야기다.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는 것이 기업의 성공에도 영향을 끼친다. 기업이 소비자를 생각하듯이 상대가 무엇을 원할까, 뭘 주면 좋아할까를 생각해 보아라! 당신이 나아갈 길도 보일 것이다.

이제 당신의 보고 스타일을 생각해 보아라! 왜 결재가 나지 않는 것일까? 당신은 마이동풍(馬耳東風)식으로 <상사의 언어>가 아닌 <당신의 언어>로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비즈니스를 한 마디로 말하면 설득(說得) 커뮤니케이션이다. 설득(說得)이란 설명해거 득이 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당신의 언어로 말하면 설득(說得)이 설독(說毒) 이 된다는 걸 알아야 한다.

당장 불편하지만 <상사의 언어>를 배우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안 배우면 당신에게 승진의 사다리는 놓이질 않는다. <당신만의 생존>을 위한 서바이벌 키트(YouVival Kit)>를 입어라!


조직엔 불편한 진실도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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