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러 기업의 워크숍을 준비하면서 공통된 현상을 반복적으로 듣고 있다.
"요즘엔 서로 돕는 분위기가 확 줄었어요."
"협력을 요청하면, AI한테 물어보라고 답을 해요."
"AI가 생기면서 오히려 팀워크가 약해진 느낌입니다."
놀랍게도 이 이야기는 특정 직무나 산업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R&D, 마케팅, 영업, 심지어 HR팀까지 협력이 무너지고 있다는 신호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었다. AI가 개인의 처리 능력을 키워주었지만, 그 이면에서는 협력 붕괴는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두 가지 질문부터 답해야 한다.
첫째, "AI 시대에 왜 협력은 약화되고, 어떻게 높일 수 있을까?"
둘째, 그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이다. "AI가 이렇게 잘하는데, 인간의 협력은 왜 여전히 필요한가?"
먼저 두 번째 질문에 대해 답을 해보자.
많은 리더는 직관적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AI가 다 해주니까, 협력은 덜 필요하지 않나요?”
하지만 실제 조직 데이터는 정확히 반대 방향을 가리킨다. AI가 강해질수록, 인간의 협력 가치가 더 커진다.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1) AI는 ‘작업’을 대체하지만, ‘문제 간 연결’을 대체하지 못한다.
AI는 하나의 문제를 깊게 파고드는 데 매우 강하다. 하지만 조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문제 A와 문제 B를 연결하고, 서로 다른 팀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이다. 이 흐름을 조율하는 일은, AI가 아니라 인간 협력의 영역이다.
AI는 문제를 풀고, 협력은 문제를 이어붙인다.
2) 조직의 80% 문제는 기술 문제가 아니라 조정(coordination) 문제다.
스타트업에서 대기업까지 동일하다.
- 누가 먼저 해야 하지?
- 어떤 팀이 결정권을 갖지?
- A팀의 속도와 B팀의 품질과 같은 우선순위가 엇갈린다.
이건 알고리즘이 아니라 규범, 기대, 신뢰가 풀어주는 문제다.
AI가 발전할수록 인간 간 조정 비용은 오히려 더 커진다.
3) AI가 개인을 강하게 만들수록, ‘집단 행동의 비대칭성’은 커진다.
AI는 개인 단위 퍼포먼스를 증가시킨다. 그러나 조직 성과는 개인 퍼포먼스의 합이 아니라 상호작용의 질로 결정된다. 한 사람이 AI로 20% 빨라져도 팀 간 연결이 무너지면 전체 시스템 효율은 오히려 떨어진다.
즉, AI는 개인 최적화는 가속하지만, 집단 최적화는 가속하지 않는다. 조직이 성과를 내려면, 그 사이 간극을 메우는 협력 메커니즘이 필요하다.
이제 다시 첫 번째 질문으로 가보자.
"AI 시대에 왜 협력은 약화되고, 어떻게 높일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연구가 있다.
바로 Nature Human Behaviour에 게재된 <Normative Foundations of Human Cooperation>(Fehr & Schurtenberger(2018))이다.
이 논문의 주장은 매우 강력하다. 사람들은 협력의 문제를 인센티브나 성향, 의욕의 문제라고 여긴다. 하지만 수십년 간의 협력 연구의 결론은 전혀 다르다.
협력은 능력도, 의욕도, 인센티브도 아니다. 협력은 규범적 판단–사회적 기대–도덕적 정체성의 시스템이다.
사람들은 협력할지 말지를 경제적 계산이 아니라
- “이 행동이 옳은가?”(규범적 판단),
- “남들도 이런 행동을 할까?”(사회적 기대),
-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도덕적 선호)로 판단한다.
이 심리적 동인이 흔들리는 순간, 협력은 자연적으로 붕괴된다. 그리고 AII 시대는 이 세 축을 모두 약화시키기 때문에 협력 붕괴가 더 빠르게 일어난다.
협력 연구의 기본은 늘 Public Goods Game(PGG)이다. 왜냐하면 PGG는 “팀 안에서 누가 얼마나 기여할 것인가”라는 현실 조직의 딜레마를 거의 완벽하게 모사하기 때문이다.
구조는 간단하다.
- 참가자 각자에게 동일한 자원이 주어진다.
- 각자 그 자원의 일부를 공동 계정(공유 풀)에 기여할 수 있다.
- 공동 계정에 모인 점수는 배율이 붙어(예: X 1.6) 다시 공평하게 나뉜다.
즉,
- 모두가 많이 내면 전체가 크게 이득이고,
- 누군가 적게 내고 남들이 많이 내면 그 사람만 큰 이득(무임승차)을 보는 구조다.
현실 조직과 동일하다. 초기에는 모두 협력하지만 라운드가 반복될수록 '나만 바보 되는 것 아니야?'라는 생각이 확산되면서 협력은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실험실에서도, 조직 현장에서도, 이 패턴은 동일하다.
위 그래프는 규범(norms)과 처벌(punishment)이 PGG에서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준다.
