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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우 Apr 28. 2023

사랑의 유통기한은 얼마일까?

"만약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면, 나의 사랑은 만년으로 하고 싶다"


영화 "중경삼림"에서 금성무가 임청하의 메시지를 듣고 혼잣말로 읊조리던 대사다. 이 대사가 너무 멋져서 영화를 본 사람들은 이 장면을 결코 잊지 못한다. 그런데, 사실 이 대사는 우리나라 사람들만 이렇게 알고 있다. 다름 아닌, 오역 덕분이다. 원래 대사는 "기억이 통조림에 들어 있다면 나는 그 유통기한이 없기를 바란다. 만약 꼭 기한을 정해야 한다면 그 기한이 만 년이길 바란다."이다.

그런데, 사랑의 진짜 유통기한은 얼마일까?


진화심리학자들은 남녀가 사랑에 빠진 다음 절정에 이르는 기간이 대략 3년이라고 주장한다. 3년은 남녀가 만나 자식을 낳고 자식의 생존이 확실해질 때까지 필요한 최소한의 시기다. 자식의 생존을 위해서는 부모 한 쪽만 있는 것보다는 부모 둘 다 있는 쪽이 유리하다. 인간의 사랑은 진화적으로 그렇게 설계됐다는 얘기다. 그리고 그 시기의 아기들은 부모에게 커다란 눈과 동그란 얼굴로 귀여움이라는 정서를 유발한다. 우리가 아기처럼 생긴 얼굴이나 캐릭터를 보며 귀여움을 느끼는 것 역시, 진화적인 이유 때문이다. 진화적 관점에서 보면 아기처럼 생긴 모습을 보며 귀여움과 보호 본능이 일지 않는 종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런데, 이 3년이라는 수치는 놀랍게도 뇌과학자들의 연구 결과와 정확히 일치한다. 사랑에 빠진 인간의 뇌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위는 바로 VTA(ventral tegmental area, 복측피개부)다. VTA는 보상 중추를 담당하며 도파민 분비를 촉진해 우리 뇌의 여러 부분에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이 부위는 열정, 동기, 집중, 갈망 등의 정서와 연결되어 있고, 마약의 한 종류인 코카인을 흡입했을 때, 활동성을 보이는 곳이기도 하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열정적이며, 동기가 충만하고, 상대를 향한 집중, 그리고 상대의 사랑을 갈망하는 행동과 태도를 보인다. 마약에 도취된 상태와 비슷하니, 자아를 잃어 버리고 상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차 있다. 


출처: Helen Fisher: The brain in love(TED Talks)


뇌과학자들의 연구 결과,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뇌에서 이 VTA가 가장 왕성하게 활성화되는 시기가 딱 3년이라는 것이다. 심리학자이자 인류학자인 헬렌 피셔(Helen Fisher) 박사는 약 60개국에서 발생한 이혼사례를 연구한 결과, 결혼 4년차에 이혼하는 부부가 가장 많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인간의 사랑은 3년차에 정점을 찍고, 점차 줄어든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마약에 중독된 사람들과 유사한 특성을 보인다. 한 사람에게 집중하고, 그 사람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현실을 왜곡하며, 그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 막대한 위험을 감수한다. 


중독 증상에는 세 가지 특성이 있다. 내성(tolerance), 금단(withdrawals), 재발(relapse)이다. 중독된 사랑은 내성이 있기 때문에 같은 효과를 보기 위해서 더 큰 자극이 필요하다. 상대를 향한 갈망과 집착의 수준이 점점 높아지는 이유다. 또한, 금단 현상을 겪기 때문에 떨어져 지내면 견디기 어렵다. 보고, 또 보고 또 보아야 한다. 재발 가능성이 높아서, 길가다 함께 듣던 노래만 흘러도 그 사람을 떠올리고 힘들어 한다. 하지만, 이 중독 증상도 3년이 지나면 감퇴한다. 


결국, 사랑의 유통기한은 3년, 사용기한은 그 보다 조금 더 긴 4~5년이라고 보는 것이 과학적이다. 내 글을 즐겨읽는 독자는 조직심리학자가 뜬금 없는 사랑 얘기를 하느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는 이 연구들을 보면서 직장인들이 떠올랐다. 바로, '일하다 보면 3년마다 고비가 찾아 온다'는 출처를 알 수 없는 격언이다. 


3년차 고비는 왜 생기는 걸까? 


나는 인간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과 일에 열정을 느끼는 과정이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일을 할 때도 일의 매력을 느끼고 몰입하고 발전하며 즐겁게 성과를 낼 수 있는 유통기한이 있는 것은 아닐까?사랑과 일은 공통점이 많다. 프로이트(Freud)가 "인간에게는 사랑과 일, 그게 삶의 전부다."라고 말한 것 역시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사랑의 유통기한을 알았지만, 한 가지 중요한 고민이 남아 있다. 


어떻게 사랑의 유통기한을 늘릴 수 있을까?


신경과학과 인지심리학의 세계적인 석학인 로버트 스턴버그(Robert Sternberg) 박사는 자신이 만든 '사랑의 삼각형 이론(Triangular theory of love)'으로 사랑의 유통기한을 늘릴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한다. 

출처: https://50plus.or.kr/detail.do?id=8820479


사랑을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는 친밀감(intimacy), 열정(passion), 헌신(commitment)다.  그리고 가장 이상적인 사랑은 친밀감과 열정, 헌신의 세 꼭지점이 모두 높은 수준으로 균형을 이루는 모습이다.  


그런데, 우리 뇌 속의 VTA가 왕성하게 활동하는 사랑은 열정 + 친밀감인 낭만적 사랑이다. 이 사랑의 유통기한은 그리 길지 않다. 하지만, 이 시기에 헌신이라는 요소를 서로 개발한다면 사랑의 유통기한을 끝도 없이 늘릴 수 있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고 따지지만, 사랑은 변해야 성숙하고 완전해진다. 진정한 사랑은 한 가지 유형에만 머물러서는 안된다. 사랑의 삼각형의 각 요소가 시간에 따라 달리 반응하기 때문이다. 상대를 만나자마자 달아오르는 것은 열정이다.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친밀감이 쌓기고, 헌신은 마지막까지 함께 하고,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길고 오래 지속된다. 그러니, 성숙한 사랑으로 완성되는 모습은 열정이 식기 전에, 친밀감과 헌신을 쌓아 다시 열정으로 그 에너지를 보내는 그림일 것이다.


낭만적 사랑의 유통기한은 짧다. 하지만, 열정과 친밀감, 그리고 헌신으로 성숙한 사랑(consummate love)의 유통기한은 만년이 될 수 있다. 일에 대한 재미는 사랑의 삼각형에서 열정과 비슷하고, 그 일이 익숙해지는 것은 친밀감과 유사하다. 또, 일에 의미를 느끼고 타인을 돕거나 돌아보는 것은 헌신적인 측면이 있다. 어떤 일에 소명의식(calling)을 느끼는 것 역시, 이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한 것 같다. 이 중 어느 하나가 부족하거나 빠지면, 번아웃(burn-out)이나 일중독(workaholic)에 빠지기 쉽다. 여러모로 일과 사랑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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