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지인이 호텔에 10만 원의 예약금을 맡긴다. 그 돈은 호텔 → 가구점 → 치킨집 → 문방구를 돌고, 마침내 외지인은 호텔 예약을 취소한다.”
이 시나리오, 소위 ‘호텔경제학’은 이재명이 인용한 지역경제 순환 모델이다. 딱 한 번의 돈이 지역 내에서 여러 번 거래되며 상권 전체에 활기를 불어넣는 구조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들은 어떤 이들은 곧바로 계산기를 꺼낸다.
“결국 실질소득은 0 아니야?”, “거래는 돌았지만 생산은 없잖아.”, “결국 남는 게 없네?”, “단순한 소비 순환일 뿐 경제적 파급력이 없다.”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경제학 교수들까지 합세해 진지하게 비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걸 놓치고 있다.
이재명의 호텔경제학 메타포나 지역화폐 정책을 비판할 때 자주 등장하는 논리는 케인즈의 승수효과(Multiplier Effect)다. 즉, 정부 지출이 소득과 소비를 유발하고, 그게 다시 생산과 고용으로 이어지며, 최종적으로 총수요를 확대한다는 고전적 메커니즘이다.
하지만 여기엔 중대한 오독이 있다. 이들은 '무엇이 승수효과를 발생시키는가'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피하고, 투자만이 승수를 만든다는 잘못된 전제를 깔고 있다.
케인즈 승수효과의 기본 공식은 다음과 같다.
승수=1/(1−한계소비성향(MPC))
즉, 소득이 추가로 발생했을 때 얼마나 더 소비되는가에 따라 승수는 결정된다. 다시 말해, 추가 소득 중 소비로 이어지는 비율(MPC)이 높을수록, 그 돈이 한 사람에서 다른 사람으로 더 많이, 더 자주 순환하게 되고, 총수요(total demand)는 더 크게 증가한다.
예를 들어보자.
A씨는 월 1천만 원을 버는 고소득자다. 정부가 그에게 10만 원을 지급한다면, 그는 이를 그냥 저축하거나 쓰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MPC가 낮다.
반면, B씨는 월 100만 원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저소득자다. 그에게 10만 원은 즉시 식비, 의료비 공과금 등으로 소비될 가능성이 크다. MPC가 매우 높다.
즉, 같은 금액의 정책 지출이라도 누구에게 전달되느냐에 따라 승수효과는 극명하게 달라진다.
여기서 2015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앵거스 디턴(Angus Deaton)의 이론은 이 구조에 정밀한 설명력을 더한다. 디턴은 『The Great Escape』와 소비행태 연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Deaton, 2013).
“사람들은 동일한 금액의 소득이라도 그 출처(source)가 다르면 소비에 대한 반응도 달라진다. 정기적 노동소득은 저축으로 이어지기 쉽고, 무상 이전소득(공돈)은 소비로 곧장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사람들은 급여라는 출처에서 소득이 높아지면 소비로 이어지지 않지만, 공돈이라는 출처에서 소득이 생기면 곧바로 소비한다. 지역화폐는 저소득층에게 전달되고, 즉시 소비되며, 지역 내에서만 사용 가능하도록 제한되어 고승수 소비의 지역 내 순환 효과를 촉진한다. 즉, 이 구조는 케인즈의 ‘MPC 기반 승수’와 디턴의 ‘소득 출처별 소비탄력성’을 모두 만족시키는 정교한 지역경제 설계다. 즉, 지역화폐나 기초소득처럼 저소득층에 직접 전달되는 현금성 소비 수단은 가장 이상적인 한계소비성향 구조를 만든다.
케인즈 이론은 총수요의 증대가 목적이지만, 이재명의 모델은 여기에 하나를 더한다.
<총수요가 지역 내부에서 순환하고, 그 속에서 소상공인과 골목 단위의 경제가 자립할 수 있는 구조>
즉, 대규모 외자 투자나 토목 중심의 수직적 승수효과가 아니라, 수평적,분산적 승수를 지향한다. 이건 지역화된 진화형 케인즈주의라고도 볼 수 있다.
이재명 비판자들은 호텔경제학을 보여주기식 가상 순환이라고 비판하거나 회계상 정산일 뿐 구조적 가치 없다고 폄하하며, 지역화폐 정책은 일회성 현금 살포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비판은 케인즈를 신봉하는 척하면서, 정작 케인즈가 중시한 두 가지 전제를 망각한다.