(a) 처벌이 없는 조건 — 규범만으로는 협력이 오래 유지되지 않는다
왼쪽 그래프는 처벌이 불가능한 환경에서 15번의 반복 게임을 돌린 결과다.
- 파란선 (With norm formation): “얼마를 내는 것이 옳은가?”를 미리 논의해 규범을 형성한 집단
- 빨간선 (Without norm formation): 아무 규범 없이 시작한 집단
두 집단 모두 시간이 지날수록 기여도가 줄어든다. 마지막에는 0에 수렴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즉, 규범을 말로 공유하는 것만으로는 free-riding을 이길 수 없다.
“우리 다같이 열심히 협력해보자”라는 선언만으로 조직의 협력은 유지되지 않는다.
(b) 처벌이 있는 조건 — 규범이 있을 때 협력은 높고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오른쪽 그래프에서는 게임 후에 서로를 처벌(punish)할 수 있는 기능이 추가된다. 심지어 처벌한 사람을 되치기 처벌(counter-punishment)도 허용된다. 이 환경은 협력에 매우 적대적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래프는 완전히 다른 결과를 보여준다.
- 파란선 (With norm formation): 규범+처벌 집단은 기여도가 0.8~0.9 수준에서 안정적으로 유지
- 빨간선 (Without norm formation): 규범 없이 처벌만 존재 집단은 0.6대에서 정체, 후반에는 약간 하락
“규범이 있을 때, 처벌은 그 규범을 정당하게 집행하는 도구가 된다.”
규범 없는 처벌은 공격처럼 보이고, 규범 있는 처벌은 공정한 행동으로 해석된다.
협력의 핵심은 ‘규범(norms)’이고, 처벌(punishment)은 그 규범을 유지하기 위한 보조 메커니즘이다. 처벌 없이도 협력은 발생하지만, 규범이 약해지면 처벌이 있어야만 협력이 지속된다.
즉, 핵심은 규범이고, 규범을 지지하는 장치가 처벌이다.
Fehr & Schurtenberger(2018)는 이렇게 주장한다.
협력이 생기는 본질적 이유는
- 규범적 판단 (“이게 옳다”)
- 사회적 기대 (“남들도 이렇게 할 것이다”)
- 도덕적 선호 (“나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다.
여기에는 처벌이 없어도 작동하는 메커니즘이 존재한다. 실제로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협력은 처벌 없이도 상당 수준 유지된다.
인간 협력의 핵심은 규범적 고려(normative considerations)다. 협력은 규범–기대–도덕성의 결합체이며, 처벌은 규범을 유지하기 위한 ‘사회적 선호(social preferences)’의 일부일 뿐이다. 즉, 처벌의 근원조차 결국 규범을 지키고 싶어 하는 마음에서 나온다.
반복된 협력 실험 결과,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다음의 제도를 선택한다.
- 규범이 분명하고,
- 공동으로 합의된 기준이 있으며
- 중앙에서 정당하게 집행되는 처벌 규칙
즉, 협력 유지에 가장 효과적인 제도는 <norms + central punishment> 체계다. 규범은 스스로 유지되지 않는다. 규범은 정당한 권위에 의해 일관되게 집행될 때 유지된다.
AI 시대에는 다음 세 가지가 동시에 일어난다.
1) 규범의 약화
개인은 AI를 통해 대부분의 업무를 독립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그 결과 함께 해야 하는 이유는 약해지고, 규범적 기대는 약해진다.
2) 기대의 붕괴
“저 팀도 AI가 있는데, 왜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지?”
“우리만 협력해봤자 의미가 있나?” 라는 인식이 퍼진다.
조건부 협력 규범의 핵심인 '남들도 협력할 것이다'라는 기대가 깨져버린다.
3) 도덕적 정체성의 축소
협력은 정체성 기반 행동이다. 하지만 AI는 개인을 효율성 중심으로 정의한다.
'나는 협력적인 사람이다'라는 정체성이 '나는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하는 사람이다'로 대체되면서 도덕적 정체성이 작동할 자리가 줄어든다.
결과적으로 AI 시대는 협력의 심리 엔진(규범–기대–정체성)을 동시에 약화시키는 환경이 된다. 협력이 붕괴된 이유는 의욕이나 성향의 문제가 아니라 규범 환경 자체가 구조적으로 흔들리는 상황 때문이다.
수 십년 간의 협업 연구가 말하는 회복 전략은 일관적이다.
1. 규범 재정립: '협력은 옳은 행동'임을 다시 세워라
협력은 스킬이 아니라 규범적 판단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첫 단계는 협력을 ‘기술’이 아니라 ‘옳은 행동’으로 재정의하는 것이다.
- “우리 팀은 어떤 행동을 기본값으로 삼는가?”를 함께 규정한다.
- 지연, 무임승차, 약속 불이행은 능력 문제가 아니라 규범 위반임을 분명히 한다.
- 규범이 분명해지면, 구성원들은 서로에 대한 기대(expectations)를 다시 갖기 시작한다.
