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신종 질병이 유행하고 있다. 치료제가 없으면 60만 명이 사망할 것이다.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두 가지 치료제가 개발되고 있다.
A약을 선택하면 20만 명이 무조건 살아남는다.
B약을 선택하면 60만 명이 살아 남을 확률이 1/3이고, 아무도 살아남지 못할 확률이 2/3다.
이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A약을 선택한다. 도박보다 정해진 결과를 선호한다.
이번에는 프레임을 달리해 제시한다.
A약을 선택하면 40만 명이 무조건 죽는다.
B약을 선택하면 아무도 죽지 않을 확률이 1/3이고, 60만 명 모두 죽을 확률이 2/3다.
그런데, 두 번째 프레임에서는 대다수가 B약, 즉 도박을 선택한다. 두 조건 모두 결과는 같다. 다만 문제를 긍정적인 이득 중심으로 제시하느냐, 손실 중심으로 제시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같은 결과라도 이득과 손실, 어떤 프레임으로 제시하는가에 따라 사람들의 판단은 달라진다. 그 유명한 프레임 편향(Framing bias) 또는 프레임 효과(Framing effect)라고 불리는 현상이다. 사람들은 손실을 싫어한다. 손실이 너무 싫기 때문에 피할 수만 있다면 어떤 도박이라도 감수하려고 한다. 이득 상황일 때는 다르다. 사람들은 작은 이익이라도 보수적으로 챙기려고 든다.
당신의 보유 주식 중에 100만원 이득인 A주식과 100만원 손실인 B주식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리고 당신은 돈이 필요해 두 주식 중 하나를 매도해야 한다. 어떤 주식을 매도하겠는가? 대부분 사람들은 A주식을 택한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B주식을 매도하는 순간, 손실로 확정되는 것이 싫어서다.
협상과 의사결정에 관해 세계 최고의 심리학자 중 한 명인 시카고대학교 심리학과 보아즈 케이사르(Boaz Keysar) 교수 등의 연구진은 위 문제를 모국어로 제시할 때와 외국어로 제시할 때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아보았다. 연구진은 먼저 영어가 모국어이고 일본어를 외국어로 구사하는 집단, 한국어가 모국어고 영어를 외국어로 구사하는 집단, 영어가 모국어고 프랑스어를 외국어로 구사하는 집단 등 다양한 조건을 만들었다. 이후 모든 참가자는 동일한 문제를 받았지만, 일부는 모국어로 일부는 외국어로 받았으며, 또 일부는 이득 중심, 다른 일부는 손실 중심으로 받았다.
실험 결과, 문제를 모국어로 제시할 때는 프레임 효과가 나타났지만, 외국어로 결정할 때는 프레임 효과가 사라졌다.
출처: Keysar, B., Hayakawa, S. L., & An, S. G. (2012). The foreign-language effect: Thinking in a foreign tongue reduces decision biases. Psychological science, 23(6), 661-668.
Case A.
당신은 재킷 한 벌을 사기 위해 한 매장에 들어갔다. 우연히 얻은 정보로는 현 위치에서 15분을 이동하면 30만원짜리 재킷을 29만원에 살 수 있다. 다른 매장으로 가겠는가?
Case B.
당신은 계산기 하나를 사기 위해 매장에 들어갔다. 우연히 얻은 정보로는 현 위치에서 15분을 이동하면 15,000원짜리 계산기를 5,000원에 살 수 있다. 다른 매장으로 가겠는가?
두 케이스 모두 당신이 볼 수 있는 경제적 이득은 10,000원으로 같다. 하지만 Case A는 5%도 안되는 할인이지만, Case B는 2/3를 할인받을 수 있다고 여긴다. 프레임 효과의 예다.
이 실험에서도 모국어에 비해 외국어로 제시받은 사람들은 프레임 효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Costa, A., Foucart, A., Arnon, I., Aparici, M., & Apesteguia, J. (2014). “Piensa” twice: On the foreign language effect in decision making. Cognition, 130(2), 236-254.).
이번엔 윤리적 딜레마 상황을 보자.
브레이크가 고장난 기차가 선로 위를 질주 중이다. 다섯 사람이 죽을 위기에 처해 있다. 막을 방법은 선로를 바꾸는 것밖에 없다. 선호를 바꾸면 다른 선로에 있는 한 사람이 죽지만, 다섯 명은 살릴 수 있다.
공리주의에 의한 판단은 한 사람을 희생해 다섯 명을 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결정은 죄 없는 누군가를 죽이는 데 내가 관여했다는 죄책감을 낳는다. 연구진은 이와 유사한 세 편의 연구에서 외국어가 윤리적 딜레마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세 연구 모두에서 딜레마 상황을 외국어로 접한 참가자들은 공리주의적 판단을 더 많이 내렸다.
외국어 사용으로 심리적 거리가 넓어져 보다 합리적인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Costa, A., Foucart, A., Hayakawa, S., Aparici, M., Apesteguia, J., Heafner, J., & Keysar, B. (2014). Your morals depend on language. PloS one, 9(4), e94842.).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사고하면 감정은 둔화되고 의사결정의 합리성이 증가한다. 외국어가 모국어만큼 직관적으로 감정과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욕설을 외국어로 들을 때와 모국어로 들을 때의 반응이 다르다. 또한, 외국어를 사용하는 것은 더 많은 인지적 노력을 요한다. 우리 뇌의 빠르고 직관적인 자동화된 반응인 System 1을 느리고 논리적이고 심사숙고형 반응인 System2로 전환시키는 효과가 있다.
사용언어를 외국어로 바뀌기만 해도 더 합리적이고 덜 편향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지 않은가
외국어 회의가 필요할 때가 있다. 더 논리적이고 더 합리적인 판단이 요구될 때다. 다양한 언어 기반의 사람들이 자신의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회의를 하면 더 합리적인 판단이 가능하다. 증권 시장에서 다양성 집단의 예측력은 동질 집단의 예측력에 비해 무려 58%가 더 높다.
출처: Levine, S. S., Apfelbaum, E. P., Bernard, M., Bartelt, V. L., Zajac, E. J., & Stark, D. (2014). Ethnic diversity deflates price bubbles.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11(52), 18524-18529.
TV의 해외여행 프로그램만 봐도 그렇다. 한국인끼리 여행하면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거래하는 경우가 왕왕 발생하지만, 다국적으로 구성된 사람들끼리 여행하면 그런 장면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영어 논문으로 학습하는 것의 이점도 분명하다. 일단 국내에서 매우 좋은 연구가 발표된다면 그 연구자는 국내 학술지에 머물러 있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 세계적인 학술지에 게재하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영어로 된 세계적 학술지는 그 자체만으로 필터링 효과가 있다. 거기에 영어를 읽고 사고하는 것은 보다 논리적인 사고를 가능하게 한다. 논문 작성의 기본은 논리성인데, 저자의 논리를 보다 깊게 파악할 수 있다.
이 연구들의 실생활의 활용점도 매우 분명하다.
주변에 흥분해 횡설수설하는 사람이 있다면 한 마디만 던져라. "그거 영어로 얘기해 봐(Say it in engli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