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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부의 심리학

by 박진우

깐부의 심리학: 어떤 동맹관계가 오래갈까?


조직에서 ‘깐부’는 단순한 친밀감을 뜻하지 않는다. 조직심리학자로서 나는 깐부를 “함께 위험을 짊어지면서 서로의 선의를 신뢰할 수 있는 관계”로 정의한다.


조직심리학에서는 깐부와 같은 관계는 개인적 호감보다 예측 가능성(Integrity), 상호성(reciprocity), 공동 리스크(shared adversity)라는 최소 세 가지 심리 조건이 충족될 때 형성된다고 본다.


최근 기업 생태계에서도 이 패턴이 뚜렷이 나타난 사례가 있다. 바로 NVIDIA 젠슨 황–삼성 이재용–현대차 정의선의 3자 회동이다. 비즈니스 뉴스로 소비됐지만, 심리학적으로 보면 깐부의 탄생 조건이 집약된 장면이다.



1. 깐부의 첫번째 조건: 신뢰의 3요소 충족


신뢰 형성은 Mayer, Davis & Schoorman(1995)의 3요소, 즉, 역량(ability), 선의(benevolence), 진실성(Integrity)에 대한 평가로 이루어진다(Mayer, R. C., Davis, J. H., & Schoorman, F. D. (1995). An integrative model of organizational trust. Academy of management review, 20(3), 709-734.).


1) Ability(역량): “일을 맡겨도 되는가?”(과업 리스크)

- 문제를 해결할 기술, 판단, 경험이 충분한지에 대한 평가다. 능력이 없으면 아무리 착해도 신뢰는 형성되지 않는다.

2) Benevolence(선의): “이 사람이 나를 이용하지 않을까?”(대인 리스크)

- 상대가 나의 이익, 감정, 상황을 고려하는 ‘관계적 선의’에 대한 판단이다. 선의가 약하면 능력이 높아도 위험한 사람으로 인식된다.

3) Integrity(진실성): “말과 행동이 일관되는가?”(예측 불가능성 리스크)
- 약속, 원칙, 기준을 상황에 따라 바꾸지 않는지에 대한 평가다. 예측 가능성이 낮으면 어떤 능력·선의도 신뢰를 방해한다.


조합별 해석

- Ability 없이 Benevolence만 높은 사람: “좋은 사람이지만 위험한 동료”

- Ability는 높은데 Benevolence가 낮은 사람: “능력은 있으나 이용할 수도 있는 사람”

- Ability와 Benevolence가 있어도 Integrity가 낮은 사람: “언제 배신할지 모르는 사람”

- 세 요소가 모두 높은 사람만이 심리적 취약성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며, 신뢰가 형성되는 사람이다.


젠슨 황–이재용–정의선, 세 사람은 지난 5년간 AI·차량용 반도체·모빌리티 OS라는 영역에서 서로의 핵심 역량을 인정해 왔다.

- NVIDIA: AI 반도체·OS 플랫폼

- 삼성: 메모리·파운드리

- 현대차: 자율주행·전기차 플랫폼


서로의 지분을 침범하지 않으며, 역량 구조는 상호보완적이다. 또한, 세 리더는 상대의 성과를 자원으로 인식하는 Giver적 접근을 취해 왔다. 이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동맹은 깐부로 발전할 수 있다.


2. 깐부의 두 번째 조건: 공동 리스크(shared adversity)의 공유


Bastian et al.(2014) 연구는 공동의 어려움(shared adversity)이 깊은 상호 협력을 촉진한다고 밝혔다. 현재 한국 제조 및 모빌리티 산업은 다음 세 가지 공통 리스크를 안고 있다.

- AI 공급망의 글로벌 종속 리스크

- 전장 시장의 대전환

- 메모리 중심 생태계의 구조적 한계


이 위기는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세 기업의 생존 가능성을 함께 흔드는 동일한 충격이다. 따라서 이번 회동은 단순한 친분 과시가 아니라 “우리는 같은 폭풍 속에 있다”는 공동 리스크 인식(shared fate)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깐부는 좋은 시절에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위기가 닥쳤을 때 서로가 진짜 리스크 파트너인지 판별될 때 생긴다.


3. 깐부의 세 번째 조건: 상호 Giver의 안정성


Grant(2013)에 따르면 협력 유지 여부는 개인 성향보다 상호성이 구조화되어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 이번 회동에서 세 기업은 단기 거래가 아닌 장기 플랫폼 수준의 상호성 구조를 구축하고 있다.


- 삼성은 NVIDIA에게 파운드리라는 생산 기반을 제공하고,

- NVIDIA는 삼성·현대차 생태계에 AI 플랫폼을 공급하며- 현대차는 OS·모빌리티 데이터·AI 제품군을 공유한다.


세 기업 모두 Matcher적 계산(“내가 준 만큼만 받아야 한다”)을 최소화하고, 보완적 생태계 구축이라는 Giver 중심의 전략을 취하고 있다.


4. 깐부의 네 번째 조건: Taker의 부재


협력 구조에서 Taker가 1명만 있어도 팀의 심리적 안전감과 신뢰는 붕괴한다(Grant & Gino, 2010). 이번 회동은 적어도 현재 시점에서 단기 수익을 노리는 Taker적 접근이 배제된 상태에서 이루어졌다. 이는 동맹의 내구성을 대폭 높인다.


5. 깐부의 다섯 번째 조건: 여유에서 비롯된 전략적 시야


Mani et al.(2013)의 scarcity 연구는 사람들은 압박 속에서는 타인을 ‘자원’이 아니라 ‘부담’으로 인식한다고 말한다. 흥미롭게도 이번 회동은 세 기업 모두에서 abundance 사고방식이 강화된 시점에 이루어졌다.


NVIDIA의 AI 수요는 폭발하고 있으며, 삼성의 HBM·파운드리 수요 회복을 기대하는 중이며, 현대차는 글로벌 판매량 개선되고 동시에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전환하고 있다. 풍요 지향적 사고는 협력적 선택을 촉진하고, Giver 전략을 강화한다. 하지만, 결핍(scarcity)은 관계를 Taker 모드로 만든다.



깐부는 단순한 친분이 아니라, 심리 및 전략적 설계다.


젠슨 황–이재용–정의선의 회동은 다섯 가지 깐부 조건이 동시에 충족된 상징적 사건이다.


1) 상호 보완적 역량 구조를 명확히 하라

경쟁하지 않는 영역에서 협력이 가장 깊어진다.

2) 공동 리스크를 명확히 인식하라

위기의 공유는 상호성을 강화시키는 가장 강력한 심리적 자극이다.

3) 상호성 규범을 제도화하라

개인적 호의가 아니라 시스템 차원의 상호성이 협력을 유지시킨다.

4) Taker를 배제하라

협력 생태계에서 Taker는 1명만 있어도 시스템을 붕괴시킨다.

5) 풍요 사고를 유지하라

scarcity는 신뢰를 파괴하고 abundance는 관계를 협력적으로 전환한다.


젠슨 황–이재용–정의선의 회동은 단순한 비즈니스 이벤트가 아니라 깐부를 만드는 다섯 가지 조건이 동시에 충족된 상징적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이 다섯 가지 깐부의 조건이 조합될 때 깐부는 탄생한다. 그리고 이런 깐부는 단기 거래를 넘어서 전략, 혁신, 생존을 함께 설계할 수 있는 동맹으로 진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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