실업이 존재하는 불완전한 시장에서 정부지출은 소비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것과 유휴 자본과 인력이 존재할 때, 소비가 생산으로 연결되며 승수가 작동한다는 것이다. 우리 주변의 소상공인, 자영업자는 지금도 생산능력은 있지만 수요가 없는 상태다. 이 상황에서 지역화폐는 유휴 생산력을 활성화시키는 소비 유도 장치다. 그리고 그것은 케인즈가 말한 조건에서 정확히 작동하는 승수효과다.
이재명의 호텔경제학은 어디까지나 정책의 작동 원리를 설명하는 은유적 비유다. 즉, 돈이 한 번 지역에 들어오면, 잘 설계된 구조 안에선 여러 번 순환할 수 있다는 구조적 상상력을 유도하는 장치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은 이 메타포를 지나치게 숫자로 검증하려 한다. 이런 태도는 과학적이라기보다 오히려 상징과 서사를 견디지 못하는 불안에 가깝다. 왜일까?
정책이 효과를 설명할 때 메타포를 사용할 경우, 그 메타포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정치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역할을 한다. 이는 숫자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메타포에 대한 불신은 다음과 같은 심리에서 기인한다. 이들은 메타포가 불러올 정당성의 확장, 즉 정책의 철학적 지지를 경계한다. 그러나 모든 좋은 정책은 철학에서 시작되며, 그 철학은 종종 상징으로 번역된다.
심리학자 제롬 브루너(Jerome Bruner)는 인간 사고에는 두 가지 모드가 있다고 했다. 하나는 논리-과학적 모드로, 사실과 증거, 인과관계에 기반한 분석 중심의 사고다. 다른 하나는 서사-은유적 모드로, 의미와 맥락, 가치를 중심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이다. 호텔경제학과 같은 비유는 명백히 서사적 사고의 방식에 속한다. 즉, 복잡한 정책 구조나 경제 원리를 하나의 이야기나 장면으로 압축하여 전달하는 설명법이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은 이런 방식 자체를 불편해한다. 정량화되지 않은 설명, 숫자로 측정할 수 없는 가치, 상징과 은유 같은 것은 이들에게 신뢰할 수 없는 말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메타포를 불명확하다고 비판하거나, 숫자와 증거로 증명되지 않으면 무의미하다고 간주한다. 하지만 이런 반응은 단순히 분석적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이면에는 다음과 같은 인지적 한계와 심리적 기제가 자리하고 있다.
서사적 사고는 복잡한 구조를 압축해 하나의 이미지나 장면으로 요약하고, 이를 통해 직관적 이해를 유도하는 고차원적 인지 작용이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부분과 전체를 연결짓는 은유적 사고에 익숙하지 않다. 이들은 개별 사실은 잘 다루지만, 맥락적 통합이나 함의 추론에 약하다. 이 때문에 서사를 모호한 이야기로 느끼며, 정확하게 수치화되지 않는 설명을 인지적으로 처리하는 데 부담을 느낀다. 이들은 창의성과 상상력에서 낮은 점수를 받을 확률이 매우 높다.
서사와 은유는 본질적으로 여러 해석이 가능하고, 의미가 단선적이지 않으며, 열려 있는 형태의 메시지다. 하지만 모호한 상태 자체를 불편하게 느끼는 사람들은 이런 설명 방식을 불안정하고 위협적으로 느끼며, 애매한 건 곧 틀린 것이라는 결론으로 빠지기 쉽다. 이는 불확실성 회피 성향, 또는 인지적 종결욕구(Need for Cognitive Closure)와 연결된다.
심리학에서는 모호하거나 불확실한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빨리 명확한 결론이나 구조로 바꾸려는 성향을 인지적 종결 욕구(Need for Cognitive Closure)가 높다고 평가한다. 이런 사람들은 불확실한 상태 자체를 불안하게 느끼기 때문에, 그 상황을 ‘명확하고 예측 가능한 프레임’ 안에 억지로라도 넣으려는 심리적 습관을 보인다.
예를 들어, '저 사람이 나한테 미소를 지은 건 친절해서일까, 아니면 뭔가 의도가 있는 걸까?' 이처럼 해석이 열려 있는 상황에서, 인지적 종결 욕구가 높은 사람은 즉시 결론을 내려버린다. '저 사람은 분명 나를 이용하려는 거야.' 불확실한 상태가 열린 해석이 아니라 위협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정치 담론에서 메타포가 등장할 때도 마찬가지다. 호텔경제학은 하나의 설명 방식이라는 걸 받아들이는 대신, GDP에 무슨 영향을 줬는지 수치로 증명하라고 요구한다. 이런 반응은 얼핏 보기엔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태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불확실성을 빨리 없애고 싶은 마음, 즉 세상을 더 단순하게 만들고 싶은 심리에서 나온 방어 반응일 수 있다. 이처럼 인지적 종결욕구는 복잡하거나 열린 서사를 받아들이기보다는 하나의 진실만을 요구하는 경향으로 나타난다.