- 규범 위반은 반드시 일관적으로 다루어라. 이때 핵심은 규범 없는 처벌이 아니라, 규범 기반 처벌이다.
- 규범은 협력의 헌법과 같다.헌법 없이 경찰만 강화하면 사회는 더 혼란스러워진다.
2. 기대 회복: “우리 팀은 서로 돕는다”는 신호를 확산하라
- 협력의 50% 이상은 기대가 결정한다. 사람들은 “남들도 협력할 것이다”라고 믿을 때 비로소 움직인다.
- 협력 사례를 적극적으로 가시화하고 조직 내에서 확산시켜라.
- cross-functional 협업 데이터를 투명하게 공유해, “실제로 협력하고 있다”는 경험적 기대를 회복시켜라.
- 협력을 성과가 아니라 규범 준수의 표식으로 인정하라. - 기대는 협력의 가속 페달이다. 기대가 올라가면 협력은 자연스럽게 확장된다.
3. 조건부 협력자를 다시 움직여라: 협력 시스템의 70%는 이들이 만든다
대부분의 구성원은 ‘조건부 협력자(conditional cooperators)’다.
- 남들도 한다면 나도 한다, 규범이 작동한다면 나도 따르겠다는 집단이 움직여야 협력 시스템이 돌아간다.
- 타 팀을 경쟁 상대가 아니라 협력 파트너로 재인식시키는 메시지를 설계하라.
- 협력의 초기 행동을 촉발하는 작은 실험(quick win)을 배치하라.
- 팀 간 상호의존성을 보여주는 시각화 데이터를 활용하라.
- 조건부 협력자는 조직의 집단 행동 기어다. 이들이 다시 움직이는 순간, 협력은 기하급수적으로 회복된다.
4. 도덕적 정체성 강화: “우리는 협력하는 팀이다”를 스토리로 만들라
- 협력은 단순한 전략이 아니라 도덕적 정체성의 문제다.
- 사람들은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기준에 맞춰 행동한다.
- 협력을 팀의 핵심 정체성으로 소개하라.
- “우리는 서로 돕는 팀이다”라는 공동의 서사를 스토리로 만든다.
- 협력을 실천한 사람을 성과자가 아니라 문화의 수호자로 다루어라.
- 도덕적 정체성이 강화되면 협력은 자기 일관성(self-consistency)의 문제가 된다. 이 단계에 이르면 협력은 강요하지 않아도 지속된다.
AI가 인간의 작업(work)을 대체할수록 인간의 협력(cooperation)은 조직의 핵심 기반이 된다.
협력은 능력도, 의욕도, 인센티브도 아니다. 협력은 규범적 판단–사회적 기대–도덕적 선호의 시스템이다.그리고 이 시스템은 오직 인간만이 구축할 수 있다. AI가 개인을 강하게 만드는 시대에 팀을 강하게 만드는 것은 협력의 심리 엔진을 다시 켜는 일이다.
부록.
Fehr & Schurtenberger의 논문 p.23~24에서 협력이 생성, 붕괴, 회복되는 과정을 수십년 간의 대표적인 협력 연구 10가지를 통해 정리한다. 혹시, 원 논문이 필요하면 개별적으로 연락주길 바란다(crethink@paran.com).
아래는 핵심만 너무 길지 않게 압축했다.
① 대화(communication)가 있으면 협력은 즉시 상승한다 (Fig. 1a)
사람들은 사전 소통만 있어도 협력률이 급등한다.
(공통 규범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② ‘남들도 협력할 것’이라는 기대만으로 협력은 증가한다 (1b)
절반 이상이 ‘조건부 협력자’이다. “남들이 한다면 나도 한다”는 구조다.
③ 규범 없이 반복되면 협력은 자연스럽게 감소한다 (1c)
이는 조직에서 협업이 서서히 무너지는 패턴과 완전히 동일하다.
④ 같은 사람과 계속 협력하면 협력이 유지된다 (1d)
관계의 지속성은 규범 형성의 핵심 환경이다.
⑤ 프레이밍(상황의 이름)만 바꿔도 협력은 커진다 (1e)
‘커뮤니티 게임’이라는 이름만 붙여도 협력이 증가한다.
규범적 해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⑥ 규범 위반자에 대한 처벌은 강력하지만, 때로는 과잉 처벌도 발생한다 (1f)
처벌은 규범을 지키게 하지만,
잘못된 규범 환경에서는 협력자를 공격하는 역기능도 생긴다.
⑦ 반사회적 처벌 수준은 문화별로 크게 다르다 (1g)
문화적 규범 차이가 협력 유지에 큰 영향을 미친다.
⑧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처벌 가능한 제도’를 더 선호한다 (1h)
규범 집행 장치가 있는 환경을 사람들이 더 안정적으로 선택한다.
⑨ 처벌만 있어도, 보상만 있어도 협력은 증가한다 (1i)
단 하나의 규범 집행 장치만 있어도 협력은 상승한다.
⑩ 협력 성향이 높은 사람들끼리 모이면 협력이 오래 유지된다 (1j)
팀 구성 그 자체가 협력의 품질을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