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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은 과학이다?

by 박진우

흉악범의 얼굴이 공개되면 가장 인기 있는 댓글은 '관상은 과학이다'이다.

사진이 공개되는 순간, 사람들은 직감적 느낌을 공유한다. 얼굴이 마음의 창이라는 믿음은 빠르게 확산된다.


그런데, 과연 관상은 과학일까?


특히, 인간의 어두운 성향(마키아벨리즘, 사이코패시, 나르시시즘 같은 Dark Triad)은 인간의 밝은 특성에 비해 얼굴에 더 잘 드러날까?


우리가 관상은 과학이라고 믿는 이유는
과학적 근거가 있을까, 단지 집단적 착각일까?

최근 발표된 흥미로운 연구가 이 질문을 실험적으로 검증했다.


다크 성향은 얼굴에 드러나는가?


2024년 Masui 연구팀은 다음과 같은 실험을 설계했다.


실험

- 일본 성인 400여 명의 Dark Triad 성향을 측정(DTDD-J)한 다음,

- 점수 상/하위 집단의 얼굴 사진 촬영한 다음 얼굴의 눈, 코, 입 윤곽 좌표를 기준으로 정렬 후 평균화해 High-DT / Low-DT 집단의 평균 얼굴(composite face) 제작했다.

- 그리고 새로운 참가자 170명에게 이 얼굴들을 보여주고, 누가 더 Dark-Trait이 높아 보이는지 평가하도록 했다.


그림1.jpg


출처: Masui, K., Yoshizumi, R., & Nakajima, H. (2024). Men with high dark triad personality traits can accurately infer dark triad traits from other people’s faces. Frontiers in Psychology, 15, 1363399.


실험 결과, 참가자들은 여성 얼굴에서는 세가지 다크의 특성(사이코패시, 마키아벨리즘, 나르시시즘)을 우연 수준 이상으로 정확히 식별했다. 하지만, 남성 얼굴은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식별이 불가능했다.

그런데, 남성 관찰자 중 Dark-Trait 점수가 높은 사람은 다른 남성의 Machiavellianism을 더 정확하게 감지했다.


다시 말해, 다크가 다크를 알아본다.


이 연구를 곧바로 ‘관상은 과학이다’로 확장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렇다고 이 연구 결과를 곧바로 <관상은 과학이다>는 주장으로 확장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첫째, 이 연구는 합성 얼굴(composite face) 을 사용했다. 이는 실제 인물의 얼굴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얼굴을 평균화해 통계적으로 공통된 특징만 남긴 이미지다. 현실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개별 얼굴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보기 어렵다.


둘째, 결과는 여성 얼굴에서만 식별 가능했고, 남성 얼굴에서는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았다. 성별에 따라 효과가 달라진다는 점에서 일반화를 경계해야 한다.


셋째, 판단 정확도는 관찰자의 Dark 성향 수준에 따라 달라졌다. 즉, 얼굴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누가 보느냐의 문제다.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얼굴 인상이 실제 행동이나 장기적 성향과 일치하는지를 검증하지 않았다. 즉, 얼굴 인상이 반사회적 행동을 예측한다는 증거는 전혀 아니다.


우리가 가져가야 할 메시지는 간단하다. 관상이 과학이라는 단순 결론이 아니라, 행동이 얼굴 표현을 통해 드러날 때가 있다는 가능성 정도다.

다크 특성은 얼굴 ‘생김새’가 아니라 ‘표현’과 ‘행동’에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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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여성들이 지니고 있는 성범죄자의 이미지는 실제 범죄자와 너무 다르다.


사이코패시가 얼굴에 드러난다고 할 때 많은 사람이 떠올리는 것은 눈매, 턱선, 뼈 구조 같은 정적인 외형적 요소이다. 그러나 실제 연구들은, 다크 특성의 흔적이 얼굴 구조가 아니라 표정 조절 방식, 근육, 비언어적 행동 패턴에 나타난다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예를 들어, Porter & Brinke(2008)의 연구에서 사이코패시 점수가 높은 사람들은 감정 상황에서 ‘duping delight’라고 불리는 거짓 미소를 더 자주 사용했다. 그들은 진짜 감정을 느끼지 않지만, 감정 표현을 정교하게 연기함으로써 상대를 속이는 데 능숙했다. 즉, 표정이 도구로 사용된 것이다.


또한 MacLaren et al.(2019)은 감정을 모방하는 실험에서 사이코패시 고점자들이 일반인과 달리 얼굴 근육 활성화 시점을 조절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그들은 감정을 거의 연기하듯이 표현했다. 사이코패시 점수가 높으면 감정 연기에 탁월하다.


