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크렘베어 Jan 26. 2023

태산이 쥐를 낳은 격

La montagne accouche d’une souris

태산이 쥐를 낳은 격이다(C’est la montagne qui accouche d’une souris).


위 속담은 거창한 계획과 기대 속에 탄생한 결과물이 매우 보잘것없다는 뜻으로 쓰인다. 꽤나 자조적인 표현으로, 영어 속담으로도 ‘The mountain gave birth to a mouse’라고 똑같이 쓴다.


속담은 프랑스의 라퐁텐 우화집(1668-94)에 수록된 한 우화에서 비롯되었다. 라퐁텐 우화집은 17세기 작가 라 퐁텐(Jean de La Fontaine, 1621-1695)이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우화들을 시로 다듬어 엮은 책이니, 그가 참고한 고대 그리스-로마 우화, 즉 이솝 우화 쪽이 더 속담의 기원이라 할 수도 있다.


1668년 발간된 라퐁텐 우화집 초판 속표지(Gallica).


태산의 해산(La montagne qui accouche)

산고를 겪는 태산
크게 소리지르니
소리에 몰려든 이들이
의심의 여지 없이
'파리(Paris)보다 큰 도시를 낳으리라.'
그러나 낳은 것은 쥐 한 마리.

Une montagne en mal d'enfant,
Jetait une clameur si haute,
Que chacun, au bruit accourant,
Crut qu’elle accoucherait, sans faute,
D’une cité plus grosse que Paris.
Elle accoucha d'une souris.
- 장 드 라퐁텐, 라퐁텐 우화집(1668), 제5권, 10. La montagne qui accouche.


라퐁텐 5권에 수록된 위 우화가 속담 그 자체를 가리키고 있다. 저자는 위 우화가 '거짓을 이야기하고 있으나 그 의미는 진실된 것(Dont le récit est menteur, Et le sens est véritable)'이라 덧붙인다.


잠시 이솝 우화 이야기를 해 보자. 그리스는 신화도 엄청난데 우화도 꽤나 방대하다.

동물을 인간에 빗대어 풍자하는 이야기인 우화는 기원전 6세기 즈음에 살았다는 전설의 이야기꾼 아이소포스, 즉 이솝이 남긴 이솝 우화가 가장 유명하다. 이솝 자신이 쓴 그리스어 원전은 남아 있지 않으며 사람들에게 구전으로 전해졌다고 한다. 기원전 4세기에 팔레론의 데메트리오스(Demetrius of Phalerum)가 라틴어 이솝 우화집을 편찬했으나 이것 또한 소실되었다. 다행히 BC 1세기 파이드로스(Phaedrus)가 엮은 라틴어 이솝 우화집과 AD 2세기의 그리스인 바브리오스(Babrius)가 쓴 그리스어 텍스트가 남아 있어 이것들이 가장 오래된 이솝 우화 레퍼런스로 알려져 있다. 그 밖에도 호라티우스나 플라톤 등 고대인들의 저작에서도 우화가 가끔 짧게 인용되어 전해진다. 그러던 이솝 우화가 르네상스 때부터 각국의 언어로 각색된 뒤 지금까지도 널리 읽히게 된 것이다.


다시 속담으로 돌아가, 줄곧 간과하고 있었던 한 가지 물음을 던져 보자.

어떻게 산이 쥐를 낳을 수 있냐!


사실 두루미가 병에 부리를 넣어 물을 마시는 세계관이 이솝 우화인데 산이 쥐 낳는 것쯤 대수일까? 그러나 언어학자인 하워드 제이콥슨은 번역 오류를 의심한다.

산들이 진통을 겪고, 가소로운 쥐를 낳으리라. (?)
parturient montes, nascetur ridiculus mus.
- 호라티우스, <시학(Arts Poetica)> 139행

위처럼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BC65-BC8)는 산이 쥐를 낳았다는 이솝 우화를 거의 최초로 언급한 사람이며, 위 문장은 호라티우스의 가장 유명한 라틴어 문장 중 하나다.

여기서 문제는 문장에 오류가 있다는 것이다. 그가 산을 단수가 아닌 복수명사인 montes로, 또한 목적어격으로 쓰고 있어 주격이 애매해진다. 따라서 산이 진통을 겪는 게 아니라 ‘산처럼 큰 진통을 겪고’라고 해석할 수도 있게 된다. 그리고 이 우화는 호라티우스의 문장을 참고한 파이드로스의 우화집을 참고한 피에르 피투의 판본을 참고한 라퐁텐을 통해 산이 쥐 낳는 이야기로 굳혀 다….


어느 것이 맞는진 모르지만, 뭐 이천 년 전 사람들에게 물어볼 길도 없다.



참고자료 :


La Fontaine. (1668) Fables choisies de La Fontaine.

Jacobson, H. (2007). Horace “AP” 139: “parturient montes, nascetur ridiculus mus.” Museum Helveticum, 64(1), 59–61. http://www.jstor.org/stable/44079065 

Perry, B. E. (1962). Demetrius of Phalerum and the Aesopic Fables. Transactions and Proceedings of the American Philological Association, 93, 287–346. https://doi.org/10.2307/283766 

매거진의 이전글 구두장이는 가장 안 좋은 신발을 신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