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반가운 책을 만났다.
Angus Fletcher의 고유지능(Primal Intelligence)은
AI 시대를 살아가고 대응해야 하는 인간에 관한
문제의식을 과감한 아이디어로 흥미롭게 풀어냈다.
이 책은 인간의 지능을
논리와 분석으로만 정의해온 현대 교육과 AI 중심 사고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를 파고든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Intuition(직관), Imagination(상상력), Emotion(감정), 그리고 Common sense라는
네 가지 ‘원초적 지능(고유 지능)’을 제시한다.
그런데 읽다보면 계속 마음에 걸리는 지점이 있다.
바로 번역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common sense는 ‘상식’이 아니다
출판 실무의 관점에서 보면 이해는 된다.
짧고, 익숙하고, 장 제목으로도 쓰기 좋은 단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선택은, 이 책의 핵심 개념을 크게 오해하게 만드는 번역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common sense는
“사람들이 흔히 알고 있는 지식”이나
“이 정도는 다 아는 것”이 아니다.
저자가 말하는 common sense는
- 상황이 불확실할 때,
- 논리 이전에 자동으로 작동하는 판단 능력
즉,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니라
몸과 정서, 경험 기반의 판단 감각이다.
우리말의 ‘상식’은 Sense라기보단 실제로는 common knowledge,
즉 ‘다수가 알고 있는 지식’에 더 가깝다.
‘상식(常識)’은 사전적으로는
“일반적인 사람이 다 가지고 있거나, 가지고 있어야 할 지식이나 판단력”이다.
정의만 보면 common sense와 크게 어긋나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실제 언어 사용에서 발생한다.
우리말에서 ‘상식’은 판단력보다 지식의 의미가 훨씬 강하다.
“그건 상식이잖아”라는 말은 대개 상황을 잘못 판단했다는 뜻이 아니라, 알아야 할 걸 몰랐다는 비난이다.
아마도 영어 개념이 직접 번역되기 이전에
일본어 常識 번역을 경유하며 굳어진 언어 습관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크다.
그 결과, 영어의 common sense가 가리키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작동하는 판단 감각은
우리말로 옮겨지는 순간,
“다들 아는 기본 지식”이라는 의미로 축소되기 쉽다.
이로 인해 Primal Intelligence처럼
인간의 판단 능력을 핵심 주제로 삼는 책에서는
독해의 방향 자체를 바꿔버릴 수 있다.
이 책에서 말하는 common sense failure는 무지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정보는 충분하고, 논리는 완벽한데
판단 시스템의 경고를 무시한 오작동이다.
이 지점에서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다.
영어의 common sense를 다른 언어들은 지식 중심 표현으로 직역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른 언어권은 오래전부터 common sense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불확실한 상황에서 어떻게 판단하는가로 인식해왔다.
프랑스어에서 le bon sens는 ‘좋은 감각’, ‘건전한 판단’이다.
지식이 아니라 판단의 질을 가리킨다.
독일어에서는
gesunder Menschenverstand,
즉 ‘건강한 인간의 이해력’이라고 부른다.
사회적 지식이 아니라 상황을 읽는 능력이다.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주장은 인간의 지능이
논리(logic) 중심으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다는 데 있다.
직관, 상상력, 감정, 그리고 common sense는
논리의 보조 수단이 아니라
논리와 대칭되는 독립적인 판단 시스템이다.
그런데 common sense를 ‘상식’으로 번역하면,
저자가 의도한 구조와 완전히 다르게 인식될 수 있다.
요즘 쏟아지는 AI, 지능. 미래 담론 중에서도
이 책은 인간적인 통찰을 담고 있다.
그래서 더 아쉽다.
만약 이 책을 읽으며
상식이라는 말이 계속 걸린다고 느꼈다면,
그건 과민함이 아니라 정확한 감각이다.
common sense를 ‘판단 감각’으로 옮기되,
곧바로 “논리 이전에 자동으로 작동하며, 불확실한 상황에서 방향을 잡는 능력”임을
분명히 밝혀주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의 common sense 번역에 있어 가장 좋은 전략은 하나의 단어로 고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common sense는 본래부터
지식, 판단, 감각이 겹쳐 있는 개념이다.
그래서 현실적인 해법은
기본 번역을 두고, 의미를 지속적으로 보정하는 방식이다.
이를테면 기본 번역은 '판단 감각'으로 하되,
그리고 이후 문맥에 따라
‘인간 고유의 판단 감각’, ‘원초적 판단 감각’처럼
의미를 조금씩 조정해가는 편이 훨씬 낫다.
번역은 하나의 정답을 고르는 작업이 아니라,
독자가 어디에서 판단하고, 무엇을 오해할지를 관리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