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크레피오 Jul 15. 2020

또 다른 시선

Be Here Now


과거와 현재, 미래가 있다. 그것 말고 우리가 아는 다른 시간은 없다. 그리고 인간은 항상 현재에만 존재한다. 그러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럴 수 밖에 없다. 과거나 미래는 인간이 만들어 낸 개념이고 실상 존재하는 것은 현재뿐이니 살아 있는 인간이라면 언제나 현재에 존재할 수 밖에... 

그런데 왜 ‘지금/여기에 존재하라’느니 ‘현존(現存)하라’와 같은 말들이 생겨났을까? 아무리 용을 써도 우리는 늘 현재라는 시간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는데 말이다. 

그것은 아마 인간의 마음 때문일 것이다. 물리적 한계를 가진 몸과 달리 마음은 기억력과 상상력을 이용하여 과거와 미래를 넘나들 수 있다. 이로 인해 몸과 마음이 다른 시간에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마다 인간은 ‘현재‘라는 소중한 시간을 놓치고 만다. 보통사람들이 일상에서 흔히 겪는 현상이다. 

더군다나 과거에 있었던 부정적인 사건과 경험으로 인해 마음이 후회와 분노라는 감정을 일으키고 미래의 불확실한 삶과 목표로 인해 두려움과 욕망이라는 감정을 일으킬 때는 더욱 ‘현재’를 쉽게 잃어 버리게 된다. 그러고 싶지 않은데도 실수에 대한 후회, 내가 입은 피해에 대한 분노가 끊임 없이 밀려온다. 이미 엎어진 물인 것을 아는데도 감정과 생각은 한번 화살을 맞은 상처에 두 번, 세 번  끊임 없이 화살을 쏜다. 그뿐이랴, 거대한 불확실성에 둘러싸인 미래는 인간을 더욱 안달 나게 한다. ‘언제쯤 합격했다는 전화가 올까?’, ‘ 나에게는 영원히 기회가 오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들은 두려움과 욕망을 곁들이며 마음 속에서 끊임 없이 시나리오를 썼다가 지우곤 한다. 


마음이 몸과 함께 오롯이 ‘지금/여기‘ 에 머물지 않을 때, 우리는 우리에게 유일하게 주어진 ‘현재‘라는 시간을 잃어 버린다. 그렇게 잃어버린 현재들은 또 다시 후회스런 과거가 되어 마음을 더욱 오래 붙잡아 둔다. 그러므로 ‘현존(現存)하라‘는 말은 쉽게 해석하면 ‘너의 몸이 있는 시간과 장소에 항상 너의 마음도 있게 하라’는 의미다.   

몸이 있는 곳에 마음을 붙잡아 두려면 감각을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감정이나 생각과 달리 감각은 몸을 떠나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마음이 몸을 떠나 과거나 미래에 붙잡혀 있을 때 감각에 집중하면 다시 마음을 데려올 수 있다. 현존하면 우리는 가장 소중한 시간인 ‘살아 있는 매 순간순간’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 

왜 그래야 하느냐고? 행복이 바로 그 시간이라는 파도의 물마루인 ‘매 순간순간‘ 속에서만 반짝거리기 때문이다.  과거나 미래를 아무리 헤집고 다녀도 거기에서는 행복을 찾을 수 없다. 

얼마나 더 시행착오를 겪어야 깨달을 것인가, 이만하면 충분하다. 오직 몸과 마음을 지금/여기에 정렬시킬 때 만이 우리는 행복이라는 작고 투명한 과실을 따 먹을 수 있다. 

그대, 지금/여기에 있으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