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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우 Apr 26. 2023

회의 시간을 돈으로 환산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마라

세계적 학술지에서 찾은 직장생활 꿀팁

최근 있었던 모기업 임원 코칭의 한 장면이다.


"박사님, 사장님께서도 우리 회사의 급여 수준이 경쟁력이 있는 수준으로 향상되었으니, 외적 동기가 아닌 내적 동기로 구성원을 리딩하라고 강조하시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상무님 스스로 외적 동기보다 내적 동기를 우선시하는 말과 행동, 태도를 보이는 것이 좋습니다. 내적 동기를 중시하는 리더의 태도가 구성원들의 외적 동기를 약화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지금부터 설명드리겠습니다"





직무 동기를 설명하는 수많은 이론들이 있지만 비교적 잘 알려진 설명 중 하나는 동기의 소재에 따른 구분이다. 조직 행동론에서는 동기의 소재에 따라 외재적 동기와 내재적 동기로 구분한다. 외재적 동기는 당근과 채찍 즉 보상과 처벌이다. 내재적 동기는 보상이나 처벌 같은 외적인 요소가 아닌 내면의 의미와 재미에 집중한다.


동기에 관한 세계 최고의 저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대니얼 핑크(Daniel Pink)는 그의 저서 '드라이브(Drive)'에서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행동을 위해서는 외적 보상은 중요하지 않으며 오히려 외적 보상으로 인해 자발적 행위가 손상된다고 주장했다. 또 한편으로, 많은 경영학자들은 헌신, 조직 몰입, 창의성, 직무 열의, 직무 의미 창조 등에 있어 내적 동기가 훨씬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조직의 장기적 성장과 성과를 위해서도 내적 동기가 외적 동기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비전을 내재화하고, 일하는 목적이나 의미를 상기시키려는 수많은 슬로건, 교육, 행사들이 우리 조직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내적 보상이 외적 보상보다 항상 중요할까?


내적 보상은 중요하지만 외적 보상은 중요하지 않은가? 하버드대학교 경영대학원의 리처드 월턴(Richard E. Walton)은 두 종류의 보상이 서로 다른 장면에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조직에서 비용 절감이나 효율성 개선 등을 강조할 때는 외적 보상이 중요하지만 구성원의 역량 개발이나 신뢰 등이 강조되는 문화에서는 외적 보상보다 내적 보상 기반의 인적 자원 관리 체계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외적 보상과 내적 보상은 양자 택일의 상태가 아니다. 사람들은 외적 보상과 내적 보상을 동시에 추구한다.


심리학으로 외적 보상과 내적 보상을 해석하자면 전경과 배경의 관계에 빗대어 설명할 수 있다.

네덜란드 출신의 그래픽 아티스트인 마우리츠 코르넬리스 에스허르(Maurits Cornelis Escher)의 판화 작품들을 떠올리면 쉽다. 그는 ‘서클 리미트(Circle Limit)’라는 제목으로 여러 개의 목판화 작품을 발표했는데, 1960년에 발표한 네 번째 작품 ‘서클 리미트 4’에는 ‘천국과 지옥’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출처: https://www.wikiart.org/en/m-c-escher/circle-limit-iv


그림의 밝은 면에 주목하면 천사의 모습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하지만 배경인 어두운 면에 주목하는 순간, 밝은 면은 배경으로 퇴장하고 악마들로 가득 찬 그림을 보게 된다.


구성원들이 외적 보상과 내적 보상 중 어디에 집중하게 만들지는 조직 내 제도나 문화, 리더십에 달려 있다. 내적 보상을 밝은 면으로, 외적 보상을 어두운 면으로 가정했을 때, 내적 보상인 밝은 면에 집중하면 조직은 천사로 가득 찬 그림이 되고, 외적 보상인 어두운 면을 바라보는 순간 악마가 지배하는 조직이 되는 것이다.


외적 보상과 내적 보상을 전경과 배경으로 이해하는 것은 전통적인 외적, 내적 보상의 분류 체계마저 무너뜨릴 수 있다.


