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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톡 업데이트 사태로 본 리더십의 교훈

by 박진우

리더에게 있어 프로젝트 실패는 신뢰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는 위기다. 이 때문에 많은 리더들이 실패의 신호를 보면서도 프로젝트를 끝까지 밀어붙인다. '내가 방향을 바꾸면 부하직원들이 날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이른바 몰입의 에스컬레이션(escalation of commitment) 현상이다.


겉으로는 책임감 있는 리더처럼 보일지 몰라도, 실제로는 손실을 키우는 고집이 될 뿐이다. 팔로워들은 점점 리더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다고 느끼고, 외부 이해관계자들은 '무능하다'는 평가를 내린다. 결국 리더십은 더 큰 타격을 받는다.


1. 실패에도 신뢰를 지키는 전략: Precommitment


Kristal & Dorison(2025)의 최신 연구는 이 딜레마에 대한 흥미로운 해답을 제시한다(Kristal, A. S., & Dorison, C. A. (2025). Precommitment can allow decision makers to maintain trust when de-escalating commitment. Journal of Applied Psychology, 110(10), 1395–1411. ). 연구팀은 4개의 주요 실험과 5개의 보조 연구에 걸쳐 총 7,759명의 참가자를 대상으로 리더가 실패한 전략을 철회할 때 신뢰가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탐구했다.


결과는 명확했다.


1. 사전 약속이 없는 경우:

- 리더가 방향을 바꾸면 팔로워는 이를 약속 위반으로 인식했다.

- 정직성(integrity) 평가는 급격히 하락했고, 실제로 금전적 인센티브가 걸린 신뢰 행동에서도 리더를 덜 신뢰했다.


2. 사전 약속이 있는 경우:

- 리더가 미리 “이 조건이 되면 방향을 바꾸겠다”고 말해두면, 나중에 전환을 했을 때도 신뢰가 유지됐다.

- 팔로워들은 이를 신뢰의 붕괴가 아니라 예정된 조정으로 해석했다.


3. 특히 중요한 점:

- 약속이 구체적일 때 효과가 강했다.

- 반대로 “필요하면 바꾸겠다”처럼 모호한 약속은 신뢰를 지켜주지 못했다.


실패에도 신뢰를 지키는 리더의 비밀은 단순하다. 실패를 부정하지 말고, 실패 가능성을 조건부로 사전에 약속하는 것이다.


2.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려면? 시나리오 플래닝


Precommitment는 시나리오 플래닝(scenario planning)과 결합할 때 강력해진다. 시나리오 플래닝은 '앞으로 어떤 상황이 올 수 있는가, 그때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미리 설계하는 과정이다. Precommitment는 '그 상황이 오면 이렇게 하겠다'라는 실행 선언이다.


Kristal & Dorison의 연구가 보여주듯, 구체적이고 측정 가능한 조건을 미리 세워 둔 다음, 약속된 시나리오의 실행하는 것이다. “6개월 내 매출이 목표의 70%에 못 미치면 즉시 프로젝트를 중단한다.”, “2차 리콜에서도 동일 결함이 발생하면 제품을 단종한다.”와 같은 약속은 단순히 리더를 보호하는 장치가 아니다. 팔로워와 이해관계자에게는 리더가 현실을 직시하고, 실패까지도 책임 있게 관리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준다.


3. 사례: 실패를 신뢰로 바꾼 기업들


넷플릭스 퀵스터(2011)


넷플릭스는 DVD 대여 사업을 스트리밍과 분리했지만, 고객 반발이 거세자 즉시 철회했다. 표면적으로는 실패였지만, 빠른 전환 덕분에 오히려 고객 중심 기업이라는 신뢰가 강화됐다.


삼성 갤럭시 노트7 단종(2016)


갤럭시 노트 7은 배터리 폭발 문제로 전량 단종돼 막대한 손실이 있었지만, 단호한 결정이 장기적으로 브랜드 신뢰 회복을 이끌었다. 이는 사실상 '제품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시장 철수'라는 시나리오가 실행된 사례라 볼 수 있다.


이처럼 실패를 빠르게 전환한 리더십은 결국 신뢰를 유지하거나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 실패를 인정하는 순간이 오히려 리더의 합리성과 책임감을 증명하는 기회가 된 것이다.


4. 실패에도 신뢰를 유지하는 리더의 비밀(feat. 카카오톡 업데이트)


리더십은 완벽하게 성공하는 능력이 아니다. 진정한 리더십은 실패를 예상하고, 설계하며, 전환하는 지혜에 있다.

Kristal & Dorison의 연구는 우리에게 다음의 원칙을 남긴다.


1. 실패를 예측하라 – 다양한 시나리오를 미리 준비하라.

2. 실패를 약속하라 – 조건부 전환을 명확히 공표하라.

3. 약속을 실행하라 – 기준이 충족되면 미련 없이 약속을 지켜라.


이 과정을 통해, 실패는 더 이상 조직의 패배가 아니다. 그것은 리더의 신뢰, 투명성, 책임감을 증명하는 무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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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카카오톡 업데이트 이후 많은 이용자들이 불편과 혼란을 겪고 있다. 메신저는 사람들의 생활과 업무에 깊숙이 얽혀 있기 때문에, 작은 변화 하나도 큰 파장을 일으킨다.


만약 카카오가 사내적으로 '신규 기능 출시 후 불편 신고가 일정 수준 이상 접수되면, 즉시 업데이트를 중단하고 이전 버전으로 복원한다.', 이렇게 약속을 정해두었다면 어떨까? 이처럼 내부적으로 명확한 조건을 precommitment로 설정해 두었다면, 실제 혼란이 발생했을 때 더 신속하고 일관된 대응이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사용자에게도 문제를 인정하고 신속히 대처하는 기업이라는 신뢰로 이어질 것이다.


5. 일상에서 적용할 수 있는 작은 Precommitment


Precommitment은 기업의 리더십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다.


“저녁에 야식이 생각나면, 배고픔이 아니라 갈증일 수 있으니 물을 한 잔 마신다. 여전히 배고프면 그때만 먹는다.”

- 단순한 규칙이지만, 과식 실패를 줄이고 자기 신뢰를 유지할 수 있다.


“월급의 10%는 무조건 자동이체로 저축한다. 예상치 못한 지출이 생겨도 저축은 건드리지 않는다.”

- 스스로 세운 조건부 약속이 장기적 신뢰(자기 통제)를 만든다.


이처럼 일상적 차원에서도 precommitment는 실패를 예방하고, 자기 자신과의 신뢰를 지키는 장치가 될 수 있다.


리더의 신뢰는 실패 없는 완벽함에서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실패를 성공으로 바꿀 수 있는 설계와 실행, Precommitment에서 비롯된다. 진정한 리더십은 실패를 예상하고, 설계하며, 전환하는 지혜에 있다. 실패에도 흔들리지 않고 신뢰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Precommitment를 일상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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