비슷한 결과는 Tognetti et al.(2013)의 협력 게임에서도 나타났다. 협력 게임에서 마키아벨리언 성향이 높은 사람들은 친절한 표정을 의도적으로 사용하여 신뢰를 획득한 뒤, 결정적 순간에 배신했다. 친절한 인상이 선의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전략적 조작 수단으로 사용된 것이다.


다크 트라이어드의 단서는 얼굴의 뼈 구조가 아니라, 얼굴의 ‘사용 방식’에 있다. 우리가 읽어야 하는 것은 관상이 아니라 실제 행동과 표현 방식이다.

다크가 다크를 더 잘 알아보는 이유


관상보다 행동이 중요하다고 해도, '다크가 다크를 더 잘 알아본다'는 결과는 무시할 수 없다.


Wheeler, Book & Costello(2009)는 참가자들에게 단 몇 초의 영상(thin slices)만을 보여주고 영상 속 인물의 사이코패시 정도를 추정하게 했다. 그 결과 사이코패시 점수가 높은 참가자들이 더 정확하게 추정했다. 그들은 눈빛의 흔들림, 표정 조절 방식, 말의 리듬 같은 비언어적 미세 단서를 일반인보다 민감하게 감지했다. 연구진은 이를 사회적 포식자로 살아온 경험이 같은 포식자의 흔적을 감지하는 능력으로 발달한 결과로 해석했다.


비슷한 결론은 Gillespie et al.(2019)의 교도소 연구에서도 나타났다. 수감자들이 서로의 성향을 평가했을 때, 사이코패시 점수가 높은 수감자가 타인의 기회주의적 성향과 공격성을 더 정확히 평가했다. 조작의 기술을 익힌 사람은 조작의 흔적을 더 민감하게 읽는다


결국 다크 특성 보유자의 감지 능력은 얼굴의 생김새가 아니라 행동의 리듬과 미세한 단서를 읽는 경험 기반 지각 능력이다. 다크는 얼굴이 아니라 행동 패턴 속에서 서로를 인지한다.


얼굴은 포장이고, 진짜 얼굴은 행동이다. 얼굴은 인상을 주지만, 행동은 정체성을 드러낸다.


따라서 우리는 관상보는 능력을 강화할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행동 데이터, 비언어적 단서, 상황 속 선택 패턴을 분석해야 한다.


부록. Dark-Risk 조직 감지 행동 시그널 12가지


1) 책임 전가 패턴(Blame shifting)

문제가 발생하면 즉시 원인을 외부로 돌리고, 자신과 관련된 책임을 부정하거나 회피한다.

2) 규칙의 선택적 적용(Strategic rule bending)

규정은 자신에게 유리할 때만 인용하고, 불리할 때는 사유와 핑계를 만들어 회피한다.

3) 감정 없는 사과(Instrumental apology)

문제 이후 상황 정리를 위한 사과만 존재하고, 책임, 공감, 반성 요소가 없다. 사과조차도 전략적 도구로 사용한다.


4) 잦은 이미지 관리(Impression engineering)

성과보다 평판 관리, 관계 정치, 상향 보고에 몰두한다. 말과 행동의 간극이 크고 보여주기가 강하다.


5) 정보 독점 및 차단(Information control)

정보 비대칭을 활용하여 권력을 구축한다. 협업보다는 자신만 알고 있는 정보로 우위를 유지하려 한다.


6) 과도한 경쟁성 & 냉정한 손절(Dominant opportunism)

협력적일 때도 동맹 유지가 아닌 실익 계산이 우선이다. 필요가 끝나면 관계를 빠르게 단절하거나 무시한다.


7) 타인의 취약점 감지 및 활용(Exploitation awareness)

사람의 약점을 민감하게 파악하고 이를 전략적으로 이용하려 한다.


8) 규범 경계 테스트 행동(Boundary testing)

규칙, 윤리, 역할 경계를 조금씩 넘으며 조직의 허용선을 테스트한다.

9) 공적 vs 사적 행동 불일치(Reputation split)

상급자 앞 행동과 동료·후배 앞 행동이 극단적으로 다르다.

10) 부정 신호에 대한 무감각(Risk immunity)

부정적 피드백에 반응하지 않는다. 비판을 공격으로 인식한다.


11) 팀 내 갈등을 에너지로 사용(Conflict leverage)

갈등을 해결하려 하기보다 갈등을 이용해 구조적 이익을 취하려고 한다.


12) 일관된 공감 부족 & 도구적 관계(Social coldness)

이해, 공감, 관계 복원이 거의 없다. 타인을 수단으로 인식하며, 실패한 관계에서도 감정적 교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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