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에 <나니아 연대기>에서 나온 배우가 나오더라고"
"아닐걸... <오징어 게임>은 '케이트 블란쳇'이고 <나니아 연대기>는 '틸다 스윈튼'이야."
많은 사람들이 영화 속 틸다 스윈튼과 케이트 블란쳇을 한 번쯤 헷갈려한다. 나도 그렇다. 나는 한동안 엠마 왓슨과 엠마 스톤을 구분하지 못했다. 틸다 스윈튼과 케이트 블란쳇은 둘 다 서구권 배우이고, 금발에 날카로운 이미지가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영국인과 호주인인 그들은 엄연히 다른 사람이다. 이 혼동은 단순히 우리의 관찰력이 떨어져서가 아니다. 우리 뇌의 얼굴 인식 시스템이 그렇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뇌의 메커니즘은 한국 기업의 다문화 조직에서도 외국인 직원을 낯설게 느끼고, 얼굴과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현상을 만드는 주범이기도 하다. 글로벌화와 함께 한국 기업에도 다양한 국적의 인재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서로의 얼굴과 표정 해석의 실패가 의외로 많은 문제를 낳는다. 이건 단순히 ‘익숙함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뇌의 구조와 진화적 메커니즘이 개입된 현상이다.
최근 연구들은 우리 뇌가 내집단(Ingroup)과 외집단(Outgroup) 얼굴을 서로 다르게 처리하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있다. 이를 이해하면 한국 기업이 다문화 팀을 운영할 때 겪는 소통의 어려움을 풀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사람들은 얼굴을 볼 때 ‘내 집단(Ingroup)’과 ‘외 집단(Outgroup)’의 얼굴을 다르게 인식한다.
- Ingroup 얼굴: 더 세밀하게 구분하고, 다양한 특징을 잘 기억함.
- Outgroup 얼굴: 비슷비슷하게 인식하고, 구체적인 차이보다는 집단적 특성(예: “저 사람들 다 비슷해”)에 주목.
한국 사람인 우리는 한중일 3개국 사람들 사진을 놓고 구분하라고 했을 때 한국 사람들의 세부 특징은 잘 구분한다. 하지만, 일본인과 중국인 얼굴은 상대적으로 다 비슷해 보인다는 느낌이 들 수 있다. 뇌 속 ‘얼굴 공간(face space)’이 자신이 속한 집단 얼굴에 대해 훨씬 정교하게 발달되어 있기 때문이다.
백인 참가자들에게 흑인 얼굴 여러 장을 보여주고 기억하게 했더니 나중에 흑인 얼굴을 잘못 구분하거나 혼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반대로, 백인 얼굴은 훨씬 정확하게 기억했다. 이 현상을 'Outgroup Homogeneity Effect'라고 부른다. 우리 뇌가 외집단은 개개인의 차이보다 집단적 특성으로 처리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최근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에 게재된 연구를 보면, 우리 뇌는 내집단이냐 외집단이냐에 따라 정말 다르게 저장하고 관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Correll, J., Lakshmi, A., Wittenbrink, B., Ma, D. S., Singh, B., Bansemer, E., & Harvey Jr, L. O. (2025). The mental representation of ingroup and outgroup face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얼굴은 Face Space라는 심리 좌표계에 저장되는데, Ingroup 얼굴은 각기 다른 위치에 분포해서 개별적으로 저장되지만, Outgroup 얼굴은 중심(norm)에 몰려있어 세부 구분 없이 비슷하게 처리한다.
생존을 위해 우리 인간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개개인을 정확히 구별하고 기억하는 능력이 중요했다. 그러나 외부 구성원은 ‘위협인가 아닌가’ 정도만 빠르게 판별하면 충분했기에, Outgroup 얼굴은 뭉뚱그려 처리하는 방식이 진화적으로 선택된 것이다.
