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롭다는 말은 칭찬으로는 쉽지만,
실력으로 입증하기는 어렵다.
‘지혜’의 정의가 다르기 때문이다.
주요 지혜 연구자 중 한 명인 Monika Ardelt는 지혜를 성격적 특성으로 말한다.
지혜는 책에 있지 않고, 사람에게 있다고 말한다.
지혜 = (인지) + (성찰) + (정서/연민)의 구조다.
지혜는 “깊이 이해하려는 태도”,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려는 성찰”, “타인을 도우려는 정서적 성향”의 결합이다.
여기서 지혜는 성격적 특성이다.
베를린 지혜 프로젝트(Paul B. Baltes 등)는
같은 단어를 쓰면서도 정반대로 정의한다.
베를린 지혜 패러다임의 지혜는 삶의 근본적 문제를 다루는
‘전문적 지식 체계(expert knowledge system)’다.
여기서 지혜는 '좋은 사람'이 아니라, '사고의 품질'이다.
그리고 지혜로운 사고에는 다섯 가지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실적 지식, 절차적 지식, 생애/맥락 이해, 가치 상대성 인식, 불확실성 인식과 관리다.
여기서 지혜는 '성격 특성'이 아니라 ‘복잡한 문제를 다루는 전문성’이다(Baltes, P. B., & Smith, J. (2008). The fascination of wisdom: Its nature, ontogeny, and function. Perspectives on psychological science, 3(1), 56-64.).
Ardelt의 지혜는 운전 태도다.
난폭하지 않다. 배려한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 등을 말한다.
반면에 베를린 지혜 프로젝트의 지혜는 운전 기술이다.
빗길 제동거리. 급커브 감속. 돌발 상황에서 대응 기술 같은 것이다.
태도가 좋다고 기술이 좋은 것도 아니고, 기술이 좋다고 태도가 좋은 것도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태도를 보고 '운전을 잘한다'고 말한다.
지혜에 대해서도 같은 일이 벌어진다.
성격적 특성으로서의 지혜는 지혜로움의 폭을 넓힌다.
차분함, 공감, 성찰 같은 태도를 기준으로 삼으면
많은 사람이 '지혜로워 보일' 수 있다.
반면 베를린 지혜 프로젝트의 정의는 지혜를 좁고 깊게 만든다.
이 정의에서 지혜는 실제로 복잡한 딜레마 상황에서
맥락, 가치 충돌, 불확실성을 함께 고려하는
정교한 사고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우리가 이 두 정의를 구분하지 않고 섞어 써왔다는 점이다.
태도를 보고 지혜롭다고 칭찬하면서,
막상 지혜가 필요할 때는 높은 수준의 사고력을 기대한다.
그래서 지혜롭다는 말은 칭찬으로는 쉽고, 실력으로 입증하기는 어렵다.
나는 지혜를
복합적인 삶의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사고의 전문성 기반 +
그 전문성이 실제 상황에서 자주 발현되도록 만드는 성향으로
정의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핵심은 지혜의 본체가 사고력이라는 점이다.
성향은 작동을 원활하게 하는 보조 장치다.
운전으로 말하면,
지혜는 안전 운전하는 사람의 인성이 아니라
위험한 상황에서도 차를 제대로 다루는 운전 실력에 가깝다.
운전 태도는 그 실력이 드러날 확률을 높일 뿐이다.