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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보이고 싶은 욕심 VS 아무 것도 아닌 사람

by 박진우

우리 사회의 뇌리에 박힌 두 마디. "돋보이고 싶은 욕심", "아무 것도 아닌 사람"


김건희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인물이다.

그녀가 했던 가장 유명한 말은 허위 경력을 사과하는 장면에서 나온 “돋보이고 싶은 욕심”과, 특검 조사에 불려 갔을 때는 스스로를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이 두 문장은 서로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한 사람의 내면에서 공존하는 취약한 자기애의 양극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한쪽에서는 인정 욕구와 주목 욕구가 자신을 과대하게 끌어올리려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사회적 압력과 비판 앞에서 자기 전체를 무력하게 축소시키는 자기개념이 작동한다.


심리학적 관점에선 이 두 문장은 서로 상반된 것이 아니라, 나르시시즘(자기애)의 두 얼굴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말이다.


자기애에는 두 종류가 있다—‘과대 자기애’와 ‘취약 자기애’


심리학에서 자기애는 하나가 아니라 두 가지 형태로 나뉜다.


① 과대 자기애(Grandiose Narcissism)

- 자신을 돋보이게 만들려는 욕구

- 인정에 대한 강한 욕망

- 스스로의 우월함을 강조하는 경향으로 '성공한 나', '능력 있는 나'를 보여주고 싶어 함

이 관점에서 보면 “돋보이고 싶은 욕심”이라는 말은 과대 자기애 성향에서 흔히 나타나는 자기고양(self-enhancement) 동기다.


② 취약 자기애(Vulnerable Narcissism)

- 비판, 감독, 사회적 압력 앞에서 위축

- 수치심, 불안, 노출 공포 앞에서 "나는 별것 아닌 존재다”라는 자기저하(self-diminishment)

- 친밀함을 느끼면 자기방어가 풀리며 무기력한 언어가 나오는 경향

이 관점에서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라는 표현은 취약 자기애의 자기붕괴(self-collapse) 패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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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는 돋보이고 싶은 ‘과대 자기애’와 비판 앞에서 축소되는 ‘취약 자기애’가 한 사람의 언행에 동시에 나타난 것이다. 이는 이론적으로 매우 흔한 조합이다. 많은 인물들이 내면의 과대성과 위기 상황의 취약성을 진자처럼 오간다(Pincus & Lukowitsky(2010), Cain et al.(2008)).


자기애가 매우 강한 사람은 빛나는 자기상(ideal self)과 무너지는 자기상(devalued self) 사이를 오가며 살아간다. 평소에는 인정 욕구가 추진력이 되지만, 비판이나 노출 상황이 오면 그 에너지는 곧장 취약성, 수치심, 자기저하로 뒤집힌다.


이는 모순이 아니라, 자기애라는 성격의 양면성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구조적 패턴이다. 자기애가 강한 사람은 극도로 나대거나, 극도로 숨거나 하는 양극단을 오가는 경우가 많다. 평소에는 자신을 크게 보이게 만들려 하고, 스포트라이트를 향해 달려가지만, 비판이나 압력이 닿는 순간에는 순식간에 움츠러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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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회복탄력성의 역설적 부작용



김건희는 여러 사회적 논란 이후에도 금방 다시 등장하고, 위축되는 기간이 짧으며, 보통사람보다 훨씬 빠르게 회복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이는 단순한 그녀가 대장부다운 담대함을 가진 것이 아니라, 자기애와 결합된 또 다른 심리적 요인, 즉 높은 회복탄력성(resilience)이 작동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그녀의 언행을 시간의 흐름으로 보면, 일시적으로 조용해지나 곧 다시 전면에 등장하고, 비판 속에서도 감정적 붕괴 없이 활동을 재개하는 동일한 패턴이 반복된다.


이러한 모습은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들에게서 흔히 관찰되는 전형적 행동양상이다.


그렇다. 회복탄력성이 높다고 해서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성격의 다크사이드가 높은 사람이 회복력까지 높으면 빨리 일어나는 만큼, 왜 넘어졌는지를 돌아보는 시간이 짧아져 동일한 실수가 반복되는 역설이 나타날 수 있다( Bonanno, 2004 ; Hart & Adams, 2014 ).


Dark High ×Bright High 구조 – 강한 에너지 + 빠른 복귀, 그러나 방향성 문제


김건희의 공적 언행 패턴은 심리학 프레임에서 보면 Dark 요인(과시성, 정서 둔감성 등)의 추진력과 Bright 요인(회복탄력성, 자기효능감)의 버티는 힘이 동시에 높은 유형이다. 이 조합은 강력한 에너지 구조를 만든다.