1. Fusiform Face Area (FFA): ‘내 사람’을 정교하게 인식
우리 뇌에는 얼굴을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영역인 Fusiform Face Area(FFA)가 있다. 내집단(Ingroup) 얼굴을 볼 때는 FFA가 강하게 활성화되어, 미묘한 특징까지 세밀하게 구분한다. 동료 한국 직원의 얼굴을 떠올리면 “A는 광대가 올라와 있고, B는 눈썹이 짙어” 같은 세부 특징까지 기억한다. 반대로 외집단(Outgroup) 얼굴을 볼 때는 FFA 활동이 줄어들며, 개별 얼굴을 세밀하게 구분하지 못헌다.
2. Amygdala: 외집단 얼굴에 대한 경계
Amygdala(편도체)는 뇌의 감정 및 위협 탐지 센터다. 외국인 직원(Outgroup)을 처음 마주할 때 이 영역이 더 활성화되어 경계심과 긴장을 유발할 수 있다. '이 사람은 나에게 위협일까?'라는 무의식적 평가가 작동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3. Superior Temporal Sulcus (STS): 표정과 시선 해석
STS는 상대의 표정과 시선을 해석하는 역할을 합니다. 내집단 얼굴은 미묘한 표정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공감과 소통에 유리하다. 반면 외집단 얼굴은 표정이나 시선 변화에 덜 민감하기 때문에 오해와 소통 오류가 발생하기 쉽다.
첫째, 단일민족 사회의 후유증이다. 우리 나라는 오랜 시간 상대적으로 단일민족 사회였기에 내집단 인식에 최적화된 뇌 메커니즘이 강화되어 있다. 외국인 얼굴에 대한 데이터가 부족해 Outgroup 얼굴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경향이 다른 다문화 국가에 비해 훨씬 강하다.
둘째, 서열과 위계 중심 문화다. 상사와 부하 간의 위계가 뚜렷한 문화에서는 표정이나 미묘한 신호로 상사의 기분을 파악하는 능력이 중요했다. 이 때문에 한국 직원들은 내집단의 미묘한 표정 차이를 읽는 데 매우 민감하지만, 외집단에 대해서는 그 민감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우리 뇌는 본래 내집단 얼굴에 최적화되어 있지만, 글로벌 시대의 조직은 더 이상 단일집단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뇌과학적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이를 토대로 맞춤형 훈련과 시스템을 설계하면, 외국인 직원과의 협업에서도 더 높은 신뢰와 효율을 만들 수 있다.
1. Face Individuation 훈련
- FFA 활성도 향상을 통해 외집단 얼굴도 세밀하게 구분
- 방법: 외국인 직원의 얼굴 사진과 이름, 취미 등 개별 정보를 매칭하는 것이다. 미팅 시작 전 매번 외국인 직원 얼굴과 이름 불러보는 것은 매칭을 강화하기 때문에 도움이 된다. 이를 통해 Outgroup 얼굴도 Ingroup처럼 개별적, 구체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
2. Amygdala 경계 감소 프로그램
- 외집단 얼굴에 대한 무의식적 경계심 완화
- 방법: 공동 경험을 설계하는 것이 핵심이다. 점심식사, 팀 워크숍, 사내 프로젝트 등 비업무적 교류를 통해 친밀감 증진시키고 다문화 멘토링을 통해 외국인 직원과 1:1 대화 시간을 가져 경험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 상상 접촉 훈련(Imagined Contact)을 통해 외국인과의 긍정적 상호작용을 머릿속에 시뮬레이션하면 편도체의 경계 반응이 완화되어 긴장감과 불안을 감소시킬 수 있다.
3. STS 민감도 향상 훈련
- 외집단 얼굴의 표정과 시선 해석 능력 강화
- 방법: 비언어적 신호 차이를 교육하는 것이다. 외국인 직원의 표정과 제스처 차이를 학습하는 프로그램 도입이 효과적이다. 역할극(role play)으로 표정이나 제스처를 해석 연습하는 것도 고려하면 좋다. 이를 통해 Outgroup 직원의 미묘한 표정 변화도 정확히 읽을 수 있다.
낯선 얼굴을 익숙한 동료로 만드는 것, 그 시작은 뇌를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