돈과 같은 금전적 보상은 전형적인 외적 보상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보기에 따라 내적 보상이 될 수도 있다. 만약 연봉 수준이 자신의 성취감을 나타내는 지표라고 생각한다면 돈은 단순한 외적 보상이 아니다. 성취감이나 유능감의 또 다른 표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투자은행처럼 금전적 보상 같은 외적 보상이 지배적으로 작동하는 금융 업계에서도 돈은 완벽한 외적 보상이 아니다. 이들에게 돈은 지위나 성취에 대한 신호이자 유능감을 나타내는 기호로 뇌 속 깊이 인식된다.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의 직장인들에게 연봉은 사회적 성취의 상징으로 치환되기 쉽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직장인들은 서구의 직장인들에 비해 급여를 내적 동기 요인으로 자연스럽게 연계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처럼 우리 내면은 복잡한 인식과 해석의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내적 보상이나 외적 보상과 같은 단순한 이분법적 분류로는 조직 내 다양한 동기에 관해 이해할 수 없다.


실제, 무엇이 외적 보상이고 무엇이 내적 보상인지를 구분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우리가 전경에 주목하면 천사가, 배경에 주목하면 악마가 보이는 심리적 기제가 동기 유발 과정에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일을 하면서 외적 보상과 내적 보상은 에스허르의 작품에서 우리가 주목하는 것과 유사하다.


외적 보상은 노동자들이 돈이 우선시되는 환경일 때 즉, 연봉으로만 모든 것이 평가되고 금전적으로 불공정한 대우를 받는다고 인식할 때 전경으로 대두된다. 그 밖의 경우에는 외적 보상은 배경으로 후퇴하고, 일상적인 업무에서는 내적 보상이 전경으로 등장한다.


한때, 조직 내 모든 활동을 금전으로 환산하는 방식으로 구성원들에게 현재 업무와 시간의 가치를 주지시키는 경영 기법이 유행했다. 예를 들면, 당신이 만약 회의에 참석한다면 참석한 사람들의 연봉을 다시 시간 단위로 환산해서 참여한 시간의 비용만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결과가 나와야 함을 상기한 후 회의를 시작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ROI(Return On Investment)가 분명한 관리 방안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회의를 돈으로 환산하는 것은 회의를 더욱 경쟁적이고 비판적으로 운영하게 만들 것이다. 참석한 사람들 모두가 순식간에 자신의 외적 동기에 주목하게 되기 때문이다.


회의 시간을 돈으로 환산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마라. 내적 보상이 더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는 집단 지성이나 창의성을 추구해야 할 회의인 경우에 특히 그렇다. 내적 보상의 가치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회의에서 회의의 비용을 환산해 외적 보상에만 주목하게 한다면 결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


미국 해군대학원의 케네스 토마스(Kenneth Thomas) 교수는 좋은 노동자를 확보하기 위해 외적 보상이 전경으로 대두되지 않도록 하는 조직 공정성을 높여야 하고, 내적 보상을 체계적으로 증진시키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조직 내 직무 동기를 평생 연구해 온 토마스 교수는 데시(Deci)와 라이언(Ryan)의 자기결정성이론(self determination theory)을 보완하여 네 가지 내적 동기 요소를 정리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의미, 자율성, 역량, 성과에 대한 욕구를 타고 난다. 아무 의미 없이 시키는 일만 하는데, 능력은 향상되지 않고 자신이 수행한 일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가 일을 할 때, 언제 좋은 느낌을 받는가? 자신이 뭔가 가치 있는 일을 한다고 느꼈거나(의미), 자신의 재량대로 일을 할 수 있었거나(자율성), 어떤 활동을 특히 잘 해냈거나(역량), 실제로 일이 진척되고 있음을 확인할 때다(성과). 일에 있어 이러한 긍정적인 느낌을 갖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보상 체계 설계가 필요하다.


일에 아무런 가치를 못 느끼는 구성원에게는 내적 동기를 강조하기 보다는 노력과 성과에 따른 합리적인 보상을 제시하며 일을 시작하게 해야 한다. 그러다 역량이 향상돼 충분한 유능감을 경험하게 되는 시기엔, 외적 동기는 배경으로, 내적 동기는 전경으로 올라 올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구성원 스스로 일이 주는 의미, 자율성, 역량, 성과를 성찰하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내적 보상이 전경으로 대두되게 만드는 기회가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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