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들에게 1인 기업가 人큐베이팅 작업을 멘토링해 주고 있다. 그간 적지 않는 멘티를 육성해서 1인 기업가로 배출한 바 있다. 이 작업을 처음 시작했을 때 안 사람이 쌍수를 들고 말렸다. “사람을 키우느니 차라리 개를 키우는 게 낳다.” 라는 말을 자주 하면서 반대를 했다. 아니나 다를까 사람을 키우는 일은 참 힘든 일이었다. 스승과 제자라는 관점에서 보더라고 각자 입장이 있고 얻고자 하는 것도 있기 때문이다. 이들을 양육하면서 마음 상처도 더러 입었고 상처를 주고 간 제자들 역시 그 건 매한가지 일 것이다.
그렇다고 힘든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좋은 성과를 내서 스승에게 그 공을 돌리는 이들도 많았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의 업을 갖고 이 세상에서 잘 자리를 잡아가는 것을 보면 스스로 대견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을 육성하면서 재미있는 것을 배웠다. 사람들의 유형이다. 이 유형은 성과에 따라 대개 네 가지로 압축이 된다. 변비형, 설사형, 쾌변형, 숙변형 이다.
첫째, <쾌변형>이다. 무엇이든지 가르친 대로 하고 바로바로 성과를 낸다. 이런 이들을 만나면 복이다. 그만큼 손도 덜 가고 착착 알아서 하니까 맘이 편하다.
둘째, <숙변형>이다. 단어 그 자체다. 어지간해서 아웃풋이 안 나온다. 늘 생각만 고민만 하면서 시간만 축내는 이들이다. 이들을 만나면 속된 말로 죽음(?)이다. 성과가 나오질 않으니까 늘 이들을 끼고 살아야 한다. 아울러 걱정이 태산처럼 쌓인다.
셋째, <설사형>이다. 가르치는 대로 자기화를 잘 하지 못한다. 말하자면 소화를 못하고 먹은 음식을 다 토해내는 이들이다. 체질이 다르다고나 할까 이들이 설사를 하면 필자가 다 치워야 한다. 여러 가지로 힘들고 처음부터 체질 바꾸는 일을 해야 한다.
넷째, <변비형>이다. 스승의 의도대로 아웃풋이 나오는 제법 시간이 걸린다. 사람도 좋고 다 좋은데 행동과 실천이 더 진 이들이다. 아마 자신감이 없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이들에겐 변비에 좋은 약을 주는 데 바로 기다림이다. 물론 시간이 걸리지만 어렵게 만들어 낸다.
이쯤 해서 잘 알려진 <세 석공이야기>를 다시 한번 소개하고자 한다. 한 성직자가 쓴 칼럼을 통해 정리해본다.
< 수많은 석공들이 분주하게 돌을 다듬고 있는 현장에 유난히 눈에 띄는 세 사람이 있다. 다른 석공들과는 달리 어찌나 몸놀림이 빠르고 유연한지 일하는 모습만으로도 구경거리가 될 만하다. 한 젊은이가 그들에게 다가가 말을 건넨다.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나요?” 셋 중 한 사람이 귀찮은 듯 대답한다. “겨우 일당 3리라를 받기 위해 이렇게 힘든 일을 하고 있소.” 또 한 사람의 석공은 이마에 땀을 훔치며 대답한다. “보시다시피 돌을 쌓고 있습니다. 제가 해야 하는 일은 잘 다듬은 돌들을 튼튼하게 쌓는 것이지요.”
나머지 한 사람의 대답이 걸작이다.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제가 다듬는 이 돌들이 모여 머지않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회당이 이 마을에 생긴다는 것 아닙니까.” 한낱 석공이 마치 건축주라도 되는 듯 자랑스럽게 대답한다. >
아마 이 정도까지는 더러 들어서 보아서 아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석공 3명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이 글의 필자는 다음과 같이 후편을 소개한다.
< 30년의 세월이 흐른 후, 그 현장을 다시 찾게 된 그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교회당을 돌아보며 돌을 다듬던 세 사람의 석공들이 눈에 밟힌다. 수소문 끝에 그들에 관한 소식을 뒤늦게 알게 된다. 하루 일당에 불만을 품은 채 마지못해 일하던 석공은 이내 돌 다듬는 일을 그만두고 행방을 감춘 지 오래고, 또 한 사람의 석공은 솜씨 좋은 성실한 석공이 되어 안정된 생활을 영위하고 있으며, 마지막 한 사람의 석공은 훌륭한 건축가로 성공해 인근 도시에서 장엄한 교회당을 건축 중에 있다고 한다. 마음가짐대로 필연을 만든다. “이 돌들이 모여 가장 아름다운 교회당이 생긴다는 것 아닙니까” 하며 의욕에 찬 그의 일하는 모습과 마음가짐에 가슴 뭉클하다.>
그는 이 사례를 두고 이렇게 정리한다.
< 예로부터 지금까지 최고가 되는 길이 있다. 스승의 집으로 들어가 한 가족이 되어 집안일을 돕기도 하며 무시로 배우는 것이다. 전래의 이 교육제도는 스승의 집을 왕래하며 정해진 시간만 가르침을 받는 제자들과는 비교될 수 없는 특별한 교과 과정이다.
그것은 현실에 집착하는 의식세계에서 억지로 배우려 해도 잘 안 되는 것을 무의식의 상상세계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익혀나가는 중세시대의 도제 제도와 같은 가르침의 하나이다. 도제 교육의 본래 목적은 텍스트보다 보이지 않는 스승의 정신세계의 승계를 우선시한다. 스승의 정신세계를 엿보며 스스로 잠재된 내면을 강화하는 것으로 자신이 다듬는 돌들을 보며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교회당을 미리 보는 눈을 여는 것이다.> (국민일보 발췌)
읽는 이에 따라 다르겠지만 참 공감이 가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누군가를 육성하고 양육하는 입장에서 보면 더더욱 실감이 든다. 늘 이야기하는 것 중 인생은 ‘셀프’지 ‘헬프’가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이 터를 닦고 씨를 뿌리고 가꾸고 김을 매고 물을 주고 등등 일련의 과정이다.
이 과정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가짐이다. 그리고 인생은 <나> 라는 작품을 부단히 만들어가는 것이다. Made in you 즉 당신이 만드는 일이다. 그 게 마음가짐이 안 되어 있다면 애시당초 시작도 하지 말아야 한다. 당신은 무엇을 만들고 싶은가?
당신은 지금 무엇을 만들어 가고 있는가?
⟹내 인생 걸작(傑作) 만들기
▪ My Wonderful Story 만들기 :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나 기뻤던 사진을 하나 구해 아래에 붙여라!
▪ My Vision Board 만들기: 당신의 비전을 A4 용지에 써보아라. 어떤 형식에 구애 받지 말고 워딩해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