문제는 이것만으로 방향이 잡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동차의 엔진이 아무리 좋아도 핸들(조절변인)이 약하면 위험하다.


핸들을 결정하는 세 가지 조절변인 + 성격지능(PI)


Dark와 Bright의 방향성을 조절하는 핵심 요인은 다음 4 가지다.


① 정서조절 능력(Emotional Regulation Ability)

정서조절 능력이 낮으면 논란 앞에서 방어적 메시지를 내며, 압박 상황에서 완충적 커뮤니케이션 부족하다. 비판을 재해석하지 못하고 즉각적 부정 반응을 표출한다. 회복탄력성이 높은데, 정서조절 능력이 약할수록 빨리 일어나는 대신, 반성 없는 행동이 강화된다(Aldao et al.(2010)).


② 도덕적 정체성(Moral Identity)

도덕적 정체성이 형성되지 않으면 공적 기준보다 개인적 기준에 따라 행동하고, 사회적 기대와의 간극이 커지며, 윤리적 판단의 비일관성이 나타날 수 있다(Aquino & Reed(2002)). 실패 이후, 회복탄력성이 이를 덮어버리면 자신의 실패를 정당화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③ 자기통제(Self-control)

자기억제 능력이 낮으면 전략적 침묵을 유지하는 능력이 약하며, 단기적 언행이 장기적 리스크로 전환될 수 있다. 이때, 높은 회복탄력성은 반성과 조정 과정을 단축시켜 리스크 재생산을 가속화할 수 있다(Vazsonyi et al.(2018)).


④ 성격지능(Personality Intelligence, PI)

성격지능은 자신의 성격을 이해하고, 타인의 성격을 읽으며 상황에 맞게 상호작용 방식을 바꾸는 능력이다. PI가 낮으면 상대의 심리적 요구나 정서적 흐름을 감지하지 못하고, 상황 변화에 맞춰 행동 전략을 조정하는 데 어려움이 생긴다. 그 결과 대중의 감정, 여론의 분위기, 관계의 미세한 신호를 읽어내지 못해 갈등을 수습하거나 메시지 톤을 조절해야 할 타이밍을 놓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Dark의 추진력과 Bright의 회복력이 오히려 조정 실패를 반복시키면서 논란을 키우는 방향으로 작동할 위험이 커진다.


문제는 다크나 브라이트의 힘이 아니라 ‘힘을 어떻게 다루는가’이다


김건희의 두 문장, “돋보이고 싶은 욕심”과 “아무 것도 아닌 사람” 은 자기애의 두 축이 충돌하는 지점을 그대로 드러낸다. 여기에 다크의 추진력과 회복하는 힘(Bright)을 조절하는 정서조절, 도덕적 저에성, 자기 통제, 그리고 성격지능의 취약성이 결합되면 결국 강한 에너지와 빠른 회복이 오히려 위험을 증폭시키며 스스로를 나락으로 내모는 역설적 상황을 만들어낸다.


즉, 힘이 너무 세고 회복이 너무 빠른데 그 힘을 다룰 조절능력이 약하면, 넘어져도 금방 일어나지만 왜 넘어졌는지 살피지 못한 채 같은 패턴을 반복하며 더 큰 논란의 심지로 들어가는 구조가 형성되는 것이다.


높은 회복탄력성은 무조건 축복이 아니다.


조절능력이 받쳐주지 않을 때는 ‘반성의 시간을 지나치게 단축시키는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


만약, 조절능력이 높았다면 어땠을까?

상황은 전혀 달랐을 것이다.


- 정서조절 능력이 충분했다면 감정의 파고를 부드럽게 낮추며 비판을 공격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조언으로 재해석했을 것이다.

- 도덕적 정체성이 견고하게 자리 잡았다면 개인적 기준이 아니라 공적 기준과 사회적 기대에 스스로를 맞추는 방향으로 조정했을 것이다.

- 자기통제가 강했다면 감정적 반응이나 돌출적 언행을 누르고 전략적 침묵, 숙고, 타이밍 조절이라는 정치적 기술을 더 자주 선택했을 것이다.

- 성격지능이 충분히 발달했다면 자신의 성향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타인의 심리와 여론의 흐름을 감지하면서 행동 수위를 상황에 맞게 조율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네 가지 조절능력이 제 기능을 했다면 Dark의 힘은 과속이 아니라 설득력과 추진력으로 변하고, Bright의 회복탄력성은 반성 없는 복귀가 아니라 탄탄한 재도약의 기반이 되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같은 에너지, 같은 속도라도 자기 파괴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오류를 학습하고 관계를 회복하며 신뢰를 쌓는 방향으로 작동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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