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carcity(결핍)가 조직을 잠식할 때, 리더는 어떻게 개입해야 할까?
PwC Global Workforce 2025 survey에서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상사에 대한 신뢰 영역이었다. 실제 기업의 리더들은 흔히 '요즘 직원들이 상사를 잘 믿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번 서베이 데이터는 좀 더 명확한 구조를 보여준다.
전 세계 48개 국가 28개 산업군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5만 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PwC Workforce 2025에 따르면, 한국 직장인의 직속 상사 신뢰율은 30%로 글로벌 평균(58%)의 절반이다.
이 낮은 신뢰의 핵심 원인은 무엇일까?
놀랍게도 가장 강력한 예측 요인 중 하나가 직원의 재정 상태다. 저축 여유가 있는 직원과 재정 압박을 받는 직원 간의 신뢰 격차는 항목에 따라 20~30%포인트에 이른다.
직원들이 상사를 덜 믿는 이유는 상사의 행동 때문만이 아니라, 직원이 처한 재정적 심리 상태가 신뢰 판단을 왜곡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재정 문제는 리더가 통제할 수 없는 변인처럼 보이지만, 리더가 조직의 성과와 직결되는 문제다.
Shafir & Mullainathan의 Scarcity는 재정 압박이 단순한 스트레스가 아니라 인지 체계를 전체적으로 바꾸는 구조적 심리 현상임을 설명한다.
■ 터널링(Tunneling)
결핍은 특정 문제(돈)에 과도하게 집중하도록 만들고 다른 정보와 신호를 차단한다. 이때 상사의 행동, 피드백, 공정성 신호 같은 요소는 사소한 위협에도 과잉 반응하도록 해석된다.
■ 인지 용량 감소(Bandwidth Tax)
재정적 걱정은 작업 기억의 여유를 20~30% 가까이 잠식하며, 그 결과 판단·기억·감정조절이 약화된다. 작은 지연, 애매한 메시지, 불명확한 지시가 “이 사람은 나를 챙기지 않는다”는 결론으로 비약한다.
■ 단기주의 강화(Short-termism)
희소성은 인간을 장기 목표에서 단기 생존 모드로 전환시킨다. 직무 의미, 경력 개발, 팀 기여 등 고차원적 동기는 우선순위에서 탈락한다. 그 결과는 PwC의 세 번째 그래프가 보여주듯 명확하다.
재정 압박을 받는 직원은 출근 동기, 자부심, 성과 기대에서 모두 10~15% 낮은 수치를 보인다. 재정 압박은 조직 환경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직원이 조직을 해석하는 방식을 바꾼다.
직장에서 가장 빈번하게 접촉하며 평가, 피드백, 성장 기회의 키를 쥔 존재는 상사다. Scarcity 모드의 직원은 특히 상사의 행동을 위협 신호(threat signal)로 읽기 쉽다.
- 모호한 지시 → 무관심
- 늦은 피드백 → 케어 의지 없음
- 사소한 비일관성 → 신뢰 붕괴
심리적으로는 상사를 잠재적 리스크를 관리하는 존재로 보게 된다. 신뢰는 타인의 의도에 대한 해석이다. Scarcity는 그 해석 알고리즘을 바꿔 버린다.
개인의 재정 문제는 리더가 통제할 수 없는 변인처럼 보이지만,
개입할 수 있는 여지는 있다.
리더가 직원의 재정 상황을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Scarcity 모드로 인해 발생하는 인지 왜곡, 정서적 경직, 관계적 불신은 개입 가능하다.
1) 인지적 재평가(Cognitive Reappraisal): 위협 평가 구조를 수정하라.
부하 직원이 상황을 “위협”으로 지각하지 않도록 리더는 행동의 예측가능성, 일관성, 명료성을 높여야 한다.
- 말과 행동의 일치
- 결과·평가 기준의 투명화
- 불확실한 지시 최소화
- “왜 이렇게 하는가”를 명확히 설명
이런 행동은 부하 직원의 위협 인식을 환경적 요구로 재평가하게 만든다. 연구에 따르면 인지적 재평가는 성취 행동, 주의 회복, 불안 감소를 즉각적으로 이끌어 낸다.
2) Cognitive Offloading: 부하직원의 인지적 부담을 줄여라.
Scarcity 모드에서는 사소한 할 일조차 인지적 부담을 키운다. 리더가 다음을 제공하면 문제는 크게 완화된다.
- 명확한 우선순위
- 업무 프로세스의 단순화
- 체크리스트 기반의 절차
- 작은 성공(small wins) 루틴
이는 직원의 인지 용량을 회복시키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3) Goal Shielding: 장기 목표가 터널 밖으로 나오게 한다.
장기 목표를 지속적으로 활성화하는 리더는 Scarcity가 만드는 단기주의를 약화시킬 수 있다.
- 경력 관리 및 성장 관련 대화
- “지금 이 업무가 어디로 연결되는가”를 설명
- 장기 로드맵 공유
- 팀의 중기 목표를 시각화
사람들은 목적이 다시 활성화된 순간 생존 모드에서 벗어날 수 있다.
4) Social Buffering: 신뢰할 수 있는 인간관계가 스트레스를 상쇄한다.
신뢰는 Scarcity를 완충하는 가장 강력한 보호 요인이다. 특히 동료 신뢰와 리더의 정서적 지지가 강력한 효과를 낸다.
- 리더의 일관된 관심 표현
- 동료 간 협업 강화
- 짧은 공감 대화
- 팀 안에서 “내 편이 있다”는 경험 제공
정서적 지지 하나만으로도 편도체 활성은 감소하고, 전전두피질의 조절 기능이 회복될 수 있다.
결핍이 신뢰와 동기를 떨어뜨리는 것은 재정 상황 그 자체보다
재정 압박이 ‘인지 시스템’을 점령하기 때문이다.
부하 직원이 상사를 불신하는 이유 중 하나는 상사가 갑자기 무능해졌기 때문이 아니다. Scarcity가 직원의 사고체계를 바꾸기 때문이다. 리더는 직원의 지갑을 바꿀 수 없다. 그러나 직원의 주의, 감정, 목표 조준점이 바뀌지 않도록 환경을 설계할 수 있다. 명료성, 일관성, 예측 가능성, 정서적 지지, 의미 연결, 이 다섯 가지가 갖춰지면 결핍은 사고를 지배하지 못한다.
결국, 재정 압박은 피할 수 없지만 Scarcity가 조직을 잠식하도록 방치할 필요는 없다. 리더십의 핵심은 바로 그 지점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