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돈년두보에게
허름한 시인, 공원에 발을 내딛는다. 뭔가 음침한 분위기로 공원을 휘 둘러본다. 공원에 놓인 의자에 자신이 쓰고 온 모자를 벗어 올려놓고는 찬찬히 객석을 살핀다. 발걸음을 옮기며.
보들레르:에.. 여기가 그 모항에서 왔다는 머리가 돈년이 있는 곳이 맞소? (더 큰 목소리로) 여기가 맨날 술이나 처먹고 시나 읊어댄다는 그 두보란 놈이 있는 곳이 맞냔 말이오! (더 큰 목소리로) 그러니까 여기가 쓰레기 더미나 주워 와서는 그림이랍시고 이상한 점이나 찍어대는 그 칠쟁이가 있는 곳이 맞냔 말이오!! 아, 칠쟁이는 쏘리.
(누구요?)
보들레르: 아, 통성명을 해야지.에.. 내 소개를 하자면. 음음. 우선 시나 한 수 읊겠소. 이 시로 내 소개를 갈음하지.
취하라
항상 취하라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만이
그대의 어깨를 짓누르고
그대의 허리를 휘게 하는
무서운 시간의 중압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끊임없이 취하라
그러나 무엇에?
술이든, 시든, 선이든
그대가 좋아하는 것에 다만 취하라
그러다 때로 궁전의 계단이나 개울가 푸른 잔디 위에서
또는 삭막하고 고독한 그대의 방에서 깨어나 문득 취기가 사라졌다면
물어보라
바람에게, 파도에게, 별에게, 새에게, 시계에게
지나가는 모든 것, 신음하는 모든 것, 구르는 모든 것, 노래하는 모든 것, 말하는 모든 것에 물어보라
지금이 몇 시냐고
그러면 바람은, 별은, 새는, 시계는 대답하리라
“지금은 취할 시간이다!
시간의 학대를 받는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취하라, 끊임없이 취하라!
술이든, 시든, 선이든 그대가 좋아하는 대로..”
보들레르 지음. 헤헤.
내 소개는 이만하면 됐으니 우리 게임이나 한 판 합시다. (초를 꺼내더니 불을 붙인다. 초를 휘 둘러 보여주고는 후~하고 불어 끈다) 쿠궁! 자, 이제 당신들의 발밑은 낭떠러지가 되었소. 돌아갈 수 없게 됐단 말이지. 하하하. 워워-무서워하지 마시오. 돌아갈 방법은 있소. 당신들이 이 게임에서 이길 수만 있다면. 자, 그럼 이 게임의 룰을 설명하겠소. 간단하오! 이야기의 값은 이야기로 갚는다. 이야기의 값은 이야기로 갚는 것, 그뿐이요. 당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만 한다면 우린 모두 집으로 돌아갈 수 있소. 사실 이미 내가 시를 한 수 읊었으니 당신들에게 당장 그 값을 물어야 하나 그건 내가 적선한 셈 치겠소. 허나 지금부터는 봐주지 않겠소!(초를 하나 더 꺼내 불을 붙이고는 한편에 둔다.)
내 이야기를 하나 하겠소. 내가 여기에 온 이유에 대해서 말이오. (뜸을 들이다, 결심한 듯) 내 모항을 다녀온 적이 있소. 아아-그때는 아니오. 그때는 나도 잘 몰랐지. 그 일이 있고 나서야 풍문으로 들었을 뿐이니... 아무튼 나는 이야기를 채집하고 다니는 사람인지라 큰 사건이 터진 그곳을 찾아가지 않을 수가 없었단 말이오. 내 모항에 들어섰을 때, 그 일이 있고도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비규환이더이다. 화약이 타는 냄새.. 아이들의 울음소리.. 아녀자의 절규 소리.. 곳곳에서 배어 나오는 피비린내 하며.. 젖가슴이 잘린 아녀자와 그 아녀자의 치맛자락을 쥐고 젖을 보채는 아이의 모습까지. 하필이면, 아 하필이면 그녀와 눈이 마주쳐가지고는. 사실 그녀가 나를 본 건지 그저 내 쪽에 시선이 있었던 건지 하..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소. 아무튼 난 이야기고 나발이고 그저 그곳을 도망치듯 나와 버린 거요. 그런데 문제는 지금부터요! 잠을 잘 수가 없소! 잠을 잘 수가!! 눈만 감으면 눈만 감으면 그 젖가슴이 채 잘리지도 않아 대롱대롱 매달린 그녀가 나를 쫓아오오! 그녀가 밤마다 내 목을 졸라 견딜 수가 없소!! (순간 존다)(순간 깬다) 그래서 이렇게 매일 쪽잠을 자오. 살려주시오!! 살려주시오!!! 그녀를 좀 보내주시오!!!! 제발...!!! 당신들의 이야기에 답이 있소. 그럴 것이오!! 반드시!! 당신들이 이야기하지 않으면 난 당신들을 보내주지 않겠소! 난 더 무시무시한 요술도 부리오. 그러니 당신들의 이야기, 당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시오!!!
내 이야기의 값을 치를 사람! 누구부터 나오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