메타포는 현실을 왜곡하는 게 아니라, 현실을 더 잘 이해하도록 돕는 일종의 ‘생각 지도’다. 이를 단순히 정확하지 않다고 밀어내는 건 숫자에 대한 맹신일 뿐 아니라, 복잡한 세계에 대한 불안을 드러내는 것일 수도 있다. 메타포를 견디지 못하는 것은 무지 때문이 아니라, 불확실성에 대한 정서적 회피다. 숫자만이 진실이라고 믿는 태도는 과학이 아니라, 인지적 회피다.
사실 좋은 정책은 언제나 서사와 데이터가 연결될 때 설득력을 얻는다. 호텔경제학은 숫자를 왜곡하지 않는다. 오히려 숫자가 설명하지 못하는 경제의 구조와 방향을 설명하는 ‘지도’ 역할을 한다. 디턴의 이론(소득의 출처별 소비 탄력성), 케인즈의 승수효과(한계소비성향 기반), 그리고 지역화폐의 설계는 결국 숫자와 서사가 만나는 지점에서 정책의 정당성과 실행력을 획득한다.
경제는 숫자만으로 설계되지 않는다. 사람의 심리를 반영해야 하고, 공공의 상상을 자극해야 하며, 구조적 설계를 납득 가능하게 설명할 언어가 필요하다. 이재명의 호텔경제학은 바로 그 언어다.
디턴이 밝혀낸 소비의 작동 원리, 즉 '돈이 누구에게, 어떤 경로로 주어졌는가'에 따라 경제가 움직인다는 통찰을 시민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전달하는 은유다. 이재명의 호텔경제학 메타포는 실제 경제모형은 아니다. 하지만 그 메타포가 말하는 경제 구조는 실제 정책이 될 수 있다.
메타포는 진심을 설명하기 위한 가장 인간적인 방식이다. 그것을 계산으로만 평가하려는 태도야말로, 경제를 숫자는 맞지만 방향은 틀린 정책으로 이끌 수 있다. 호텔경제학이 과장되었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지시하는 방향, 즉 순환, 분산, 자립의 지역경제는 정책이 지향해야 할 가장 인간적인 경제 철학이다.
아래는 CARAT 학습자를 위한 글입니다.
디턴이 밝혀낸 소비의 작동 원리, 즉 ‘돈이 누구에게, 어떤 경로로 주어졌는가’에 따라 경제가 움직인다는 통찰을 반영한 이재명의 호텔경제학은 시민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서사로 번역한 은유다. 그리고 이 서사적 접근은 단순히 공감과 설명력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의 심리적 수용 가능성과 행동 변화의 조건과 직결된다. 이 지점에서 CARAT 모델이 보여주는 통찰이 유의미해진다.
사람들은 자신이 받은 지원이 타인에 비해 정당한가를 민감하게 느낀다. 지역화폐와 기초소득이 모두에게 동일한 조건으로 제공되는 보편 정책일 때, ES가 높은 사람도 심리적 저항 없이 수용할 수 있다. 이는 승수효과가 작동하는 전제조건인 사용의 자발성을 높여준다.
지역 내 경제 순환을 믿고 참여하는 데 필요한 것은 단지 돈이 아니라 '이 돈을 써도 될 만한 공동체인가?'에 대한 신뢰다. OBSE가 높을수록 사람들은 '내가 쓰는 돈이 우리 지역을 살린다'는 주체감을 느끼고, T가 높을수록 소비의 효과에 대한 기대감과 협력 의지가 살아난다.
소비는 단지 경제행위가 아니라 자신이 미래를 관리할 수 있다는 감각에서 비롯된다. E와 R이 높은 사람은 지역화폐나 기본소득을 단순한 지급이 아니라 기회로 해석하며, 지속적 참여, 창업, 지역사회 활동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호텔경제학의 메타포는, 사람의 심리와 구조가 만나는 정책 상상력의 출발점이다.
디턴의 구조적 소비 이론, 케인즈의 승수 공식, 그리고 CARAT이 보여주는 개인의 심리 자산은 결국 하나의 말로 수렴된다.
“돈이 지역을 돌려면, 사람의 심리가 먼저 움직여야 한다.”
메타포는 그 심리를 자극하고, 심리학은 그 흐름을 설계하고, 정책은 그 방향을 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